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부모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연전에 토마스 고든(Thomas Gordon)과 주디스 고든 샌드(Judith Gordon Sands)의 [부모역할 훈련]에 대해서 강의와 실습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 강의의 내용이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는 맞지 않는 서양의 이론쯤으로 생각했었다. 지금 곰곰 생각해 보면 이유는 이런 것 같다. 그 때는 아이의 부모가 되지 않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 말이다. 언젠가는 필요하리라 생각하고 받기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 될 준비를 미리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의 독서지도와 인성지도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머니들과 만나면서 많은 의문에 싸이곤 한다. [과연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이고, 과연 배움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내 어머님을 보더라도 부모가 되는 교육을 따로 받지 않고도 5형제를 훌륭하게 키우셨고, 할머님도 한글만 아시는데, 6남매를 모두 결혼시키고 사회에서 제몫을 다하도록 지도하여 주셨다. 그 때 과연 어떤 가르침이 있어서 가능한 일인지를 생각해보지만 답을 찾지 못하였다. 혹 이런 답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되었고, 아빠가 되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 말이다. 사실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답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교육하는데 있어서 어떤 답을 찾고자 한다. 사실 어떤 원칙이나 원리들을 이해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어떤 문제만 만나면 답을 구하고자 한다. 과연 답이 있는 것인가. 답은 없지만 그 답-아이가 어떤 아이로 성장했으면 하는 부모의 소망, 아이의 장래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부모역할훈련도 사실은 어떻게 아이의 성장에 애정을 갖고 접근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익명성과 기동성이 기능하는 세상이다.(하아비 콕스, 世俗都市) 익명성과 기동성이 기능하는 세상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은 부모와 자녀사이의 관계성 속에서 찾아야 할 과제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사이가 갖는 가장 근원적인 철학적인 물음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 첫째는 '선택의 문제'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과연 내 아들과 딸들은 누가 선택한 것인가?'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내 부모를 내가 선택한 것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야말로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의 주체는 바로 '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가정-가족 구성원들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가장 일차원적인 물음이 이 '선택의 문제'이다. 내가 선택한 부모이고, 자녀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역할의 문제'이다. 부모나 자녀가 각각 가정에서 맡고 있는 역할들이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의 유기체성(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의 문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이나 기능이 한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역할과 기능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 같은 경우이다.
셋째는 '미래의 문제'이다. 사실 교육적인 효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다. 어떤 하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시행되고 일일이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이 적어도 1-2년의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가정에서의 미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정에도 '대(代)'이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대는 부모님 세대, 조부모님 세대, 자녀들 세대, 우리 세대 등 다양한 세대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30년을 기준으로 하면 된다. 최소한 30년에 대한 계획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 10년씩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가정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철학적 물음은 '선택, 역할, 미래'라는 세 가지의 기준에서 어쩌면 지리한 과정 -답을 찾아가는(?)-을 가져야 하는 굴레를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먼저 '선택의 문제'에서 오는 갈등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많은 가정들이 이 물음에 대해서 이 '선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지만 문제의 가장 밑바닥, 무의식세계에 잠겨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선택의 문제에서 갈등이 오면 많은 부모들이 부모의 권위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여기에서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敬聽)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벽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흔히 고민하는 문제들이 학업·이성·가정 등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지만, 그보다도 우선되는 본질적인 문제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왜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자각이 생긴다는 말과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이 철학적 문제인식을 효율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바로 '선택에 대한 자각'이다. 즉 내가 존재하는 모든 이유의 출발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이로 하여금 창조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은 '역할의 문제'에서 오는 갈등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한국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은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등의 일들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젊은 부부는 많이 열려가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고착(固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역할의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에 놀이(게임, 스포츠, 취미 등등)가 있어야 한다. 엄마니까 밥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 아빠니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역할에 대한 강박 관념에서만 벗어난다면 가정은 훌륭한 놀이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감사문화가 생길 수 있고, 모든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예방의 기능을 갖게 된다. 가족 구성원들간의 바람직한 역할을 통해서 '감사와 예방'이라는 순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놀이를 찾기까지는 시행착오의 방법을 여러 번 다양하게 모색해 보아야 한다.
끝으로 '미래의 문제'에서 오는 갈등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한국 가정을 보면 미래가 있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일상적인 관습에 따라 자녀 교육을 관성적으로 시키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 미래이다. 하지만 적당한 긴장을 갖고 대처해 나가고 준비해 간다면 미래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 현재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가를 정확히 아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간의 욕구가 다를 때 갈등을 겪기 보다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기제는 어떤 구체적인 실제나 상황, 물건 따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 말한 놀이를 갖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인 비전(vision)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가정은 승자가 있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패자가 있는 곳도 아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유기체적인 관계가 바로 가정인 것이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방법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모여 가족의 문제점들을 찾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노력하는 모습, 가훈, 교육목표의 설정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다시 내(우리) 문제로 돌아선다. [과연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이고, 과연 배움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겠다. 다만, 과정이 주는 소중한 의미를 다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고, 5월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맑은 생각과 밝은 웃음으로 훈훈한 가정을 만드는 일에 좀 더 기뻐했으면 한다. 5월을 맞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행복을 만드는 산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적는다.
