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숲길편지
01/01 믿음이 널리 미치는 새해 22
아름다운 님!!!
무심(無心)으로 밝아오는 새 아침 햇살이
부지런한 사람들 함성에 움찔 놀랐나봅니다.
바리바리 챙겨온 소망들 모아 듣느라고
온 정신을 일심(一心)으로 모아보지만
들뜬 마음을 진정하긴 어려운가봅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문득 한 생각이 스쳐 지납니다.
보신(普信)이라는 말이 널리, 두루, 멀리 미치다는
보(普) 자와 믿음이라는 신(信) 자가 합쳐진 말이니 그대로 믿음이 널리 미쳐
우리사회의 세대와 세대, 지역과 지역,
학연과 학연 등 모든 갈라 나누어진
불신의 골이 메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옹종옹종 새벽길을 나서
삼십삼천을 울리는 종소리를 들은 뒤
여러 스승님들께 세배를 올리고
간절한 덕담도 가슴에 새겨들었습니다.
“절대약자를 보살펴라”는 말씀과
“실천을 먼저 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새 마음을 챙겨보는 새해 첫날이 지나고 있습니다.
무언가 작심(作心)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 작심이 무엇이 되었던지
내 삶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면
구체적으로 실천을 계획해 보았으면 합니다.
혼자 맘속으로만 작심을 하면 잊기 쉽고 나태해지기 쉬우니
가까운 주위 인연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작심을 이어가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직 마음을 챙기지 못했거든 늦지 않았으니
마음 챙기는 새날이 되기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02 처음이 소중합니다.. 25
아름다운 님!!!
처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언가 잘못된 줄을 알았을 때
고치기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점심 때 한 선배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새해도 됐고 하니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거지요.
평소 잘 가던 식당을 가려다가 가는 길에
새로 생긴 식당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대나무 통밥 정식’을 하는 곳인데
1인분에 만오천원이나 하는, 점심으로 먹기엔
부담스런 가격이었지만 한 번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영 실망스런 맛이었고,
서비스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음식은 미지근했고 좀 따뜻하다 싶은 것은
렌지에 데워주고 새로 해 온 음식들은
설익은 어설픈 맛이 그대로입니다.
두어 차례 얘길 했는데 그대로입니다.
주차장도 넓고 새로 지어진 깔끔한 집이어서인지
손님들은 많았지만 썩 맛있게 먹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혼자 찾아가지도 않을거고
누가 가자해도 말리게 될 것 같습니다.
저녁도 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1인분에 8천원하는 채식 뷔페집엘 갔는데
점심때와는 다른 분위기와 다른 맛이었습니다.
참 편안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오라 말하진 않았지만 다음번에
또 다시 찾고 싶은 그런 집입니다.
아름다운 사이를 가꾸는 일도
이처럼 한 끼 밥 먹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내 말과 행동과 마음씀씀이가
나를 다시 찾는 사람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이 순간의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건지
모든 게 내가 짓는 일입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03 두 마음과 함께 사는 법 32
아름다운 님!!!
세상이 온통 하얗습니다.
오전 10시경부터 내린 눈이 지금껏 내려
멋진 겨울 풍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보기에도 아름다운 풍경임에 틀림없습니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눈싸움하기에 바쁘고
눈사람의 모습도 가끔 보입니다.
하지만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마음은
그렇게 편안하지만은 않는 듯
조심조심 거북운행을 하느라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로 긴장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이처럼 늘 같은 듯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습니다.
내가 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아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엔 윤기(潤氣)가 흐르지 않습니다.
남이 보는 것이 최고일 수 있고
남이 아는 것이 최고일 수 있고
남이 가진 것이 최고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세상엔 윤기가 흐릅니다.
운전할 땐 눈이 좀 싫은 마음이 나더니
차를 세워두고 바라보는 풍경은 참 좋습니다.
이렇게 늘 두 마음과 함께
서로 양보하고 서로 위하며 삽니다.
아침엔 길이 더 미끄러울 것 같습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안전운전! 명심하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04 눈오는 날 다녀온 추억의 길 29
아름다운 님!!!
참 오랜만에 보는 눈의 축제입니다.
하루 종일 정말이지 쉬지 않고 내립니다.
고향 함평(咸平)에서 지내던 유년의 겨울날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추억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촌놈인가 봅니다.
집 뒤 묏등에서 비료 푸대(포대의 전라도 표준말)로
눈썰매를 타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고
강산양반네 논위에서 한바탕 눈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가끔은 눈속에 돌이나 흙을 넣어 던지는
짓궂은 형님들 때문에 눈자위에 멍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바탕 뛰고 나면 누구네 집에서건
대울(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것)로 방안에 쌓아둔
머리통만한 고구마를 삶아 내오면
고 달짝지근한 맛은 한 나절의 허기를 달래고
어린 날을 살찌운 소중한 양식이었습니다.
또 다른 추억하나는 베이징에서 지낼 때
이화원에서 보았던 눈발속에서 연을 날리며 즐거워하던
어르신들의 그 이빠진 웃음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 분들 중에는 이미 고인(故人)이 되신 분도 있겠지만
아마 오늘도 그곳에서 연을 날리고 계시지 않을까...
또 한 분, 스폰지붓과 물을 들고
길 위에 물을 찍어 시를 적던
중국 할아버님의 호방함이 생각납니다.
붓을 빌려 외우던 시 몇 수 적었더니
한참을 박수치시던 한없는 격려가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숲길편지는 추억의 길을 다녀왔네요.
오늘 같이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추억을 곱씹는게 적격이지 않을까요?
눈길이 많이 미끄럽네요. 조심 또 조심하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05 차를 두고 떠난 길에 얻는 행복들 22
아름다운 님!!!
기차를 타고 윗녘에 다녀왔습니다.
길이 미끄럽지 않다면 차를 가지고 가는 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이롭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시간과 돈의 상관 관계에서
전 늘 시간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는 편입니다.
그러니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역이나 터미널에 나가
기차나 버스를 타고 몇 시간씩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게
시간적으로나 훨씬 더 걸리는 일이기에
어지간하면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서울은 워낙 교통 사정이 좋지 않고
길도 잘 모르는 탓에 기차를 타는 호젓함을 즐기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눈길을 핑계로 기차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낮에 갈 때는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저녁나절엔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무위의 시간입니다.
이번 여정엔 동행이 있어
이런 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기도 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차표를 대신 끊은 공덕으로
책 두 권 선물 받았습니다.
두어 시간 좀 더 걸리는 길인데
150쪽 정도 되는 책 한 권 읽기엔 적당한 시간입니다.
자기 몫으로 산 책은 놔두고 서로의 책을 바꿔 읽었습니다.
<작은 위로>와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두 책입니다.
전우익님의 책은 예전에 읽은 책이었지만 다시 읽어도
늘 그 감동이 그대로입니다.
차를 가지고 가면 늘 바쁘게 움직일텐데
차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딸내미 머리핀도 사고
사람 사는 향기도 조금은 맡는 것 같습니다.
차를 두고 떠나는 길에 얻는 행복들입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07 싸워 이기는 법, 지는 법 31
아름다운 님!!!
온 몸은 시리지만 마음은 따뜻한 아침입니다.
이렇게 아침에 숲길편지를 쓰는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네요.
저녁엔 컴퓨터가 도와주질 않아서 책만 읽었습니다.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한 물건이 이로움을 본, 한 물건이 해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를 놓으면 하나가 편해지긴 하나봅니다.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보다는
오늘 맞는 이 하루하루를 더하는 것이
마음의 키가 좀 더 자라야 하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그래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이 찰나의 순간순간이 모이고 모여
한해 두해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먹는 거니까요.
왼손 검지를 조금 다쳤는데, 온 신경이 그리 몰립니다.
우리 몸은 그런가 봐요.
다른 사람의 큰 병보다 나의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는 말,
마음으로는 위로를 건네지만 내가 더 아프나 봅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마음이 그리로 가는 걸 보니
아직은 공부가 멀긴 한참 멀었나 봅니다.
오늘은 그래도 조금 날이 풀리나 봅니다.
잠간이지만 찬 바람을 맞는 것도 굉장히 상쾌하네요.
오늘도
욕심과 싸워 이기고
거짓과 싸워 이기고
불평과 싸워 이기고
자만과 싸워 이기고
독선과 싸워 이기고
나태와 싸워 이기고
아픔과 싸워 이기기 바랍니다.
오늘도
자족과 싸워 지고
진실과 싸워 지고
감사와 싸워 지고
겸손과 싸워 지고
상생과 싸워 지고
근면과 싸워 지고
건강과 싸워 지기 바랍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07 "제가 손 잡아드릴게요" 36
아름다운 님!!!
