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길 편 지▒

♥2004년 1월 숲길편지 모음♥

자작나무숲이이원 2004. 1. 31. 12:22

♥2004년 1월 숲길편지 모음♥


[숲길편지·20040101] 인사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밤입니다.
세상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 가운데
가까운 인연과의 영원한 이별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시간에 익숙해지리라
힘은 조금 들겠지만 잊혀지리라 생각했는데
아버님 떠나신지 어느덧 3주가 지났습니다.

올 한해도 수많은 일이 내게 있었지만 그 많은 일들이
조용히 묻혀지고 생각 꼭지 속에 매달려만 있을 뿐
무언가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내진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두문불출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된 일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되지 않은 일도 많지 않은 그런 어정쩡한 나날이
모이고 모여 어느덧 한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고맙습니다.”
온 한해도 따뜻함과 그리움으로 함께 해주신 고운 인연들께
온 마음을 간절히 모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복 많이 지으세요.”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많이 하지만
정작 그 복이 오는 경로는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은 지어야 받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사랑합시다.”
믿음이 없고 불신과 탐욕의 어둠이 한 해를 억눌러왔다면
새해엔 모두의 마음열고 스스로의 평화와
온 이웃의 평화를 위해 서로 사랑하는 한해를 만듭시다.

저와 인연 맺고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새해 건강과 집안이 모두 행복하시길 빕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01] 새해를 맞는 일

 

너무 이른 시간에 서둘러서인지 콧물이 연신 나오고
머리도 조금 지끈한 게 새해엔 몸조심 하라는 신혼가봅니다.
하긴 새해가 되면 너도 나도 이런 저런 다짐들을 하는데
저는 그리 큰 다짐을 하진 않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조금 부족한 듯이 모자란 듯이
넘치면 나누고 모자란 것은 채우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새해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소망보다는
어떻게 하면 돈을 잘 쓸까 하는 다짐을 해봅니다.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일도
버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답니다.
신용만 잘 지켜도 사행심만 자제할 줄 알아도
돈은 그만큼 모이게 되는 법입니다.

새해엔 건강해야지라는 소망보다는
어떻게 하면 몸을 사랑하게 될까 하는 다짐을 해봅니다.
건강을 소망하면서도 건강을 해치는 일을
더 많은 하는 경우를 많이 보거든요.
조금씩 아프면서도 몸을 돌 볼 줄 아는 마음이
참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입니다.

무슨 일에 마음을 굳게 먹었으면 그 일을 위해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한 번 안됐다고 포기하지 말고
하고 또 하고 또 하다보면 결국에는 되어지는 이치가 있답니다.

새해 아침,
제가 들었던 맑은 종소리와 시원한 아침공기를 전해드립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02] 옴지락 꼼지락

 

늦은 시간에 집엘 갔더니
막내 민지가 우유 사러 나가자고 합니다.
모처럼 딸아이와 함께 나가는 길이라
먹고 싶은 과자를 사주겠다고 했더니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만 하지 쉽게 고르지를 못합니다.
필요한 몇 가지를 산 뒤에 이것저것을 들고 물으니
연신 고개를 내 젓다가 오렌지색 ‘제크’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딸내미와 어스름 달빛과 가로등 아래로
긴 그림자를 만들며 달리기를 하면서
하얀 웃음을 길가에 내려두고 왔습니다.

아이 엄마가 양치질을 했으니 과자는 내일 먹자고 말하니
미련이 많이 남기는 하지만 별 수 없다는 듯이
이내 수긍을 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30여분이 지났을까 싶은 시간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식구가 모두 아무 소리 없이 자는 줄 알았던지
과자 봉지를 꺼내 소리 없이 뜯는 소리가 납니다.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고 한참을 있었더니
TV 불빛 속에서 조그만 손이 과자를 꺼내
광에 있는 쥐 한 마리가 음식을 갉아먹듯이
조용히 옴지락 꼼지락거리며  과자를 먹습니다.

아! 얼마나 맛있을까,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하고 넘어 갑니다.

아이는 그렇게 크나 봅니다.
새해엔 민성이가 여덟 살, 민수가 여섯 살, 민지가 다섯 살을 먹습니다.
밤에 과자를 갉아먹으면서 함께 나이도 먹나 봅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03] 시원하고 섭섭한 날


작심삼일이 식으려하는 날입니다.
다시 마음을 챙겨야 하는 날이기도 하구요.
이렇게 놓친 마음을 다시 챙기고 또 챙기며
일년 내내 맑고 밝고 훈훈한 마음을 챙길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연초에 두 권의 책을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지난 서너 달 동안 매달린 거라 후련하기도 했지만
부족한 게 너무 많이 후회도 밀려옵니다.
좀 더 열심히 할 걸 한번 더 꼼꼼히 볼 걸
마음을 돌려보지만 이미 결정되고 미룰 수 없는 일이라
깨끗하게 잊기로 했습니다.