나는 연전에 토마스 고든(Thomas Gordon)과 주디스 고든 샌드(Judith Gordon Sands)의 [부모역할 훈련]에 대해서 강의와 실습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 강의의 내용이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는 맞지 않는 서양의 이론쯤으로 생각했었다. 지금 곰곰 생각해 보면 이유는 이런 것 같다. 그 때는 아이의 부모가 되지 않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 말이다. 언젠가는 필요하리라 생각하고 받기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 될 준비를 미리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의 독서지도와 인성지도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머니들과 만나면서 많은 의문에 싸이곤 한다. [과연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이고, 과연 배움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내 어머님을 보더라도 부모가 되는 교육을 따로 받지 않고도 5형제를 훌륭하게 키우셨고, 할머님도 한글만 아시는데, 6남매를 모두 결혼시키고 사회에서 제몫을 다하도록 지도하여 주셨다. 그 때 과연 어떤 가르침이 있어서 가능한 일인지를 생각해보지만 답을 찾지 못하였다. 혹 이런 답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되었고, 아빠가 되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 말이다. 사실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답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교육하는데 있어서 어떤 답을 찾고자 한다. 사실 어떤 원칙이나 원리들을 이해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어떤 문제만 만나면 답을 구하고자 한다. 과연 답이 있는 것인가. 답은 없지만 그 답-아이가 어떤 아이로 성장했으면 하는 부모의 소망, 아이의 장래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부모역할훈련도 사실은 어떻게 아이의 성장에 애정을 갖고 접근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익명성과 기동성이 기능하는 세상이다.(하아비 콕스, 世俗都市) 익명성과 기동성이 기능하는 세상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은 부모와 자녀사이의 관계성 속에서 찾아야 할 과제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사이가 갖는 가장 근원적인 철학적인 물음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 첫째는 '선택의 문제'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과연 내 아들과 딸들은 누가 선택한 것인가?'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내 부모를 내가 선택한 것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야말로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의 주체는 바로 '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가정-가족 구성원들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가장 일차원적인 물음이 이 '선택의 문제'이다. 내가 선택한 부모이고, 자녀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역할의 문제'이다. 부모나 자녀가 각각 가정에서 맡고 있는 역할들이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의 유기체성(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의 문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이나 기능이 한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역할과 기능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 같은 경우이다.
셋째는 '미래의 문제'이다. 사실 교육적인 효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다. 어떤 하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시행되고 일일이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이 적어도 1-2년의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가정에서의 미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정에도 '대(代)'이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대는 부모님 세대, 조부모님 세대, 자녀들 세대, 우리 세대 등 다양한 세대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30년을 기준으로 하면 된다. 최소한 30년에 대한 계획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 10년씩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가정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철학적 물음은 '선택, 역할, 미래'라는 세 가지의 기준에서 어쩌면 지리한 과정 -답을 찾아가는(?)-을 가져야 하는 굴레를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먼저 '선택의 문제'에서 오는 갈등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많은 가정들이 이 물음에 대해서 이 '선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지만 문제의 가장 밑바닥, 무의식세계에 잠겨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선택의 문제에서 갈등이 오면 많은 부모들이 부모의 권위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여기에서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敬聽)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벽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흔히 고민하는 문제들이 학업·이성·가정 등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지만, 그보다도 우선되는 본질적인 문제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왜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자각이 생긴다는 말과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이 철학적 문제인식을 효율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바로 '선택에 대한 자각'이다. 즉 내가 존재하는 모든 이유의 출발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이로 하여금 창조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은 '역할의 문제'에서 오는 갈등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한국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은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등의 일들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젊은 부부는 많이 열려가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고착(固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역할의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에 놀이(게임, 스포츠, 취미 등등)가 있어야 한다. 엄마니까 밥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 아빠니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역할에 대한 강박 관념에서만 벗어난다면 가정은 훌륭한 놀이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감사문화가 생길 수 있고, 모든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예방의 기능을 갖게 된다. 가족 구성원들간의 바람직한 역할을 통해서 '감사와 예방'이라는 순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놀이를 찾기까지는 시행착오의 방법을 여러 번 다양하게 모색해 보아야 한다.
끝으로 '미래의 문제'에서 오는 갈등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한국 가정을 보면 미래가 있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일상적인 관습에 따라 자녀 교육을 관성적으로 시키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 미래이다. 하지만 적당한 긴장을 갖고 대처해 나가고 준비해 간다면 미래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 현재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가를 정확히 아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간의 욕구가 다를 때 갈등을 겪기 보다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기제는 어떤 구체적인 실제나 상황, 물건 따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 말한 놀이를 갖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인 비전(vision)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가정은 승자가 있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패자가 있는 곳도 아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유기체적인 관계가 바로 가정인 것이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방법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모여 가족의 문제점들을 찾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노력하는 모습, 가훈, 교육목표의 설정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다시 내(우리) 문제로 돌아선다. [과연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이고, 과연 배움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겠다. 다만, 과정이 주는 소중한 의미를 다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고, 5월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맑은 생각과 밝은 웃음으로 훈훈한 가정을 만드는 일에 좀 더 기뻐했으면 한다. 5월을 맞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행복을 만드는 산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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