그냥 참아볼까 했는데 발등이 부어오르는 게
딛기도 힘이 들고 아프기까지 하는 등
영 심상치 않아서 한의원에 다녀왔습니다.
사혈을 한참이나 하고 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내 다음 번 환자는 몇 차례 온 적이 있는 할머님인가 본데
온 몸이 아프다고 합니다.
침을 맞는 것도 아프다고 하니 난감할 노릇인데
따뜻한 참 따뜻한 말이 들립니다.
"제가 손 잡아드릴게요. 이젠 안 아프죠?"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그 할머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주름 가득한 얼굴에 환히 피는 웃음을 보았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하는 일은
꼭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손 한번 잡아줘도
따뜻한 웃음 한 번 웃어줘도
간절한 기도를 올려줘도
사랑의 글 한줄만 전해줘도
편안한 말 한 마디만 해줘도
힘을 얻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난 지금 무엇 때문에
손 한번 내밀지 못하는지
얼굴엔 근심이 가득한지
기도는 쉬게 되었는지
미움의 마음이 싹트는지
분노의 말이 튀어나오는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가족 모두 따뜻한 잠자리였으면 싶습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09 주파수 맞추며 살기 26
아름다운 님!!!
안개가 자욱한 아침을 보냈습니다.
이런 날 안개속을 걸으면
온 몸으로 스멀거리는 추억이
슬금슬금 기어오릅니다.
마음길 따라가다보면
오늘 하루 무얼 하며 살지?
머릿속을 누르는 고통은 없는지
모든 게 물음 투성인
아직은 세상보기에 서툰 사람인지...
사람과 생각의 주파수를 맞추기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란걸 깨닫습니다.
그러니 오해라는게 생기나보죠.
그런게 세상 사는 재미일지도 모르고요..
점심 맛있게들 드셨는지요?
저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회색빛 오후이긴 하지만
날씨가 많이 풀려서인지
책상에 앉아도 일이 잘 되질 않아
지난 번 내린 눈을 치웠습니다.
등으로 적당한 땀이 흐르는 게 참 좋습니다.
커피 한잔 마시러 들어 왔습니다.
참 맛있을 것 같지 않은가요?
여러분께도 한잔씩 드릴게요.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09 아이들의 웃음으로 즐거운 가정 22
아름다운 님!!!
저녁나절에 미장원에 다녀왔습니다.
좀 답답해보여 이발을 했답니다.
한결 시원해 집니다. 마음도 말이에요..
아이들 때문에 많이 웃었습니다.
둘째 민수에게 엄마가 묻습니다.
"민수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아."
엄마가 또 묻습니다.
"민수는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몰라"하고는 얼른 다른 방으로 갑니다.
이번엔 민지에게 묻습니다.
"민지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모가 좋아."
자기 옆에 있던 이모가 좋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묻자
"엄마 좋아, 아빠 좋아, 이모 좋아"
이번에 세 사람을 다 말합니다.
이런 물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지만
어른들은 묻고 아이들 답에 웃습니다.
모르긴 해도 아이들은 다 알고 있을겁니다.
아이들의 웃음으로 즐거운 가정되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10 문을 열고 닫는 때 29
아름다운 님!!!
하루하루 순간 순간을 살면서
열어보아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방문, 화장실 문, 출입문, 차 문 등등
수없이 많은 문들을 열어야
하루의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밤의 피곤한 몸은 잠으로 풀고
생명의 하루를 열기 위해서는 방문을 엽니다.
우울한 속의 마음은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무언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길이지만
늘 그 길을 달려 문을 열고 가야 합니다.
내게도 수많은 문이 있습니다.
눈에는 눈의 문이 있습니다.
귀에는 귀의 문이 있습니다.
마음에도 마음의 문이 있습니다.
손발에도 손발의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그 문을 닫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
그 때를 아는 것이 하루하루 사는 것이고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편안한 잠 주무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11 둘째 민수 일내다? 28
아름다운 님!!!
눈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이
아침 길을 점령하였습니다.
나무들은 하얀 솜털 옷을 입고
화사하게 웃고 있습니다.
꽤나 맵찬 날씨에 싸락눈이
나뭇가지에 앉은 모습이
마치 높은 산자락의 상고대처럼
멋있게 피었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까지 그 모습을 보는 데
햇살만 조금 비쳤다면 사진으로 찍었을텐데
눈빛과 마음속에만 간직해 두었습니다.
아직 모국어가 많이 부족하여 그 멋진 풍광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겠네요.
아침에 둘째 민수와 한바탕 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가 있는 날이라
흰색 타이즈를 입고 가야하는데
절대 입지 않겠다고 들어눕길래
좀 혼냈더니 이 녀석이 일을 저지른 겁니다.
제일 어린 병아리반이라 짧은 글을 외우는데
평소엔 가장 잘 외웠는데
정작 발표 순간에 혼자 개다리춤을 추었다는 겁니다.
모두 뒤로 넘어졌다는데 제가 보지 않았으니,
외할머님과 이모가 데리고 갔거든요.
뭐가 되도 크게 될 놈 같지 않습니까.
집에 와서 많이 웃었습니다.
함께 해 주지 못한 미안함에 꼭 안아주었더니
씩 웃으며 자러 갑니다.
꿈도 없이 깊이 잠 드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12 첫 다짐이 식으면 37
아름다운 님!!!
제가 참 많이 게으름을 피우죠.
지난 12월 17일에 글 올리고 여태 올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가족 몇 분이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를 하는군요.
그래서 떠나신 분이 계시나 싶어 송구한 마음입니다.
음..변명을 좀 하죠. 사실 변명 같은 건 별로 좋지 않은건데
그냥 해명이라고 해두죠.
아마 한 고비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어찌 쓰다보니 <숲길편지>에 더 매진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본 칼럼에는 소홀했었습니다.
하긴 몇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머리속에서 궁글리고 있는데
잘 풀리지 않는,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있는게 사실입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인데
숙명과 같은 습관 때문에 뭔가를 끄적이긴 하는데
별로 쓸모있는 글은 아닌 듯 합니다.
가끔은 그냥 지켜만 보아주세요.
한 며칠 그러다가 추스리고 일어날테니요.
몇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시작되고 끝이 났습니다.
다시 몇 가지 일은 시작을 해야하구요.
조만간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한 주입니다.
아마 새해 첫 다짐이 조금은 식을 때인듯도 싶습니다.
작심삼일이 백번이면 얼추 일년이 됩니다.
처음부터 잘되면 삶이라는 공부가 별 재미없겠지요.
하고 또 하고, 챙기고 또 챙겨서
마침내 하지 않아도 하게 되고
챙기지 않아도 챙겨지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챙겨서 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마음을 챙기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14 연어의 삶, 산천어의 삶 33
아름다운 님!!!
조용히 하루를 뒤돌아본다는 것은
언제고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루 중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오롯하게 산 시간도 있고
어느 때는 몸이 하자는대로 내버려 둔 적도 있고
마음만 있었지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은
그런 시간도 있었습니다.
들여다보면 허송한 시간도 있고
참 알차게 보낸 시간도 있습니다.
삶에서 하루 하루가 보태질수록
허송한 시간이 줄어들고 알찬 시간의 삶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선배님 한 분이
연어와 산천어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연어는 회귀어종으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와서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하는데
알에서 부화하여 치어로 살다가
너른 바다로 나가는 연어가 있고
그냥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라는 연어가 있다고 합니다.
연어로 살 것인지, 산천어로 살건지
어느 삶이 더 아름답고 멋있다고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연어로 살든 산천어로 살든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생각만 요리조리 생각을 굴려봅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연어의 삶인가요, 산천어의 삶인가요?
잠을 잘 자야 하루를 멋지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운 꿈길 이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15 삶을 경건하게 여기면 스스로 경건해진다! 47
아름다운 님!!!
눈이 채 녹지 않은 그늘 진 잔디밭을 가로질러
겨울 햇살을 받으며 점심을 먹으로 갔습니다.
잘 턴다고 털었는데도 잔디검불이
약간 젖은 신발에 붙어 쉽게 떨어지질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와 양치질을 하다가 바닥을 보니
까만 타일이 붙은 곳에 누런 검불이 곳곳에 보입니다.
청소기로 그 주위를 얼른 치우고 보니
흰 대리석이 깔린 부분과 카펫이 깔린 부분엔
검불이 떨어졌는지 어쨌는지 눈에 잘 띄질 않습니다.
청소하면서 생각하니 그곳에도 분명
검불이 떨어져 있겠지 싶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타일 위보다도
더 많은 검불이 묻어있었습니다.
단지 눈에 띄지 않았던 거지요.
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點心)때의 졸음도 쫓을 겸
부지런히 청소를 하였습니다.