당분간은 머릿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무슨 일을 하지 않아도 괜히 머리가 지끈지끈한 경험 말입니다.
그런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개운하고 후련한지 모른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지요.
번역하나 맡아서 초벌 번역은 끝냈는데
아직 온전하고 매끄러운 우리말로 옮겨지지 않아
꼼꼼히 다시 읽는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유익 주고 대중에게 기쁨과 보람을 주는
일이라면 후회하지 않도록 아쉬움이 남지 않게
정말 열심히 하게요.

마음 챙기는 나날을 만듭시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05] 부끄러운 나이

 

나이가 들면 동심으로 돌아간다 하는데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사는 건 동심으로 돌아간 걸까
배내 짓 아이가 제 똥을 장난삼아 놀아도
예쁘고 귀엽기만 한데 세월이 지나
희끗희끗 머리에 흰 눈이 내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날이 너무 많아서인지
다 잊고 청산으로 돌아가는 날
가벼운 몸으로 떠나고 싶어
어머님 품안에서 응석부리던 그 날이 생각나
푸르디푸른 똥을 싸서 온 방에 바르면
바둑이는 킁킁거리며 달려들며 좋아하는데
저 늙은 아이들은 왜 얼굴 찡그리는 건지
부모님께 몸 받기 전의 나로 가야겠구나
그리움의 강이 흐르는 그곳으로 가야겠구나
세월의 옷을 벗고 저 강으로 걸어가
살며 지친 때들을 벗기고 강물로 흐르리
아! 시원해라.


먼 집안의 어른이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영면의 길을 떠나셨습니다.
전북 장수로 문상을 다녀왔는데 여러 생각이
교직(交織)되며 일어났다 스러집니다.
늘그막이 치매를 앓는 건 갓난아기로 돌아가고픈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안에 치매를 앓는 어르신이 계시면
자식들의 일상 생활이 모두 망가진다는 매스컴의 보도를 보지 않더라도
어르신도 힘들고 자식들도 너무 힘이 들었나봅니다.

어찌됐건 멀고 먼 죽음의 길을 떠나시며
몸도 마음도 가벼이 떠나시길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가족 여러분의 주위에 아픈 분이 계시면
살아 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보세요.
잘못이 있다면 용서를 빌고 감사함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그 고마움을 전해 보세요.
아마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르거든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05] 파리대왕


엉뚱한 질문으로 난처하게 만드는 민수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앉아 천장을 보니 좁은 전등 안에서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있는 파리를 보았습니다.

어쩌면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신기했는지
한참을 그렇게 앉아 보다가는 느닷없이 하는 말이

"파리는 뭘 먹고살아요?"

사실적인 얘기를 해주면서
파리는 깨끗하지 않은 거라고 말했더니
그 사실이 궁금한 게 아니라 저 좁은 공간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몇 마리 파리의 생존이 궁금했던 겁니다.
새벽부터 파리를 주제로 한참동안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아이들의 궁금함은 당연함인데도
귀찮다는 이유로 말 같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무반응이기가 쉽습니다.

하늘 사람인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것이 결국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전등 속의 파리는 뭘 먹고사나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06] 이사 가던 날


여러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미루고 미루던 이사를 오늘 했습니다.
어머님 집 이사와 함께 하는 이사라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이삿짐센터에 거의 맡겨하는 이사이긴 해도
잔손 드는 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닙니다.

어머님 집은 가까운 곳이라 짐을 싣고 옮겨 내리는데
세 시간 가량 걸렸지만 제 집 이사는
두 곳으로 나누어 이사를 해서 한나절이 꼬박 걸렸습니다.

제 짐 가운데 앵글로 만든 책꽂이 7개와 책 일부는
이모님 댁의 방 하나를 얻어 옮겼는데 방 하나가 가득 찹니다.
나머지 짐은 원룸 두 개를 얻어 이사를 마쳤습니다.

며칠 새에 다 정리하기는 힘들 것 같고
아마도 계절을 두어 번은 지내야 끝날 것 같습니다.
집들이도 해야 하는데 앉을 자리도 비좁네요.
그러니 어쩌죠. 마음으로 집들이를 하고
가족 여러분도 마음으로 참석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그래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녁은 어머님과 함께 했는데
이사한 집에서 첫날밤 맞이하시는 느낌이 남다르신 가 봅니다.
부모님께서 말년을 함께 보내실 요량으로 산 집인데
아버님 여의고 혼자 주무시는 잠자리가 껄끄러운지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늘 그러셨던 것처럼 잘 견뎌내시리라 믿습니다.
가족 여러분도 마음으로 따뜻한 기운 함께 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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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편지·20040108] 민수는 요리사


민수는 궁금한 게 많은 아이랍니다.
어젯밤엔 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만두를 꺼내고 렌지의 불을 켜고 프라이팬에
만두를 굽는 중 이었습니다.
뭘 모르는 어린 아이가 큰일을 낼까 염려도 됐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니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는 대견함도 보입니다.

