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교육을 바라보는 바른 눈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3. 17. 10:43
교육을 바라보는 바른 눈
- 교육심리학에 대한 이해






교육심리학은 흔히 교사와 학생간의 만남에서 상호간에 문제없는 영역을 넓히는 인간적 성장을 의미한다. 이 의미는 부모와 자녀사이에서도 문제를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윤기가 흐르는 가정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자녀의 관심영역은 크게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아이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부모의 소망이 거부되어 학습이 중지되고, 반대로 부모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는 올바른 가정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간에 자유로운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서로 자유롭게 성장·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부모가 자녀를 바라볼 때는 그 기준이 명확해 진다. 즉 자녀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부모가 수용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수용할 수 없는 영역이 있게 된다. 수용과 비수용의 사이에 수용 여부를 판가름하게 하는 수용선이 있는데 이 선의 기준이 모든 부모마다 다름을 알 수 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이 수용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 수용선은 부모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가정 환경은 어떻게 꾸며져 있느냐?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가 어떤 수용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큰 변화가 있게 된다.

우리 모두는 감정이 비일관적이기 때문에 자주 충돌하게 되고 수용 기준을 수시로 환경에 따라 바꾸게 되는 것이다. 즉 이 수용선이 허위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변화되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정확한 감정을 드러내는(쏟아 버리는) 것 때문에 아이들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부모는 허위적 수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선은 문제를 누가 가지고 있는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즉 부모와 자식 사이에 욕구가 만족되지 않은 문제를 누가 가지고 있는가를 정확히 구분하여 문제가 없는 영역을 넓히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자녀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부모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반대로 부모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은 문제 자체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영역은 없기 때문에 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이 늘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는 대화가 통하지 않고 세대차이만을 느껴야 하는가. 무슨 걸림돌이 있어 그리 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개와 고양이는 서로 앙숙이라고 한다. 犬猿之間이란 말도 그런 뜻이다. 이는 서로 표현하는 의미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숙제하는 것 보다 놀기를 더 좋아한다. 부모님들은 놀기보다는 숙제를 먼저 하기를 바란다. 이 둘이 서로 만날 수는 없을까. 오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흔히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무슨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기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도와주려 한다. 그 유형은 대체로 명령하고 지시하기, 설교나 의무 부여, 경고나 위협, 충고나 해결책 제시, 가르침, 강의, 논리적 의견 제시, 판단이나 비난, 비판, 상투적인 욕설, 해석하고 분석하고 진단하는 등의 방법을 쉽게 사용한다. 칭찬이나 동의를 통한 긍정적인 평가를 부여하고 안심시켜 부모가 나를 지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하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크게 자녀 교육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부모이기 때문에 자녀에게 하는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정당시 해버린다는 점이다. 이것이 부모의 당연한 책임과 의무의 전부로 이해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칭찬과 격려 등의 긍정적 평가가 아이들에게 긍정적이고 좋은 행동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아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질문이 가장 가치 있는 지도 방법의 하나라고 이해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오해의 상당부분은 자녀 교육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를 전체적으로 표준화시키기엔 무리가 있기도 하다. 이도 또한 우리 스스로가 고민해 가면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는 부모님들의 말과 행동은 분명 아이들의 미래 모습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독립심과 의존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순의 동물이다. 정신적 독립을 원하면서도 육체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대 환경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교육의 명제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몸으로 부대끼는 사랑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어려울수록 많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정신과 육체 모두가 고루 성장하게 되는 것이며, 이는 부모와 자녀 서로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래도 문제는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 스스로를 돌아봐도 참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던 아들이었고,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낸 밑바닥에는 끝까지 믿고 지도해 준 선생님과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까지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문제(학습, 교우관계, 성격, 등)를 가지고 있는 자녀를 돕는 건설적인 방법의 가장 밑바닥엔 '대화'라는 게 숨어있다. 그야말로 '우리 집 식탁은 대화가 반찬'이라는 명제가 오늘날에는 특히 더 유효한 명제이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자녀를 돕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가 단지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지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는 자녀들이 자라서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수동적으로 들어주고 미소로 힘을 주는 부모의 말은 마음을 나누도록 격려하는 강력한 비언어적 메시지이다. 이런 비언어적 메시지에 반응을 하게 되면 "응. 그래", "힘들지"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녹아나게 되고, 더 깊은 마음의 얘기도 꺼내놓게 된다. 이를 통해 '하나'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면 어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과 감정의 문제도 그 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풀리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어떤 문제도 스스로 해결해 나갈 능력을 가진 아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수용이 되면 감정이란 일시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스스로의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이 생기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문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해야 할 책임을 결국은 스스로 지게 되는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아이가 되게 하며, 스스로의 문제가 해결되면 남을 도와주게 되는 공동체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부모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문제를 누가 가지고 있고, 여기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기를 얼마나 열 수 있으며,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며, 문제를 미리 예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최근에 한 한국 학생은 입학전형에서 떨어지고, 다른 한 명은 6개월 동안 학교에 다니다가 퇴교 명령을 받았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두 명 모두 최고의 성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S대에 수석으로 합격했겠지만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두 학생 모두가 봉사실적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슬픈 소식이었다.

또 한 소식은 요즘 초등학교 입학해서 반평성 할 때 우열을 분명히 나누어 서로 다른 반 아이들끼리는 사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글자 하나 더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철저히 자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미국의 초일류대학이라는 조선일보 연재기사를 읽고 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 자녀를 어떤 인물로 키워낼 것인가는 바로 부모된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