청소를 하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남에게 있는 허물이나 죄는
까만 타일 위에 있는 검불처럼 눈에 분명히 보이지만,
혹여 내게 있는 허물이나 죄는
같은 색의 대리석 바닥이나 카펫에 박힌 검불처럼
알지 못하는 건 아닌가 돌아보았습니다.
까만 타일이나 카펫 위를 막론하고
청소를 해야 할 때에 했으면
마음 경계가 없었을 테지만,
아직은 공부가 깊지 못해 마음을 챙겨야 겨우
검불이 있는지 없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허물이나 죄와 같은
색깔과 모양의 바탕을 마련해 놓은 채
지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시간,
커피 맛이 유난히 좋습니다.
삶을 경건하게 여기면 스스로 경건해 집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16 겨울산을 바라보며 67
아름다운 님!!!
차를 운전하며 바라보는 겨울 산이
참 허허롭습니다.
뭔가가 비어있다는 느낌이지요.
울울창창한 숲의 모습만을 알고 있다면
지금의 산 모습은 황량하기 그지없을 테지만
연두 빛 새순이 돋고 초록으로 채워질 산을 알기에
지금의 산 모습도 당당한 아름다움입니다.
잎을 모두 떨구고 서 있는 나목들이
홀로 서 있는 듯 하지만
뿌리와 뿌리로 엉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 있습니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쑥쑥 자라는 가지로 어깨동무를 하고
초록빛 더해지는 이파리들은 악수를 할겁니다.
나도 덩달아 나무와 함께 어깨동무하고
악수도 나누면서 지나온 계절을 얘기할 겁니다.
혹시나 내가 만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부정적이거나 모자라고 부족한 면만을
골똘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아 채워지는 사람임을 믿는
넉넉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16 마음으로 세상보기 32
아름다운 님!!!
늘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찾는
보람들은 많은 기쁨과 유익을 줍니다.
급한 볼일로 서울에 다녀오느라
피곤한 몸인데도 일상속에서 소요(逍遙)하며 지내니
금새 충전되는 삶의 진기가 느껴집니다.
우리 몸이 이런 메커니즘이 없다면
아마 쉬이 살아내는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몸을 사랑하는 일로 한의원에 다녀왔습니다.
일전에 별로 좋지 않은(제대로 사랑해 주지 않은) 발이
욱씬욱씬 거려 침을 맞기 위해서지요.
발목을 찜질한 뒤에 침을 맞고 누웠습니다.
3층인데 바깥 풍경이 제법
그럴 듯하게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조용히 밖을 응시하는데 구름이 흘러갑니다.
가끔 작은 점으로 나는 새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보니
마음의 눈으로 다 보입니다.
전봇대가 하나 서 있는데 애자에 감겨
팽팽하게 늘어져 있는 전깃줄에
전기가 흐르는 것이 보입니다.
그 옆에 서 있는 은행나무도
시린 겨울물을 빨아올리고 있고,
바람은 적당한 느낌으로 불어옵니다.
그것들 모두 가슴에 옮겨 담으려는
욕심을 냈다가 얼른 그대로 둡니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침을 다 맞았습니다.
발목이 한결 시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시원하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21 팔방미인 26
아름다운 님!!!
한 며칠 게으름을 부렸습니다.
숲속길 가족 여러분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마음 깊은 곳에선 병이 났는데
게으름을 부리다보면 그것도 익숙해지나 봅니다.
좋은 일은 습관들이기 어렵지만
나쁜 일은 습관들이기 쉽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물론 좋고 나쁨을 나누기 전에
무언가를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을 때
하고자 하는 일의 성공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흔히 쓰는 말에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하는 말이지만
대체로 "여러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
이라는 뜻과 "아무 일에나 조금씩 손대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의 뜻입니다.
팔방미인을 요즘 말로 풀이하면
멀티플레이어라는 말과 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팔방미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여러 방면의 일에 능한 사람"이라는 의미보다는
"(한 가지 일이라도)어느 곳에서나 쓰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월드컵의 스타 송종국선수를
흔히 멀티 플레이어라고 부릅니다.
그 선수는 축구라는 한 가지 일을
공격이나 수비 어느 면에서든
활용할 수 있는 선수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런 의미는 팔방미인이라는 말 속에
이미 들어있는 의미입니다.
팔방이라는 말이 이미 동서남북 사방과
그 사이의 간방인 사유(四維)를 뜻하니
이미 공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끝에 저를 돌아봅니다.
저는 과연 "여러 방면의 일에 능한 사람"인가
아니면 "(한 가지 일이라도)여러 곳에서
쓰일 수 있는 사람인가"를 말입니다.
전 아무래도 전자의 능력을 갖추긴 어려울 것 같고
후자의 쓰임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23 마음 챙긴 순간이 공부기회!! 24
아름다운 님!!!
다른 곳은 어쩐지 모르지만 내 사는 곳엔
하얀 눈이 쌓입니다.
얼마전 칙칙했던 도시의 빛이 바뀝니다.
가벼운 몸짓들이 땅을 향해 질주하는
고요한 시간의 틈새속에서 눈을 맞습니다.
더러는 땅에 쌓이지 않고 전깃줄에 걸려
위태로워보이는 높이를 만들고 있지만
그 빛은 여전히 하얗습니다.
눈을 맞으며 운동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습니다.
문득 하늘을 올려보다가 든 생각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눈들은 저렇게 틈이 많은데
땅에만 떨어지면 서로 부둥켜안고
쌓이는걸까 하는, 좀은 유치한 생각을 말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쉼없이 쌓이는 것이
바로 모여지고 뭉쳐지는 힘인가 봅니다.
발등이 많이 아파 그동안 운동을 좀 쉬었습니다.
그 기간이 한 열흘 가까이 됩니다.
다시 하면 힘들것 같았는데 의외이다 싶게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집니다.
무슨 까닭일까를 곰곰 생각해 보니
욕심을 놓아둔 때문입니다.
처음엔 욕심으로 운동했는데 지금은
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 수 있겠지요.
참, 아침 얘기를 좀 하지요.
늘 다니는 길에 신호등이 새로 생겼습니다.(일주일정도 전에)
평소에는 차가 오나 안오나만을 살핀 뒤
얼른 좌회전을 해야하는 곳인데
신호등이 생긴 이후에는 좌회전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해야 합니다.
평소에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고 여기는 저도
나도 모르게 신호 위반을 하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익은 습관 탓입니다.
오늘은 마음을 챙겨 무조건 섰습니다.
그랬더니 뒤의 차들이 난립니다.
그 시간을 못 참고 몇몇 차는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을 합니다.
그저 아무 일 없기만을 바라는거지요.
오랫동안 익은 습관을 졸지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적당히 하려면 오히려 안됩니다.
마음을 챙긴 그 순간이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마음이 든 바로 그 순간이
담배를 끊는 가장 빠른 길이 됩니다.
"있는 담배 피우고"난 뒤에는 절대
금연이 되지 않습니다.
눈쌓인 곳이 많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아침에 길 나서는 가족 모두 조심하고
또 조심하길 빌겠습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23 눈을 실컷 보아 눈이 피곤한 날 18
아름다운 님!!!
하얀 면장갑을 끼고 다시 장갑 하나를 덧꼈는데도
손끝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아린 아침을 보냈습니다.
어제 하루동안 내린 눈이 온통 은천지를 만들어
눈은 즐거웠지만, 발길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듯
아침 나절 눈 길을 치웠습니다.
가래로 밀고 다시 빗자루로 쓰는 지리한 일이었지만
내가 쓴 눈 길을 누군가가 발 버리지 않고
지나는 모습을 보니 그도 또한 즐거움입니다.
눈(雪)을 실컷 보아서인지 눈(目)이 피곤합니다.
모니터를 보는 것도 좀 그렇네요.
그 핑계대고 숲길편지를 짧게 쓰려고요..ㅎㅎㅎ
안녕히 주무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25 밥상의 정, 밥상의 대화 20
아름다운 님!!!
일곱명이 모여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60대, 40대, 30대, 20대가 골고루 모여 두부요리집에서
두부정식과 순두부, 모듬전으로 황홀한 점심이었으니
마음에 점 하나 찍은게 아니고 커다란 획을 하나 그은
그런 성찬의 점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점심이 소중했던 건
이처럼 세대를 뛰어넘는 만남의 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세대가 다른 만큼 메뉴를 정하는게 어려울 것 같지만
답은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어르신이 가장 먼저 "나는 뭐든 잘 먹네"
막내인 20대들은 "사주기만 하세요"
다른 사람들도 서로 배려하다 보니 몇 개의 메뉴가 나왔는데
쉽게 두부 요리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덕담이 오가는 점심이었다는 것입니다.