민수는 말이 필요 없는 아이랍니다.
아주 어려서 우유를 먹고 싶으면 마냥 우는 게 아니라
우유와 젖병을 찾아들고 와서 방바닥에 탁탁 치면서
제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랍니다.
요즘은 만화영화에 빠져 지내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가 봅니다.
가끔은 고집을 피워서 그렇지 배려할 줄 아는 아이랍니다.
대신 만두를 구워준 뒤 혼자 하는 건 위험하다는 걸
몇 번 알아듣게 설명했지만 좀 더 조심해야겠습니다.

참, 어제 이사한 뒤에 살던 집에 남아있던
등 기구와 자전거를 가지러 갔더니
누군가가 열쇠를 뜯고 다 가져가버렸습니다.
허탈하기도 했지만 누군가 가져가서 잘 사용하기 바랍니다.
미리 챙기지 못한 제 잘못이 크니
미리 챙기는 공부에 대한 수업료로 낸 셈 쳐야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돌리고 나니 한결 편안해 집니다.

어머님 집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유선, 가스연결, 싱크대 등을 정리해 드렸습니다.
설 명절은 제대로 쇨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헌데 제 집 정리할 엄두는 아직 나지 않네요.
차츰 시간을 내야할 것 같습니다.

느슨해지는 새해 첫 마음을 챙기는 나날이 되길 기도할게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09] 어머님 사랑해요


요즘은 PC방에 와서 인터넷을 합니다.
이사한 뒤 아직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아서이지요.
한 시간 정도 사용하고 천원을 내는데 대학가여서인지
여러 게임을 하면서 내는 소리들이 가득 차고
담배는 왜 그리들 피워대는지 꼭 두더지 잡는 꼴입니다.
금연석이 따로 있어 찾아서 앉긴 하지만
그리 넓지 않는 공간이라 한 시간을 더하다보면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셈이지요.
저야 숲길편지를 쓰고 늘 들르는 지기들의 글방에
옮겨두다 보면 30여분이 훌쩍이고
나머지 시간에 잠깐 개인 메일을 확인하고
소식 전하여야 할 곳에 몇 자 적다보면
한 시간이 적당한 시간입니다.
내 욕심대로 PC방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저녁 무렵 어머님 댁에 가서 벽에 선반 몇 개 달고
너저분한 전기선들을 정리하다보니 두어 시간이 금방 지납니다.
오늘도 대여섯 차례 전화를 거셔서 자잘한 일상까지 상의를 하십니다.
오형제를 키우면서는 그렇게 강한 모습이셨는데
많이 약해지셨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있어 작은 도움이나마 드릴 수 있다는 게
여간한 다행이 아니지 싶습니다.

“어머님 사랑해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10] 과연 내가 했던 생각일까?

 

100여 박스가 넘는 책들을 정리하면서
아주 오래전에 내 손을 떠났던 책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잘 이해하지 못해 물음표가 수없이 적혀있고 끄적거려 놓은 단상을 보면서
내가 과연 저 때 저런 생각을 했던가
그 풋풋함에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집니다.

그중 니이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그땐 욕심으로 책을 읽던 시기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막고 품는 식으로 읽은 책입니다.

여러 색깔의 볼펜으로 메모가 되어 있는 걸 보니
한번에 읽은 것이 아니고 몇 차례 계속 읽으면서
그때그때 생각들을 적어두었나 봅니다.

“나이 서른에 고향과 고향의 호수 등의 풍광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그가 스스로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면서
10여년을 지낸 짜라투스트라의 기쁨”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단절일까?”
“고향의 호수를 떠나는 것은 편안함을 떠나는 것일까?”
“고독을 사랑한 것은 내면의 나와 대화하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일까?”
“네 정신을 즐기는 것도 이상의 현실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읽어도 참 좋습니다.
한 때 어렵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지금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전의 맛을 곱씹어보는 밤입니다.
내일 아침엔 태양의 외침이 들릴 것 같습니다.

“비춰야 할 자연이 있다는 것이 내 행복이다.”

아마 오늘보다 더 찬란한 해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11] 책걸이

 

 

일주일 동안 함께했던 고전 강독 시간을 마쳤습니다.
매일 오전 오후에 걸쳐 집중적으로 하는 공부라
힘이 들기는 했지만 여러 면에서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대학 시절의 방학이 떠오릅니다.
첫 일주일은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던 전집류의 책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읽고
다음 일주일은 다음 학기 수업을 미리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듭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미리 책을 읽고 요약한 뒤
입력하여 정리하면 다음 학기 레포트와 수업이
동시에 해결되는, 게다가 학점도 상당히(?)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랍니다.
그 나머지 기간은 거게가 주변에 한학을 하신 어르신을 찾아뵙고
한달여동안 쉬지 않고 책을 강독하며 배움의 갈증을 풀곤 했습니다.

