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길 편 지▒

동행

자작나무숲이이원 2006. 3. 7. 22:53

 

 

동행




딸내미가 많이 아프다. 이틀 째 열이 높고 잘 먹지도 못한다. 아침이면 좀 나아진 듯하지만 어린이집에 다녀온 오후엔 다시 열이 오른다. 이사 오기 전엔 직접 어린이집에 데려다 줬는데 이사 온 뒤론 6, 7백 미터의 길을 함께 걸어 어린이집 승합차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곤 한다. 함께 걷는 10여분 남짓한 시간동안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묻곤 하는데 새침대기 딸이 유독 내 앞에서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좀 더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던 내 탓이려니 싶지만 야속한 것은 별 수 없다. 이렇게 매일 아침 동행하는 동안 아름다운 얘기를 많이 나눠야지.


낮 동안엔 외투를 걸치지 않아도 충분한데 아침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몸에 감겨온다. 난 그 바람이 너무 좋지만 딸내미는 귓불이 붉고 볼이 발가지는 걸 보니 춥게 느껴지나 보다. 춥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외투를 벌려 가만히 안아주었더니 차가운 숨결이 데워지고 있다. 승합차가 조금 늦어 10여분을 그러고 있었더니, 이젠 따뜻하단다.


“아빠는 요즘 아침마다 민지와 함께 걸으니 기분이 참 좋은데, 민지는 어떠니?”


피식 웃는다. 뭘 그딴 질문을 하냔 뜻이다. 하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데도 확인하고픈 아빠의 욕심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낸 내가 오히려 머쓱해진다.


승합차에 태워 보내고 출근을 서두르며 딸내미와의 동행을 생각해 본다. 앞으로 얼마동안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 딸이긴 하지만 자존심 강한 딸이라 무엇이던지 혼자 하려고 해서 같이 하고픈 아빠의 마음과 늘 싸운다.


딸내미가 얼른 나았으면,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이 건강했으면, 아프더라도 빨리 낫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접는다.


<2006. 3. 7.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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