하긴 먹는 자리에서 좋은 소리가 오가지 않으면
밥상의 분위기는 썰렁할텐데
그렇지 않은 만남이니 서로가 서로의 하는 일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하는 아름다운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밥상에서는 대화가 반찬이라는 말,
쉽게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밥상은 밥만 먹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밥상에서 얘기를 많이 하는 아침이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1/30 멈추고 털어내는 무심의 공부 44
아름다운 님!!!
어찌된 영문인지 눈이 피곤합니다.
일찍 집에 와 좀 누운 것이
12시를 훌쩍 넘기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운동도 까먹었구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든 부딪힘인데
그 부딪힘으로 즐거우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다면 삶이 고통일 수 밖에요.
물론 내 힘이 있다면
쉽게 넘길 수 있는데도
내게 힘이 없다면 넘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나를 돌아봅니다.
내가 감당할 힘이 없는데도
부딪치려고만 하지는 않는지,
돌아가는 것이 결코 늦는 일만은 아닙니다.
피한다고 해서 꼭 지는 일만은 아닙니다.
그 일이 정말 내 생명과 관계있는 일이라면
죽기를 각오하고 죽음으로 달려들어야 하지만
흔히 우리는 나와 관계없는 일에 열을 내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 나서기도 합니다.
선후를 알면 도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부딪힘의 관계도 결국은 선후를 아는 일입니다.
지난 일로, 이미 저질러진 일로
너무 마음 아파하면, 괜히 나만 손해보는 일입니다.
멈추고 터는 무심의 공부,
쉬지 않아야 할 삶의 공부입니다.
고운 꿈 꾸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01 쌓인 피곤이 있으면 곤한 잠에 모두 날려버리시길... 22
아름다운 님!!!
새해의 첫날이 좀 피곤한지 자울자울 졸리운 모습입니다.
부지런히 서두르는 귀경의 나섬이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지만
아직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바로 밑의 동생네만 보내면
시끌사끌한 새해 아침의 부산함은 고요의 적막속에 쌓일 겁니다.
다시 부모님 두분만 남아 남은 음식을 드실려면
몇날 며칠을 지나야 할지 모릅니다.
정월 초이튿날은 아버님 생신이라 미리 생일상 차려드리느라
설날 음식에 케잌만 하나 놓고 몇 차례 노래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아버님 생일 축하 노래 불러드리고, 다시 섣달 스무여드레가 생일인
큰 형님 생일 축하, 그리고 1월인 생일인 막내까지
몇 차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설날 케잌까지 먹게되는
뜻하지 않은 횡재에 연신 싱글벙글입니다.
이번 설에도 역시 세배돈에 아이들 표정이 많이 변합니다.
제 아이들(민성, 민수, 민지)은 제대로 세배를 못했지만
그래도 꽤많은 세배돈을 받았지만, 제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배돈도
적잖아서 손해(?)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즐겁습니다.
전 처가가 바로 한 동네라 귀성과 귀경의 괴로움은 알지 못합니다.
사실, 모르다는 표현보다는 요즘은 그런 고민을 않는다는
말이 맞을겁니다.
왜냐면 예전엔 저도 강원도 정선까지 다니느라 꽤나 고생을 했으니까요.
가까이에 부모님을 모셨다는 것만으로 명절에 이런 호강을 합니다.
피곤이 쌓이지 않는 설날이었으면 합니다.
참, 내일 아침은 장모님 생신이라(아버님과 같은 날임)
하루에 두번 미역국을 먹을 예정입니다. 미역국은 어지간히
좋아하거든요.
쌓인 피곤이 있으면 이 밤 곤한 잠에 모두 날려버리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04 잘 맺는 공부 32
아름다운 님!!!
북경에 있는 한 선배가 한국에 나왔다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북경에 머무른 몇 차례동안 많은 도움을 받아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뒤늦게 다른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외식을 하는 것보다 집에서 간단히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분이라 망설였지만
유쾌한 초청에 흔쾌히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정말이지 모처럼만에 먹어보는 정갈한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동안 식사를 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것 같다 생각했는데
자주 가는 중국 음식점의 사장님이었습니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 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아름다운 관계가 이어질 것 같은 사람들이
영원히 남남이 되어 사는 경우를 많이 보곤합니다.
그러니 한 번 인연을 맺을 때 잘 맺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괴로움과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괴로움이 크다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면서
인연은 지을 기회가 오면 잘 지어야겠다는 생각,
생각만으로 그쳐서는 안되다는 다짐을 새롭게 합니다.
다음에 그 음식점에 가면 더 살갑게 만나지 않을까,
벌써 그집의 짜장면이 먹고 싶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04 입춘 즈음에 29
아름다운 님!!!
멀것만 같던 봄이 한결 가깝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꼭 "입충(立春)"이라는 절후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몇 차례 꽃샘 추위는 있겠지만 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 "입춘"이라는 말만 생각하면 꼭 청보리밭이
그 파릇파릇한 봄의 전령사같은 푸름이 너무 좋습니다.
어린 날, 입춘이 되면 할아버님은
꼭 논에 나가 보리를 뽑아오도록 시켰습니다.
보리뿌리가 나는 것을 보고 그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는데
뿌리가 갈라진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거의 100% 풍년을 뜻하는 보리뿌리를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린 바람속에 건강하게 키우려는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보리밟기를 겸한 지혜같았습니다.
이맘때면 안티푸라민에 익숙해진 손등 갈라터진 결이 메워지고
밥상에 오르는 반찬도 한 두가지 새로운 게 오릅니다.
주로 보리잎으로 끓이는 된장국과 가끔 부지런을 떨면
냉이와 곰밤불레 등이 된장에 묻혀져 밥상에 오릅니다.
그 알쏘롬한 봄의 입맛이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입춘"하면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봄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입춘(入春)이 아니고
봄을 세운다는 뜻의 "입춘(立春)"이라는 것입니다.
즉, 봄은 우주 자연의 질서속에서 자연스럽게 와지는 게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열어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봄은 그냥 청하지 않아도 오는 손님이 아니라,
내가 모셔와야 하는 내가 만들어가는 계절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겨울의 긴 장막을 걷고 봄을 열기는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봄을 만들어가는가는 내게 맡겨진
삶의 정언명령을 실천할 때가 온거죠.
우리 모두의 봄이 따사로울 겁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06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때 30
아름다운 님!!!
눈알이 씸벅거리는 것이 여간 불편한게 아닙니다.
모니터를 너무 많이 봐서이다 싶어 좀 멀리해도
한 며칠 날 힘들게 할 요량인지 아예 자리를 잡고
모든 신경을 눈으로 모이게 하나봅니다.
미리 살피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이른 저녁,
찜질방에 다녀왔습니다. 한 두어시간 땀도 흘리고
몸안에 쌓인 내것 아닌 내것들과 이별을 했는데
눈알이 아픈건 쉬이 개이질 않습니다.
손발바닥의 충혈에 좋은 혈자리를 눌러주고
계속이다시피 눈을 감고 있었더니
조금은 개이는 듯도 싶습니다.
그때 한 벗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눈이 좀 아파 찜질방에 와 있다고 하자 대번에
그 치료 방법을 알려줍니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본 것이 아니냐?"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보지 않으면 된다고 알려줍니다.
보아야 할 것도 분급을 다투고 생명과 관계있는 일이 아니라면
아예 안보거나 덜보려는 노력을 더 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담박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겐 스승같은 벗입니다.
내가 멀리할 수 있는 경계들을 미리 짓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경계이면 미리 피하는 것도
상책일것 같습니다.
눈이 아파도 이렇게 공부하는 날은 행복합니다.
어떤 경계속에서도 공부하는 나날되셨으면 합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08 봄비에 젖으며 29
아름다운 님!!!
종일 봄비가 내립니다.
옷을 좀 덜 여며도 스미는 바람이 찬기보다는
미약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바람입니다.
잠깐 잠깐은 비도 조금 맞으면서
커피 한잔을 마셨더니 너무 분위기 잡는다며
뭐라 궁시렁거립니다.
그러던지 말던지 봄비속에 변화하는 대자연의 모습을
눈빛따르고 마음길 열어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일전에 내려쌓여있던 눈들이 흠씬 젖으며 녹아내리고
뿌연 먼지옷을 입고 있던 차의 얼굴도 설핏 씻어줍니다.
눌긋한 잔디밭 사이에 벌써 청하지 않은 풀들이
삐죽삐죽 자라는 걸 보니 졸음에 겨운 제 봄날을
고스란히 반납해야지 싶습니다.
목련처럼 꽃움이 크지 않은 나무들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꽃움 커지는 것이 때 때가 다릅니다.
아무튼 봄비는 뭔가를 녹여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어있는, 얼어있는 수많은 관계와 관계도
이 봄비에 녹아흘렀으면 싶습니다.
일방적인 선전포고로 전쟁의 위협에 놓여있는 이라크나
북한핵의 해법을 놓고도 서로 의견이 흩날립니다.
