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426) - 처음 만난 가족이야기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5. 4. 20:25
오늘 그린 풍경화 - 처음 만난 가족이야기






봄 햇살이 졸고 있는 날, 산까치가 집 가까이 포르릉 날아왔다. 바삐 서둘러 왔다며 뒷산 산수유 핀 소식하며 겨울잠 자던 짐승들이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시작했다는 소식까지 한아름 안고 날아왔다.

부지런히 새순 돋우고 있는 느티나무는 썩은 살 부분이 도려내듯이 아팠지만, 작년에 연록빛 잎새를 보고 희망을 얻었던 구수산 아래 보아원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약속한 희망을 주기 위해 부지런히 물관을 열어 양분을 모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귀영바위 아래 사는 박씨 영감이 은적사에 진달래 피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씨 영감네 막내와 동네 사람들이 박씨영감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나라밖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게 연락을 했다.

박씨 영감은 자식들을 일찍 세계 곳곳으로 보내 그곳에서 자라게 했다. 연년생인 자식들은 일찍 어머님을 여의고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입양을 가면서도 자식들은 늘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사진과 새 엄마 아빠가 한국말을 잊지 않고 가르쳐 주어서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외국에서 오래 산 사람치고는 굉장히 부드러운 우리말을 사용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느냐며 자식들이 머리를 맞댔다. 각자 자기가 익힌 방법으로 ‘화장을 하자’ ‘매장을 하자’ ‘기도를 하자’ ‘절을 하자’ 등등 서로서로 자기의 생각만 이야기해서 쉽게 결론이 나질 않았다. 아버님을 가까이서 모신 막내가 우리 생각만 하지 말고 그동안 아껴주신 이웃과 친지들 의견을 들어서 하자고 말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의 처음과 끝을 주위 사람들 얘기 들어가며 하나 하나 치루어 나갔다.

장사를 지내고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웠다. 그동안 무슨 얘기만 꺼내면 서로 자기 잘난 얘기와 자기가 경험한 얘기만 늘어놓다 보니 늘 마음이 상하고 기운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했지만 서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를 못했다. 경험하고 돌아온 세계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자기가 경험한 세계만을 주장하다가는 아무 얘기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마음이 아프고 기운이 하나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헤어지기엔 너무 섭섭하였다. 내 주장만 늘어놓기보다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모든 자식들 마음에 자연스럽게 들었다.

한 며칠 쌀밥과 국에 익숙해진 자식들이 뭔가 하나의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자는 얘기가 누구의 입에서인지 모르게 거의 동시에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막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옷이 제각각 모양이 너무 특이하고 다르니 옷에 대해서만 얘기를 나누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모두가 했다.

자식들이 입고 있는 옷의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가운 같기도 하고 망토 같기도 치마도 아니고, 그냥 천조각하나 뒤집어쓰는 것 같은 별의 별 모양의 옷이 다 있었다.

자식들은 돌아가며 일을 할 때 입는 옷과 의식을 진행할 때에 입는 옷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자기가 왜 그 옷을 입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할 때에 입는지, 그 의례가 무엇을 뜻하는지, 옷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자연스럽게 각자가 사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살던 나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헤어지면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다음 기회에는 옷만이 아니라 좀 더 진솔하게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기로 다짐하고 말이다. 한 핏줄 한 형제라는 말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박씨영감은 죽은 몸이었지만 자식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봄햇살마냥 다사로웠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