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3. 12. 17:57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 책을 가까이 하고 골라 읽는 법






나는 가끔 지인(知人)들이나 형제들에게 책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또 어느 때는 어린이용 전집을 사야하는데 내용은 괜찮으며 사도 되는지를 묻는다. 내가 무슨 아동 도서나 독서에 전문가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은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그저 한 때 내 주위에 있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 잡식성의 독서를 해 왔다. 많이 읽다보니 싫증도 났지만, 읽어야 될 책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 골라 읽어야 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독서에 관한 안내서들을 보면 책을 고르는 중요한 방법들에 대해서 설명해 놓고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모두 긍정할 수는 없다. 우리 나라의 경우 독서지도가 전문가의 영역에 들어가고 그 전문 영역에서 위에 말한 것처럼 직접 책을 골라 주고 구체적인 안내의 일을 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대체로 부모나 가까운 친인척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책을 가까이 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유아들의 경우 대부분이 그림책이나 낱말 카드를 통해 글을 깨우치게 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當爲)의 문제와 결부되어 책읽기에 대한 저항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심한 말로 독서 감상문 쓰기 싫어 책읽기 자체마저도 싫다는 아이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을 가까이 할 것인가?
첫째는 아이들의 책이 어디에 있는가 이다. 대체로 보면 전집류의 책들은 지인들의 집에 가보면 책장에 모셔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좀 널어놓자. 아이들에게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들여주기 위해서 너무 딱딱한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 책 정리는 도서관에만 되어 있으면 된다. 집에서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집에서의 책 정리는 자녀와 함께 일정한 시간에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유도해 보는 것이 좋다. 아이 가까이 책을 놓아두게 되면 어느 땐가는 그 책을 가까이 하게 된다. 또 엄마들은 이럴라. 아이가 책을 가까이 하니 책 읽는 것 자체도 좋아한다고는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남감처럼 책을 가지고 놀게 하라는 것이지 반드시 그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좀 찢어도 내버려두고 차고 놀아도 그대로 두자. 그리고 한 번씩 함께 해 보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아이들에게 절대 '책 읽어라'고 하면 잘 읽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하라면 하지 않는다. "공부하자"고 해야 함께 한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적당한 때에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야 한다. 어느 책이어도 상관없다. 하다 못해 월간지라도 함께 보고 아이가 보는 책이라도 함께 읽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엄마가 읽은 책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내 보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데, ○○도 읽었니?" 그러고 나서 책에 대한 몇 가지 얘기를 들려주면 아이도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나게 되고, 혹 미리 읽은 책이면 아주 신이 나서 책 첫머리부터 끝까지 주절주절 읊게 될 것이다. 적어도 가계부 쓸 때 한달에 책 몇 권정도는 사서 아이들과 함께 읽는 습관을 들이자.

그 다음에는 책 읽는 것과 보상과의 문제이다. 문제 해결에 대한 방법으로 보상을 쓰는 것은 대단히 신중해야만 한다. 책 한권을 읽으면 돈을 얼마 준다든지, 몇 십권짜리 전집을 호기 부려 사다주고는 다 읽으면 자전거를 사준다든지, 어디를 데리고 간다든지 하는 약속은 아이들의 책읽기 습관을 들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종(主從)이 바뀌게 되니 말이다. 아이들은 '책을 부지런히 읽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혹은 얻기 위해서 책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 계기가 되면 책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보상은 책읽기에 중요한 상승작용을 한다. 적절한 보상이라고 하는 것은 자녀들의 특성이나 환경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는 각자가 고민해 볼 문제이다.

책 고르는 얘기를 하다 말고 책을 가까이 하자는 얘기를 했다. 엉뚱한 얘기 같지만, 결코 엉뚱하지 않은 얘기라는 것은 아마 잘 아시리라 믿는다. 우선 책을 고를 때 내가 고르지 말고, 자녀와 함께 고르자는 것이다. 그럴려면 자연히 함께 서점에 가던지 도서관에 가던지 해야 한다. 집에 있는 많은 책 중에서도 아이와 함께 골라보는 습관을 우선 들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책 고르기에서는 먼저 읽어보고 고르고, 그림 동화의 경우 그림이 선명하고 색감(色感)이 좋은 것을 고르라고 하지만 요즘은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닌 것 같다. 내용도 많이 좋아지고, 색감도 탐날 정도로 좋으니 말이다. 하지만 창작집이나 전래동화 등 잘 알려진 책이 아닌, 번역된 책이나 생소한 것등은 반드시 조금씩 읽어보고 문장이 어색하지는 않은지, 표현이 적절한지 등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번역된 책이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가 어색함이다. 서양사람이 한 복 입은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런 어색함 말이다. 함께 가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아동 도서 코너를 둘러보고 여러 가지 책 중에서 한 권을 골라내는 재미도 대단하니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말기를 바란다.

책을 고를 때 전집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좀 지양했으면 한다. 아이들이 일단은 그 양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전집류의 책은 도서관에서 한 권씩 빌려보게 하는 것이 좋다. 단행본으로 나온 책은 도서관에 없는 경우가 많으나 전집류의 책들은 거의가 다 비치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의 이유는 감가상각(減價償却)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아무리 책을 조심해서 보라고 해도 그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전집류의 책이 필요하면 중고서점을 뒤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도 나는 시내에 있는 [원서점]에 자주 가곤 한다. 거기에는 헌 책(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책들도 있다.)을 거의 정가의 20-30%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동 도서는 더욱 싸게 구입할 수가 있다.

그리고 책을 고를 때 연령에 맞는 책을 읽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이들의 관심이나 수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책을 사다 주는 부모님들이 계시는데, 이것도 평소에 아이들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보는지 등을 오랜 관찰을 통해 파악한 뒤에 거기에 맞는 적절한 책을 함께 구입하는 중요하다. 영어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이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다 토플이니 토익이니 하는 책들을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실력이 없으면 맨투맨 기본영어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격려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네트워크(net-work)의 구성이 중요하다. 요즘 책 값 그것 만만치 않다. 또 보통 어려운 세상인가. 자기가 사는 이웃들 가운데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과 서로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함께 돌려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 집에 무슨 책이 있는지를 보고 그 책들을 먼저 사랑하자. 그리고 나서 서점에 가보자. 새 책들의 활자들이 소곤대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대단히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