이 관계를 녹이는 봄비같은 존재가 무엇일까,
아직 공부가 짧고, 세상 바라보는 눈이 크지 못해
그 답은 알지 못합니다.
가까운 벗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내가 좀 손해본다는 생각, 저 사람을 좀 더 배려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이 아름다운 사이를 가꾸는 마음이 아닐지..
봄비에 젖어 이런저런 생각만 많은 밤입니다.
모든 소리의 경계를 잊고 고운 꿈 꾸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09 봄날 34
아름다운 님!!!
막아도 막아도 온다는 봄이 오늘 같은 날씨 때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사한 봄날입니다.
대지의 습도도 적당하고 바람도 알맞게 불고
뜨겁지 않게 내리쬐는 봄볕이 어찌나 좋은지
일없이 밖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이런 날 어딘가로 훌쩍 떠나면 좋으련만 그리
여유있는 생활은 아니어서 일터 주위에서 부지런히
봄을 주웠더니 몸 가득 봄이 차오르고
마음은 벌써 가벼운 옷을 입나봅니다.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드니 말입니다.
어찌보면 그날이 그날인것 같지만
마음이 살면 그날은 온통 은혜의 날입니다.
그러니 내게 오는 모든 날이 기쁨이고 보람이고
유익인 셈이지요.
습관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봄날이라는 제목으로
끄적인 시 하나 보냅니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오랫동안 마탁한 글이 아니라
어설프긴 하지만 봄날의 하루를 그린 것이니
싱싱함으로 함께 했으면 싶습니다.
월요병 없는 월요일 맞으세요.
♥봄날♥
침침한 어둠에 익숙해 질 때쯤
온전히 눈뜨지 못하고 시린 낯으로
참 눈부신 봄볕을 쬡니다
가슴 벙그는 눈부신 모습으로 돌아올 줄이야
더디게 달려온 이 살진 바람과 함께
이별이 서럽지 않은 기다림을 배웁니다
지며 채운 꽃망울들 뽁뽁 터지는 탄성과
눌러 쌓아둔 눈 녹아 흐르는 봄 강물
맑디 맑은 그리움으로 흐릅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11 싫은 마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돌리기 23
아름다운 님!!!
무슨 일을 할 때 괜히 하기 싫은 마음이 날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모르는 것 없이
다 아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어느 정도 공부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싫은 마음이 납니다.
이럴 때 스스로 자포자기하여 그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
괜히 우쭐해서 건방을 떨 때도 있습니다.
운동을 시작한지 꼭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 운동을 할 때는 목적하는 몇 가지가 이루어지니
운동에 대한 즐거움이 대단했습니다.
10키로 이상의 몸무게도 줄였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싫은 마음이 납니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 작은 성과에
만족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건강한 몸을 만들려면 아직 멀었는데
현재의 적당한(?) 모습에 안주하려는
제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마음을 챙기고 보니 이 때가 바로
공부할 때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챙기지 않아도 저절로 되어지는 그때까지
쉼없이 계속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한 이틀 싫은 마음이 났는데 마음 챙겨 운동하고 나니
더욱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운동 마치고 나왔을때의 그 시원함이란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즐거움입니다.
오늘도 하기 싫은 마음을 이긴 행복한 밤입니다.
숲속길 가족 여러분도 몸이 하자는 대로 하기보다는
마음이 하자는 대로 몸을 이끄는 나날 되시길 빕니다.
가족 여러분의 숲속길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15 전지를 하며 34
아름다운 님!!!
어느 덧 2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네요.
어느 때 누구와 만나더라도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아야지
마음 챙기면서도 늘 놓치고 나서 후회하고
다시 마음 챙기는 일의 연속입니다.
요즘 사무실 주변 나무들이 생채기를 앓고 있습니다.
여러 나무들의 전지를 하는 중인데
그냥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내버려두었으면 싶은데
전지하는 분들의 톱질과 낫질을 비켜가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닌가 봅니다.
졸음을 쫓아 나뭇가지를 옮기는 일과
빗자루질을 거들었습니다.
왜 봄에 전지를 하는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긴 예닐곱 먹은 아이도 아닌데 궁금한게 참 많습니다.
한 겨울에 땅으로 땅으로 함축했던 물을 끌어올리는 때가
봄빛 완연하고부터인데
미리 자랄 방향을 잘 잡아서 생채기가 좀 나더라도
바르게 자라도록 잡아주는게 전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여쭈었더니 맞는다고 하는군요.
전지를 할 때는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마음의 키를 자라게 하는 것도 전지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술담배를 끊는 일도 적당히 줄여가며 하겠다는 건
끊지않겠다는 말의 다름이 아닙니다.
어떤 단호함이 있어야한다는거지요.
삶이란게 그런건 같아요.
달빛 환한 보름달 바라보며 부럼 많이 드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16 봄밤 36
아름다운 님!!!
왠지 모르게 생기가 도는 주말을 보냈습니다.
우주 자연의 기운과 합일되는 경험의 하나이겠지요.
사실 살아가면서 어떤 대상과 기운이 하나된다는 건
경건한 삶의 자세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맑은 날씨에 기운이 맑아지거나 흐린 날씨에
기운이 우울해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기운합일과 관련 있는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죠.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괜시리 미워지고 싫어지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하긴 삶의 공부라는 게 중도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지만
이 좋아하고 싫어함을 쉽게 고치거나 되돌릴 순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공부삼아 열심히 해야할 공부인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아름다운 인연을 만드는 고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새봄빛 그리워 쓴 시조 두수 보내드립니다.
건강하세요.
■봄밤■
시심의 꽃밭찾아
마음밭 헤매돌다
끄적인 원고지만 수북수북 쌓이는데
글 한 줄
얻지 못한 밤
달빛 홀로 흐르네
댓잎새로 바람 불고
푸른 안개 피는 새벽
찻물을 마련하여 우전(雨前)을 마시면
우우우(雨雨雨)
봄비 내리는 마음밭이 흠씬젖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18 아이고 우야꼬! 35
아이고 우야꼬!
분노할 힘도 없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아니면 지옥인가. 그래, 나는 지금 살아서 허탈할망정 이렇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있다. 그러나 이게 마음 먹는다고 삭혀질 일인가. 눈물이 다 말랐다. 내 온 몸이 떨린다. 세포 하나 하나가 무서워하고 있다. 두렵다.
우수가 내일인데. 이 찬란한 봄날을 다 맞이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떠난 고인들은 지금 어떤 세상을 맞고 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말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모국어가 생각나질 않는다.
1995년 4월 경북 상주에서 두어달 지낸 일이 있다. 대전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구에서 내려 스승님께 드릴 몇 가지 물건을 고른 뒤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탔다. 30여분쯤 뒤 지하철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난 목숨을 건졌지만 다행함보다는 죄없는 생명들이 죽어가는 참담한 모습에 몇날 며칠동안 불면의 밤을 보내야했다. 그 뒤 지하철 공사장의 철판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광주에서 살던 한 1년여가 그랬고, 어쩌다 올라가는 서울에서 만나는 지하철 공사장이 그랬다. 심약한 내탓일까, 그러겠지하며 자문자답하고 별 수 없이 그 길을 지나다녔는데 아! 이 무슨 날벼락도 이런 개같은 날벼락이 있단 말인가. 허허, 속뒤집어지는 쓴울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 찰나였을 텐데. 삶과 죽음의 길이 이리 짧은 순간에 갈라질 줄 알았다면 수없이 밀려드는 이 후회에 조금은 더 담담했을 텐데, 저 울부짖음이 헤어짐에 대한 서글픔뿐이라면 어쩌면 가벼이 떠날 수 있을 텐데 세상을 부여잡고 있는 수많은 미련 때문에 내가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분간없을 그런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 이 봄날, 하루 하루가 다른 봄 색을 자랑하는데 아침에 본 그 봄이 내 생에 마지막이라면 난 과연 이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쉬움이 밀려온다. 한 인간의 무지가 빚은 이번 참사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내가 지금 그 사람에게 무어라 욕하고 비난할 것인가, 결국은 내 탓인 것을.
우리는 죽음 앞에 서는 몇 가지 방법을 배우긴 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과 원불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천도'가 그것이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장사지낸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이고, 천도는 삶과 죽음을 둘로 보지 않고 부처님과의 인연을 깊게 하고 신심을 굳게 세우고, 청정한 마음을 챙겨 몸을 벗고 몸을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와 원불교에서는 49일 천도재를 지내기도 한다.
죽음은 산 자의 몫이다. 이것은 아이러니 같지만 분명 산 자의 몫이다. 다치신 분들의 쾌유와 돌아가신 분들의 편안한 영생의 길을 심축드린다. 이 글과 인연한 모든 분들이 내 종교가 무엇이든, 혹은 종교를 가지고 있고 없고를 떠나서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으면.
