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0314) - 남의 집 숟가락 수는 몰라도

오늘 그린 풍경화 - 남의 집 숟가락 수는 몰라도





토박이라는 말은 그 동네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그 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인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다종교 국가이다. 세계의 노대종교는 물론이고 자생한 종교의 가지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러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간의 대화이다. 배타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와는 아직도 대화가 되지 않고 대화가 되는 몇몇의 종교는 피상적이고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는 정도일 뿐이다. 국토는 좁고 종교는 많다보니 조그마한 시골이나 중소도시에도 여러 종교가 서로의 울을 높이 쌓아놓고 교화를 하는데 남의 종교 이야기는 그야말로 남의 얘기일 뿐이다.

전북 진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진안 천주교 성당에서 불이 났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음 아픈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가운데, 원불교 교무님과 교도회장이 조금의 정성을 마련해서 방문하였다. 원불교 교무님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염려하며 하루 빨리 천주님의 성전이 바로 서기를 염원했고, 천주교의 신부님은 이웃 종교의 일에 관심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하였다. 천주교 교우들은 불난 뒤 청소며 정리에 바빴지만, 다른 종교 지도자와 이 지역에서 함께 사는 교도회장이 방문하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의 액수가 문제겠는가. 문제는 그 뒤에 생겼다. 원불교 교무님이 바깥에 나가기만 하면 그 일을 칭찬하는 통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칭찬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셈이 되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는다’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전통이 있다. 세상이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잃어가는 때에 그 전통을 잊지 않고 오늘에도 참으로 가치 있는 전통으로 세워가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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