요즘은 어찌나 바삐 지나는 세상인지
저도 한달동안의 시간을 내기는 어렵고
학생들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내기는 어려워
한 일주일동안 하루 종일 저는 입에 거품이 날 정도로 얘기를 많이하고
학생들은 그 강의를 듣느라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많은 것을 배웠구요.
다행히 학생들도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하니
그보다 더한 보람이 없습니다.

그 학생들도 먼 훗날 배움에 갈증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짜장면을 불러 맛있는 책걸이도 했답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공부를 하곤 계신가요?
아니면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함께하면 어떨까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12]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일찍 잠자리에 들려는데 절친한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술이 거나해서 한 전화인지 약간 말이 꼬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반가운 후배기에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후배 둘과 술을 마시고 나와 후배가 모는 차를 탔다가
음주단속에 걸려 후배는 경찰서로 연행되고
그 와중에 지나가는 차에 발등을 깔려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인데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저였답니다.

달려오기는 하겠지만 분명 혼날 것이 뻔한데도
혼날 것은 혼날 거고 그래도 가장 먼저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음주 운전한 것을 야단친 후
병원으로 보내고 생전 처음 보는 후배를 위해
경찰서에 갔습니다. 조서를 받는 동안 함께 있다가 데리고 나와
진찰 받고 입원해 있는 후배를 찾아갔다가
돌아온 시간이 지금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게 그 사람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는 밤입니다.

술 마시고는 절대, 절대 운전하지 마세요.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12]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금부터


어젯밤에 일도 많았지만 이가 어찌나 아프던지
진통제를 어렵사리 찾아 먹고
한참을 뒤척인 뒤에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통증이 쉽게 가라앉질 않아 서너 차례 잠을 깨서
아침나절엔 영 힘이 없는 게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습니다.

잠시 통증이 그치기에 이가 아프다는 걸 다 잊고
하루를 지냈습니다.
정작 몸이 아플 때는 약도 찾고 여러 가지 치료 방도를 찾다가도
아픔이 그치면 까마득히 잊는 게 사람인가 봅니다.

작은 아픔에 마음 모으면 큰 아픔을 미리 막을 수 있는데도
작은 아픔에 소홀하여 큰 아픔을 부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작은 기쁨을 잘 갈무리하여 큰 기쁨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작은 기쁨에 온 정신을 흩어버려 거기에서 만족하고 마는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인가 봅니다.

더욱 마음 챙겨 사는 것이 참 인생의 공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치료에 좀 더 마음을 모아야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리 살았다 해도
지금부터는 그리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래도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아빠가 힘들다고
안마를 해 달랬더니 세 아이가 달려들어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두드려줍니다. 몸이 한결 가볍습니다.

눈 소식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빙판길이 될 터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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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편지·20040114] 오늘 밤 하고 싶은 일

 

제법 눈다운 눈이 내려 한겨울의 정취를 온전히 느끼게 합니다.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이 세한(歲寒)의 호젓함과
자연의 호연함이 만나 이루는 상서로운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아 도는 것이 여간 상쾌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살이가 음과 양이 만나 한 곳이 높으면 한 곳이 낮고
한 곳이 모자라면 한 곳이 넉넉한 법입니다.
이렇게 자연의 넉넉함을 즐기는 한편에는
어려움을 당하여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는가 봅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가 생각납니다.
초우 옆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와
정갈한 글씨가 어울려 풍기는 선비의 고졸함을
그대로 배우고 싶은 밤입니다.

책 한권 읽고 잠들어야겠습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숲길편지·20040116] 차마 버리지 못하여

 


책꽂이에 책을 꼽았는데 500여권의 책은 결국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묶여진 채로
구석에 쌓아두었습니다.

이리저리 정리하다보면 자리를 찾기도 하겠지만
아직은 제대로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겠습니다.
그동안 메모한 것을 모아둔 상자를 정리해서
버릴 것과 남겨둘 것을 구분하고 보니
그것도 한 상자나 됩니다.

내일은 그것들을 태워야겠습니다.
끝내 버리지 못한 것중에 언젠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상이 떠올라 메모해 놓은 것은
언제 온전한 시로 태어날지 모를 일이지만
버리지 못하고 다시 모아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온전하게 버리는 연습을 하려면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듯 합니다.

그래도 이 시간까지 책의 향기에 묻혀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행복하게 합니다.
제대로 정리되면 여러분을 부를테니 성냥 사들고 오세요.
꿈도 없이 깊이 잠드시기 바랍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