02/21 글쓰는 것도 사치 33
아름다운 님!!!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을텐데
군시절 화생방 훈련을 하며 한 5분 버티기도 힘든데
그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죽음의 길로 떠나신
수많은 내 고운 가족들의 영로가
지금도 어두운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글쓰는 것도 사치라 여겨집니다.
특별한 대책보다는 어쨌거나 더불어 한삶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어쩌면 더
확실한 대책이 아닐런지...
고인들의 영로에 마음의 꽃송이를 바치며
작은 노래로 그들의 영로를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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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오늘 만난 그대는 아, 지금 곁에 없고
노을 빛 끝으로 절망 속에 잠든 건지
그림자 하나만 크게 산을 덮고 섭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모두 두고 바람처럼 어깨 위에 걸어두고
이 어둔 절망의 땅속 말간 바람 쉬고픈데
아무리 보채봐야 소용없는 기다림만
쓰러진 꿈 하나만 내 머리 위 떠오를 뿐
이제야 그대를 알아 인연의 시 써얄텐데
"엄마 숨 못 쉬겠어!" 그 소망도 못 들어 준
살아있는 사치가 왜이리 부끄러운지
눈물도 삼키지 못하고 빈 하늘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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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웃이 잘 견뎌내고 이겨냈으면 싶습니다.
힘 내세요.
따뜻한 말 한 마디, 간절한 기도, 라면 한 그릇이
작은 위로가 되어 결국 일어설 수 있게 합니다.
간절한 기도를 보태며 술길편지를 접습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21 산 사람들의 몫 28
아름다운 님!!!
며칠째 계속 흐리고 빗방울까지 몇 그어댑니다.
쉬이 진정되지 않는 마음이 뭐라 설명하기 힘든
왠지 뭔가 빈 것 같고 싸늘한 냉기만 감도는
아직 봄이 먼 듯한 마음입니다.
우수가 지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유독,
마음만 열리지 않는 것은 조금 더
한울 삶을 살려는 마음 때문인가 봅니다.
가까이 가서 도와주지 못하고 마음으로 보태는
작은 기도와 위로가 나비의 날개 짓 한 번 이라 해도
이 기도는 쉬지 않겠습니다.
죽음의 길에 설산(雪山)에서의 죽음과
화산(火山)에서의 죽음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죽음이라는 결과는 같은데 흔적이 있고 없음의 차이입니다.
내게 다가오는 경계는 이 둘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극단의 상황이 와서 결국 죽게 된다면
그리움의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집단 망각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너무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적당주의와 대충주의,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삶의 방식이
늘 반복되고, 또 다시 지난 일을 돌아보며
다시는 이런 일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보지만
여지없이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또 다시 허탈해지곤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사후약방문일지언정
외양간을 고치는 노력과
똑 같은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일이 산 사람들의 몫입니다.
이 봄이 무겁습니다.
비록 조금은 버겁고 잊고 싶을지라도
가슴에 담아두고 감당해내야겠습니다.
자제하고 조심하는 주말 맞으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23 조금만 더 우울하기 36
아름다운 님!!!
봄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좀 멍해지는 듯한 기분입니다.
아예 일이 없으면 서글플 것 같아서
온 몸으로 비에 젖고 있는 소나무들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생기가 돌곤 합니다.
요즘 쓰는 글들은 뭐랄까,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듯 합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무리 우겨도
어쩔 수 없이 더불어 함께 사는
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든 아픔 가진 사람들과 공감하는
방법 가운데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 방법도 열심히 써야하지 않을까요?
독자의 한 마디에 올려주신 소중한 글도
아무런 덧댐없이 그대로 놓아두렵니다.
일상의 흐름이 좀 더 자연스러워지면
좀 더 가까이 숨쉬었으면 합니다.
아직은 아니거든요.
저와 인연 있는 분도 따님을 잃으셨답니다.
아무리 담대하려고 해도 안된다는 말씀이
머릿속을 뱅뱅뱅 맴돕니다.
부디 기운 내세요.
가족 여러분이 기도도 많이 해 주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25 엉킨 실타래 풀기 29
아름다운 님!!!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손사래를 쳐도
어김없이 봄입니다.
이 해의 봄은 없었으면 싶을 사람도 많겠지만
어김없이 돌고 도는 우주 자연의 질서는
한치의 빈틈이 없이 풀리고 있습니다.
우리네 마음도 춘풍에 얼음 녹듯 다 풀렸으면 싶지만
쉽게 잊혀지거나 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은
마음 하나가 울고 있는지 모릅니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걸리더라도 한올씩 다 풀어내는 것과,
적당히 풀고 적당히 끊어서 버리는 것,
그리고 엉킨 실타래를 아예 버리는 것도
그 한가지 방법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도 엉킨 실타래 하나 들고
풀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그 실타래를 다 풀어서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낑낑거리며 풀고 있는지 모릅니다.
바느질에 쓸 실타래는 버리면 되지만
삶이라는 실타래는 결국 풀어야할 숙명이란 생각이 드네요.
저녁 무렵 미국으로 떠나는 두 벗을 위한 송별회장에 다녀왔습니다.
거창한 모임은 아니고 가까이 있는 10여명이 모여
저녁 식사 한끼 나누고 아낌없는 격려와 당부의 말을 전하며
마음의 벗으로 영원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였답니다.
그렇게 저녁 한끼 먹고 늦은 밤 버스 타고 서울로 향했답니다.
밥 한끼 먹겠다고 그 먼길 달려온 건 아닐 테고,
정이 무언지, 부디 건강히 뜻하는 일 원만히 이루길 기도하며
헤어져 돌아오는 길이 조금은 쓸쓸합니다.
화요일은 불꽃처럼 많이 웃으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26 숲속길을 걸으며 31
아름다운 님!!!
어젯 밤 잠을 설쳐서인지 점심 먹고 나자
노곤한 잠이 스멀스멀 기어나옵니다.
자그마한 일터가 기대 졸만한 틈도 없어
아예 잠을 떨쳐내는 적극적인 방법을 찾는게
더 효과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자주 다니는 숲속길이 있는데
그동안 심난하게 생겨서 잘 다니지 않았었는데
날이 풀리자 얼른 가보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눈길에도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좁은 숲속길은 아주 천천히 느릿한 걸음으로
오감을 열어두고 걷는게 제일 좋은 걸음입니다.
그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모두 놓아버리자 숲속의 모습이 제대로 보입니다.
보인다기 보다는 보고 듣고 느껴지는
오감의 결정입니다.
연초록빛이 가득 들어차 있지는 않지만
30여분의 산책이 무척이나 상긋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산책 후 소감이랄까요..몇 자 끄적여봤습니다.
고운 꿈길 되길 바라며, 작은 기도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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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숲 속
식곤(食困)의 한낮에 초록 생각에 젖어
울울창창한 이파리들의 군무(群舞)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벌어진 외로움의 간극이
내밀한 수액으로 채워진다
늘 다니던 숲 속 길을 몇 달 동안 외면하여
묵혀졌을지 염려되어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봄비에 질척이는 숲 속 길을 걷다 문득,
모든 게 낯설어지는 느낌이 당황스럽다
그대로인줄 알았는데
지난 대한(大寒) 무렵 큰 눈에
가지 찢겨진 소나무 한 그루와
비스듬히 누워 자는 나무들을 베어내는
저 무심의 손길 위로
포르릉 포르릉 산새가 난다
조금 더 기다림을 가져야할지
꽃들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저 마다
마디마디 달고 있는 꽃망울이 와그르르 벙그면
난 미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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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2/27 밤새 잠을 설쳤더니 23
아름다운 님!!!
밤새 잇병을 앓았더니 아침엔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평소 약이라곤 잘 먹지 않는데
타이레놀 하나 먹고 겨우 잠들었습니다.
오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부랴부랴
치과병원에 갔다가 잔뜩 혼이 났습니다.
평소 안면이 있는 의사 선생님이
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말입니다.
통증만 가시도록 조치를 한 뒤 돌아와서 일을 마저 보았습니다.
밤새 잠을 설쳐서인지, 아니면 봄기운에 취해서인지 모르지만
병 걸린 닭처럼 자울자울 졸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찜질방엘 갔습니다.
바로 땀빼지 못하고 바로
수면실에서 푹 자다 깨보니 여덟시가 가깝습니다.
밥 한 그릇 사먹은 뒤 들락날락하며 땀을 뺀 뒤
돌아온 시간이 지금입니다.
늘 일 지내고 난 뒤에 후회하는 절 보니 아직
공부가 멀긴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도 오래 전부터 이상징후가 있었는데도 괜찮겠지 하며
그냥 내버려둔 게 화근이 되었나봅니다.
