▒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331) - 맥주 세병에 안주 둘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3. 31. 20:07
오늘 그린 풍경화 - 맥주 세병에 안주 둘






▣ 웬 맥주 세병에 안주 둘?

술집에 가 본지가 참으로 오래됐다.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이젠 의식 속에서 가물가물하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두주불사(斗酒不辭)이던 내가 일적불음(一滴不飮)이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한 10여년 가까이 되었나보다. 그 때 맥주집에 가면 맥주 세 병과 안주 두 접시가 기본이었다. 의례히 이 기본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 기본에서 그만 마실 수도 있고 더 마실 수도 있고 말이다.

현대 사회 우리의 대학교육의 실상을 한 마디로 ‘기본 상실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학교 구성원의 삼박자라 할 수 있는 교수, 학생, 교직원의 조화가 깨어지고 있고 자아의 실현과 인격의 완성을 통해 이 나라 이 겨레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해야 할 대학인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꾸중하는 교수님도 없고 가슴 치며 통탄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말이지 다시금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약속을 생명처럼....

기본을 바로 세우는 실마리로 먼저 약속을 생명으로 여기자. 약속된 수업시간을 모두 채우시는 교수님은 멋없고 인기 없는 교수님이 되어 버린다. 일찍 끝내주고 휴강하는 교수님, 시험문제를 모두 알려주고 그대로 내는 교수님, 거기다가 학점은 잘 주시는 교수님은 언제나 인기다.

언젠가 심리학 수업 시간에 ‘컨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나는 절대로 안 된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다른 학생들이 ‘뭐 저런 시대에 뒤 떨어진 사람이 있어’라는 표정으로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그런 표정이었다. 막막했지만 내 주장을 강하게 이야기 했다. 요즘의 우리 대학은 너무도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다. 시험을 감독하기 위해 온 조교가 컨닝은 적당히 하란 말을 공공연하게 내뱉는다.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지도해 주시는 교수님도 많지 않고 고학년이 되면 당연히 전공수업은 젖혀두고 취업준비에만 여념이 없는 학생들의 모습과 그런 모습들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시는 교수님들의 태도는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 아름다운 만남

기본을 바로 세우는 다른 실마리는 아름다운 만남을 많이 갖자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간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어떠한 문제의 해결도 기대해 볼 수 없다고 본다. 어느 교수님은 언제나 연구실에서 책과 씨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 언제든지 우리의 방문을 반기시는 교수님이 계시는가 하면, 어떤 교수님은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푸념을 듣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모습은 교수님과 학생간의 만남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저 잘 봐달라는 식의 만남이 아닌가 하는 눈빛들을 의외로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의 행사가 있을 때 - 예를 들면 체육대회, 학술발표회, 엠티 등 - 교수님들의 모습을 뵙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학과장님이나 지도교수님외엔 그 어느 분도 뵙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만남은 교수님들과 학생들간의 만남을 더욱 어렵게 느끼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늘 격려해 주고 함께 해 주시는 교수님을 통해 우리 스스로는 좀 더 인격적 성숙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여러 규모의 학술대회가 참으로 많이 열리는 편이다. 분야도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할 것 없이 일년이면 수십차례의 학술대회가 열리나 이 때도 학생들의 얼굴을 찾아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나를 지도하고 계시는 교수님께서 도대체 어떤 학문의 길을 걷고 계시는가 좀 더 자세하고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 아무튼 어떤 자리이건 간에 좀 더 많은 만남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을 간직해야겠다.


▣ 책 읽기, 그것 기본아냐?

우리는 소위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만큼이나 이 명제에 합당한 것일까를 생각해 보면 아찔해 지기도 한다. 요즘 사회는 그야말로 급변하고 있는 시대이다. 나는 이 명제에 대답하는 하나의 길로 많은 책을 읽을 것을 간절히 권하고 싶다. 수업시간을 통해 보면 전공서적 하나 제대로 읽지 않고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을 본다. 수업시간에 와서도 엉뚱한 책을 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여야만 할까. 겨우 가까이 하고 있는 책은 영어책 정도이다.
요즘의 고등학생들은 수능이라고 하여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수능의 가장 큰 특징은 많은 생각과 특히 논리적인 사고를 요하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대비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정말로 많은 책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왔을 때 과연 우리들이 설 자리가 있을까. 우리의 자리를 만들기로 하자.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교수님이나 선배님들과 대화를 통해서 정하도록 하자. 우리의 삶을 정말 풍부하게 만들어 주리라고 확신한다. 먼저 풍부한 교양서적과 전공에 대한 서적들을 다양하게 섭렵하는 우리의 모습을 가꾸는데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다시 맥주 세 병에 안주 둘?

이제 다시 맥주 세병에 안주 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약속의 문제, 만남의 문제, 그리고 책을 가까이 하자는 이야기였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멀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이 안 된 대학생’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가꾸고 난 뒤 함께 축배를 들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땐 맥주 세병에 안주 둘이 아니라 취하도록 까지 마셔도 괜찮으리라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모습을 가꾸어가는데 기본에 충실한 멋진 우리가 되자.


자작나무숲 마음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