모든 일의 선후를 알면 도에 가깝다는
성현의 가르침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지혜일텐데 무심한 듯 내버려두다
일을 더 키우고 만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 치료에 정성을 들여야겠습니다.
고운 꿈 꾸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1 춘곤의 3월 29
아름다운 님!!!
아직 한참이나 남은 줄 알았는데
2월은 벌써 석별의 인사를 건네고 저 멀리 갔네요.
3월, 왠지 모르게 온몸이 스멀스멀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 드는 달입니다.
봄이라는 말로 치환될 수 있는
우수니 경칩이니 하는 절후들이 끼어 지나고
늘 그 햇살이지만 웃음이 한 꺼풀 덧씌워진 것처럼
하냥 다사롭기만 합니다.
이젠 조그만 뛰어도 땀이 많이 납니다.
농구를 한 20여분씩 두 게임이나 했더니
땀이 어찌나 많이 흐르던지 하나씩 웃옷을 벗게 만듭니다.
춘곤(春困)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봄이면 괜히 피곤해지고 나른해지는 병이
다름 아닌 춘곤증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 가운데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환절기가 몸이 가장 부대끼는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2월과 3월의 자리교대가 바로 그 중간쯤일 것 같구요.
춘곤을 떨구어내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우선은 얼른 겨울을 잊으라는 겁니다.
아닌 것 같지만 자꾸만 겨울의 끝자락을 붙들고
춥다 춥다 웅크리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봄은 소리없이 오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움직이라는 겁니다.
겨울이 정적인 계절이었다면 봄은 동적인 계절입니다.
자연의 소리도 한 옥타브 정도 올라가 있는 것 같고
몸도 많이 움직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적당히 흘리는 땀이 봄을 더욱 더 활력있게 만듭니다.
또 하나는 맛있는 식사를 하라는 겁니다.
모든 계절에 언제나 소용되는 말이지만
봄이 되면 가장 실감나는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밥맛이 없다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혼자 먹는 밥상이라도 봄나물도 차리고 새콤달콤한 밥상을 차린다면
춘곤은 저만치 달아나 있을 겁니다.
이 숲길편지를 쓰는 동안 3월 1일이 되었네요.
가족 모두 행복한 3월을 맞이하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1 첫 다짐을 다시 챙기는 23
아름다운 님!!!
국경일과 이어지는 일요일을 앞두어서인지
괜히 마음이 편해지고 몸도 조금은 느릿해집니다.
하긴 아무리 바쁘다고 아등바등 해봐야
시간의 노력에 정비례해서 결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니
적당히 여유를 부린다고 해서 그다지
손해보는 일만은 아닙니다.
책꽂이에 제멋대로 꼽힌 책들을 정리하고
새해 들어 적어 둔 글 나부랭이들을 한번 더 읽어보고
조금씩 생각을 덧대면 한결 맛스럽게 바뀌는 글을 보며
혼자 행복해 합니다.
일상을 정돈하고 살지 못해
어쩌다 한번 월례 행사처럼 다 뒤집어놓는 게
또 다른 일상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3월을 시작하면서, 왠지 손해본다는 느낌도 듭니다.
2월이 워낙 빠르게 지나기 때문입니다.
아마 요즘 가장 분주한 곳은 학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새내기들을 맞이하느라 청소도 다시 하고
선생님들은 학생들 가르칠 내용도 점검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낼 것입니다.
사내 아이 둘(민성이와 민수)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한 학기 살림을 챙기느라 저녁시간을 거의 보냈습니다.
색연필, 크레용, 연필, 색종이 등에 낱낱이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준비물도 챙기니 큰 쇼핑백에 가득합니다.
3월엔 새해에 약속했던 다짐이 식었다면
다시 챙기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싶습니다.
힘차게 파이팅 외치며 봄마중 하게요.
참, 시간내어 칼럼에도 들리시어
가족 여러분 사시는 얘기도 올려주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2 월요병 없는 월요일 24
아름다운 님!!!
일상의 바깥 길을 걸으며 다시 일상의 안으로 돌아옵니다.
자우룩한 봄 길을 걸어도 휴일의 안온함이 모든 걸
상쇄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저녁 무렵 벗 하나가 식사나 같이 하자고 부릅니다.
또 다른 벗과 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고
솟는 바람과 봄꽃을 기다리는 미륵사지 앞에서
함께 성찬의 저녁을 먹었습니다.
두부 한 모와 공기밥, 삼겹살 좀 구워놓고 먹는 저녁이지만
아주 오랜 벗들이라 모든 게 편안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사(?)를 했습니다.
살던 연립이 난방이 잘 안되고, 수도가 터지는 등
여러모로 생활이 불편하여 그동안 아이들 외가에서 지내다가
오늘, 연립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자마자 둘째 민수 이발해 주고 민성이 씻기고 지금 이 시간입니다.
내일부터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것이고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것입니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었다고 해도 별로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학년이 올라간다고 하니 한살씩 더 먹은 게 실감납니다.
민성이는 기린반이고, 민수는 다람쥐반이랍니다.
민성이는 어찌나 주견이 강한지 제일 큰 아이 반이 코끼리와 기린 두개 반인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반을 바꿔 달랬다 합니다.
그 이유를 물었지만 실실 웃으며 답을 피합니다.
아마 헤어지기 싫은 친구가 있나 보죠.
흔히 연휴를 보낸 첫 월요일은 뭔가 좀 어색하고
몸도 마음도 조금은 지치는 월요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어나서 얼굴 가득 미소를 펴 바르고
오늘도 즐거운 하루,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활기 넘치는 하루 될 것입니다.
월요병 없는 월요일 맞으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4 전체가 쓰임이 있는 것을... 28
아름다운 님!!!
햇살은 따스한데 바람 끝은 제법 맵 찬 날입니다.
여기저기 박혔던 검불들이 날아다니며 어지럽혀도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괜히 치운다고 치워봤자, 별 소용이 없는 일이란 걸 아는 까닭이지요.
잔뜩 녹이 슨 낫으로 바람에 끊어진 나무들을 버히어 내는데
슴베가 푹 빠져나와 쓸모 없는 낫이 되어버렸습니다.
흔히 무슨 연장을 사용할 때 한 부분이 전체인 줄 알지만
그 실은 여러 부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낫도 직접적인 용도로 쓰이는 부분은 날 부분이지만
슴베나 손잡이 등 여러 부분이 함께 있어야 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내가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서 낫의 날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 조직이나 단체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그 부분이 빠지게 되면
날이 본디 제 역할을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낫은 날만 소용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가 쓰임이 있는 것입니다.
새 아침, 아름다운 꿈 깨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5 횡재(?)한 날 23
아름다운 님!!!
제겐 조부모님의 유품이 두 점 있습니다.
하나는 할아버님이 쓰시던 목침(木枕)이고
다른 하나는 할머님이 주로 쓰시던 장입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손 자녀들 중
유일하게 저만 가지고 있는 유품이랍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뭘 찾으려하니
이것저것 뒤지게 됩니다.
장을 뒤지다가 묵은 원고지 뭉치가 보입니다.
한 오년 전에 써둔 낙서들인데
70여장 가까이 됩니다.
꼭 잃어버렸던 자식을 되찾은 듯 기쁩니다.
거의 초고(草稿) 상태의 원고인데
가만히 읽어보니 그 글을 적을 때의 마음이나
감상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납니다.
볼펜으로 쓴 것도 있고,
싸인펜, 붓펜으로 쓴 것 등 각양각색입니다.
그중에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적어둔 글들도 꽤나 됩니다.
제목만 해도 <통천문에 기대어><천왕봉 일출><연하촌사람들>
<촛대봉에 앉아><장터목에 부는 바람><나월(裸月)>
<세석에서 흐르다가><그대 눈빛을 그렸지> 등
많은 작품을 되찾은 겁니다.
서걱이는 무릎을 끌고 가며 잠깐씩 바람에 취하거나
보름달빛을 청해 한밤중, 텐트에서 잠들기 전
끄적인 것들이라 더 살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이걸 보고 횡재수라고 해야 하나요.
아마 누군가 옆에 있다가 한턱 내라고 하면 마음같아선
걸게 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끔은 눈길 안주던 살림들에도
눈길을 주어야 하나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6 흘러야 하는 것 35
아름다운 님!!!
전 어지간하면 후배들에게 밥값을 치르게 하지 않는데
오늘 저녁은 잡지사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근사한 저녁을 대접받았습니다. 퇴근길을 서두느라
지갑을 놓고 나왔기 때문이죠.
선배들에게는 잘 얻어먹고
후배들에게는 잘 사는 제가 된 것은 모두
제 선배들에게 배운 거랍니다.
관계를 맺는 한 방법이지요.
내게 은혜를 준 사람, 아니면 내가 은혜를 준 사람
그 둘의 관계에서 은혜의 주고받기가 끝나버린다면
이 세상은 결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못합니다.
고여 있는 물이 썩듯이
단발성(單發性)의 나눔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윤기 있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은혜는 흘러야 하는 거랍니다.
은혜를 베푼 사람은 그 은혜 베풀었다는 생각을
빨리 놓으면 놓을수록 마음의 키가 자랍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 받은 사실을 깊이 새겨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마음의 살을 찌우는 일입니다.
마음 키가 자라고 마음 살이 찌는 하루되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6 둘째 며느리까지 찜했습니다.. 12
아름다운 님!!!
이른 아침엔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종일 자작자작 비가 내렸습니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 아주 조금 내리 길래 그냥 갔더니
앞서 오던 후배 둘이 머리 빠지면 안 된다며 둘이 함께 우산을 쓰고
다른 하나는 제게 건네줍니다. 그 따스한 마음에 온 몸이 데워집니다.
참, 어제 있었던 일 하나 알려드릴게요.
민성이와 민수, 준비물이 많아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한 여자 아이가 민수야, 민수야 부르며 달려옵니다.
“애야, 안녕! 너 민수 좋아하니?”
“네, 좋아해요.”
“그럼 너, 커서 민수와 결혼할거니?”
“네, 꼭 결혼할 거예요.”
“애야, 내가 민수 아빠야. 그럼 시아버님이 되겠네.”
“시아버님 안녕하세요?”
개나리 꽃 빛 닮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고는 제 교실로 들어갑니다.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죠.
좀 전에 큰 아이 데리고 마트에 다녀왔습니다.
이층에서 내려다 본 감나무 끝에 달려있는 물방울이 너무 말갛습니다.
반찬거리와 새참거리를 사가지고 와, 만두를 쪄먹었습니다.
너무 맛있네요. 운동은 하면 뭘 해.. ㅎㅎㅎ
뒤척이지 말고 숙면을 취하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7 횡재한 시 한 편 23
아름다운 님!!!
틀림없는 꽃샘추위의 날입니다.
괜히 어설프게 옷을 입었다간 오들오들 떨기 십상입니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 내복을 벗을까 말까로
오랫동안 망설였는데, 아직 벗지 않은게 정말 잘했다 싶습니다.
젊은 사람이 뭐 그러냐고 말하면 달리 대꾸할 말은 없지만
괜히 떠는 것 보다는 낫겠지 싶을 뿐입니다.
가족 한 분이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일전에 횡재(?)했다는 숲길편지를 보내놓고
왜 혼자만 차지하고 앉아있냐는 핀잔인 셈이죠.
오랜동안 글을 쓰면서, 시를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20여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그저 시가 좋아 그 끈을 놓지 못하는 습작을 할 뿐입니다.
하긴 예전, 열 예닐곱과 스무살 안팍 때의 시를 보면
어찌 그리도 난해한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번에 횡재했다는 글들도 지금 읽어보니
어색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고, 이것도 시냐 싶은 것도 있지만
어쨌거나 꾸준하게 시를 써왔다는 일관의 맛은 읽혀지는
그런 시이긴 합니다.
청에 못 이기는 척, 횡재(?)한 시 한 편 보내드립니다.
많이 웃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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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일출
하늘 가까이
좀 더 가까이
엉금거리며 기어오르는
덜 자란 젊은 탓에
긴 함성도 지르지 못하고
그저 흐휴-
기인 숨만 가빠온다
내가 사랑한
이 작은 일에 감동하여
산산(山山)이 이어진 초록 물결 사이
하얀 물감이 번지고
이제 마악
눈 끝에서 피어오르는 해 꽃
얼굴이 익어 붉고
가슴도 따라 피는
그 찬란한 개화,
산바람에 묻어오는
알싸한 꽃 향에 취해
푸른 눈물이 난다
어설픈 몸짓으로 열어가는
저 발 아래 진짜
세ㆍ상ㆍ이ㆍ보ㆍ인ㆍ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9 여백의 하루 30
아름다운 님!!!
늘 내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똑 같은 날이지만
주말은 왠지 내 삶에 있어서 여백과 같다는 느낌입니다.
삶이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진지하게
화판의 색감이나 터치 등을 살펴보는 그런 여백 말입니다.
너무 바쁘게 혹은 무언가에 쫓기며 살지는 않았는지
조금은 놓아두어야겠습니다.
조금은 지워내기도 해야겠고 말입니다.
가족 여러분의 주말도 넉넉한 여백의 하루이길 바라며
일전에 횡재했다고 말씀드린 시 한 편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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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에 기대어
채 잠들지 못한 새벽 별빛 따라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오르는 산정(山頂)
밤새 어둠 속에서 그린 달무늬가 바래져가고
이승의 말간 꿈이 쌓인다
땅위에서 어룽진 상처를 매만지는
하얀 손을 들어보면 드디어는
꿈도 타는 하늘인데
가쁜 숨, 거푸 마시니
순결한 아침이 잠 깨려하고
돌 틈 사이에 앉아있는
하늘 오르지 못한 정령(精靈)들
저, 저기, 푸른 하늘이 보이는데
거추장스러운 것과 부끄러움
아직은 벗지 못한 중생이라는 이름
그 오랜 허물을 벗고
하늘로 통하는 땅을 딛고 선 사람
참,
기쁘고도 다행한 일이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09 소요유(逍遙遊) 17
아름다운 님!!!
조금씩 욕심을 덜어내고 소찬에 먹는 저녁이 황홀합니다.
조금씩 마음을 키워가며 맞이하는 주말 저녁입니다.
오늘은 황사가 불어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는데
다행히 꽤나 청명한 하늘이었답니다.
조용히 혼자 즐기는 숲속길에서의 소요하다가
문득 올려본 하늘의 풍경이 여간 한가로운게 아닙니다.
일요일엔 평소보다 조금 느릿하게 걷고
생각도 조금만 하고 말도 아끼고
덜어내려 하지 않아도 미움이 욕심이 성냄이 덜어지고
오감을 열어두는 것도 조금은 아끼려 애썼습니다.
비워졌던 생기가 충전되는 느낌입니다.
주말 저녁 잘 보내시고 활기찬 월요일 맞으시길....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10 조각구름(편운 조병화 선생님을 그리며) 19
아름다운 님!!!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조각구름 하나가 비로 내리려는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습니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 아주 작은 그늘이라도 있으면 싶었는데
그럴 적마다 작은 조각구름으로 눈부심을 막아주었는데
그 구름 한 조각 돌고 도는 순환무궁(循環無窮)한
대자연의 철리(哲理)따라 지금도 여전히 도는지 모를 일입니다.
치기로 시를 쓰던 시절 전남 진도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우연히 선생님을 만나 도발적으로 시의 길에
대해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기고만장한 까마득한 후배 아닌 후배가
시의 길을 물으니 기가 찰 노릇이지만 어쩌겠는가?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으며 차 한 잔 들이킬 밖에
조주 선사의 “차나 한잔 마시게!” 선문답도 아닐 테고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감을 못 잡았는데
“차나 한잔 마시자는데 뭘 그리 망설이는가?”
조주 선사는 이미 준비된 차를 마시고 가라는 얘깁니다.
도라는 것, 깨달음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미 갖추어진 “그 것” 아닌가
그러니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걸 아는 것으로 이미 끝이기 때문이죠.
편운 선생님의 차를 마시자는 얘기는 여러 과정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혀졌습니다.
“시는 커피처럼 이것저것 넣고 휘저어 마시는 즐거움이 아니고
차를 마시는 것처럼 세상의 이 맛 저 맛을 함께 맛보아야 하고
하루아침에 제대로 된 차를 우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시도 하루아침에 써내려가서는 안된다”
쉽게 쓰지는 않는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자연에 대한 경건함, 사람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시라면
그저 허접한 쓰레기일 뿐이라는 채찍질이 무척 그리운 이 때에
훨훨 구름타고 하늘 날아 가셨다니, 이 태생적 게으름이 야속하기만 하니.
선생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단지,
멀리서나마 이생에서의 삶, 조각구름으로 다 날려버리셨듯이
저승에서의 삶도 가벼이 날려버리시고
완전한 해탈 천도의 길을 가시길 바랍니다.
시 쓰는 일이 두렵습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03/11 봄꽃을 즐기며 19
아름다운 님!!!
운동을 오가는 길에 세 곳의 화원이 있습니다.
화원 앞에는 모두 지난겨울 하우스에서 자란 봄꽃들이
가지런히 키재기를 하며 아름다운 인연의 집에서
고운 웃음을 전하고 싶은지 연신 고개를 쭈뼛거립니다.
개나리며 진달래 등 산에서 피는 봄꽃들과는
사뭇 다른 모양이지만 어쨌거나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언제 얘기한 적 있던가요.
꽃꽂이가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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