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 - “빨간 펜” 공부
요산서재(樂山書齋:전남 함평 해보면 각궁리에 있던 서당)의 아침은 날씨와 관계없이 시리다. 이 아침 시간에 간밤에 수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당 공부를 마치고 부지런히 집에 돌아가 글만 외울 수 있는 복도 여간한 복이 아니다. 거개가 소 한 마리씩은 제 몫으로 키우던 때라 함태골에 매어논 소를 데리고 오는 일이나 쇠빗으로 소털을 긁어주는 일 등 자잘한 일을 처리한 뒤에야 글을 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외운 글을 훈장님 앞에서 조곤조곤 외우는 것이다. 낭창낭창한 시누대 회초리는 낙죽을 하여 인정고 없고 사정도 없다. 결과는 오직 하나, 외웠으면 그날 배울 글을 다시 써 주시고 풀이를 해 주시지만, 외우지 못했으면 두어차례 더 기회를 준 뒤에 여지없이 목침위에 올라서야 한다.
외우기가 끝나면 쓰기다. 창호지를 매어쓰는 공책에 글씨를 써주시면 초배지나 신문지, 갱지 등에 글씨 연습을 한다. 한참을 쓰고 있으면 세필로 틀린 부분을 고쳐준다. 그렇게 익힌 글씨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내 식대로가 아닌 바른 법대로 가르침의 줄을 잡은 것이다.
저녁나절 한 모임에 다녀왔다. 망년의 벗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을 놓고 품평회를 하는 칼날이 번득이는 예단과 결단의 모임이다. 처음부터 이 모임이 기다려지고 마음에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흔히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인간관계는 그 순간은 좋을 수 있지만 영원히 좋기는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중학교 시절 시를 쓴다고 깝죽대며 다녔는데 어찌나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는지 스스로도 천재시인이라도 되는 냥 기고만장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 마음속에 자라는 "문학"에 대한 작은 열정의 싹을 살리기 위한 칭찬이었는데 그것이 이미 열매 맺고 결실을 거둠에 대한 칭찬인걸로 착각하고 지냈던 적이 있다.
대학시절 시 지도를 받던 선생님께 수십 점의 작품을 내 딴에는 혼을 쥐어짜서 쓴 글이고, 스스로도 감동하여 만족했던 작품인데, 선생님의 '빨간 펜'은 인정이 없었다.
어떤 작은 여지라도 있는 게 아니라 잘 봐줘야 글 전체에 크게 엑스표를 그리는 것이었고 그것도 아니면 아예 북북 찢어버리는 거였다. 처음엔 '당신은 얼마나 시를 잘 쓰시길래'라며 비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오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꾸준히 쉼 없이 썼더니 엑스표나 찢어버리는 작품이 훨씬 줄어들었다. 50여점을 들고 가면 서너 점만 버리고는 다 살려주셨다. 그때부터 다시 '빨간 펜'으로 난도질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예 잘못 잡은 시상이나 시의 전개 등을 막기 위한 '빨간 펜'이었다면, 뒤의 '빨간 펜'은 잘 잡은 시상과 전개를 더 시답게 만들어주시는 사랑의 '빨간 펜'이었습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더 열심히 천착하라는 가르침이었다.
한 5년을 계속한 이 "빨간 펜" 문학수업은 어느 날 끝이 났다. 이제부터 찾아오지 말라고 하였다. 서운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제부터는 스스로의 시 세계를 찾아 정진하라는 거였다. 스스로 빨간 펜 공부를 하라는 거였다.
문학과 관련한 여러 모임이 있지만 한달에 한번 있는 이 품평회가 좋은 이유는 다시 "빨간 펜"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도하고 있는 문학 동아리가 하나 있다. 아직 학생들인데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나 작품에 대한 분석은 아주 뛰어난데,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기 작품에 대한 평가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기의 시상이나 전개를 합리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받았던 것처럼 "빨간 펜"수업을 하고 싶지만 그나마 있는 문학에 대한 열정마저 식을까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대학시절 ‘한국사’ 수업을 듣는 교수님의 ‘악명’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C나 D아니면 아주 잘한다고 해야 B를 준다는 것이었다. 가끔은 F도 남발했다고 하니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 수업은 교양 필수 과목이었기 때문에 선택이 여지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 2학기에 받는 과목이라 부담이 가중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학기 중에 리포트를 내 주셨다. 주제는 ‘한국의 역사를 보는 여러 시각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한국의 역사를 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그 관점들의 타당성과 거기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리하는 과제였다.
비슷한 종류의 글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은 쉽게 생각했나 보다. 난 나름대로 여러 책을 참고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여 내 딴에는 충실한 리포트를 준비하였다. 학기가 끝날 무렵 교수님이 불러 연구실에 가보니, 책 몇 권과 일전에 제출한 리포트를 되돌려주셨다. 그리고는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리포트는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작게는 오탈자, 시각이 좋은 부분은 왜 좋은지, 고쳐야 할 부분은 왜 고쳐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적어서 되돌려준 것이다. 그리고는 기말 고사를 봤다. A+를 받았다.
그 때 이런 다짐을 한 기억이 난다. 내가 만일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오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부가 한 단계 성숙할 때가 있다. 그 때는 다름 아닌 '충고'를 받아들일만한 마음이 준비되면 그 사람의 공부는 날을 기약하고 반드시 성공하는 공부가 되는 법이다
요산서재(樂山書齋:전남 함평 해보면 각궁리에 있던 서당)의 아침은 날씨와 관계없이 시리다. 이 아침 시간에 간밤에 수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당 공부를 마치고 부지런히 집에 돌아가 글만 외울 수 있는 복도 여간한 복이 아니다. 거개가 소 한 마리씩은 제 몫으로 키우던 때라 함태골에 매어논 소를 데리고 오는 일이나 쇠빗으로 소털을 긁어주는 일 등 자잘한 일을 처리한 뒤에야 글을 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외운 글을 훈장님 앞에서 조곤조곤 외우는 것이다. 낭창낭창한 시누대 회초리는 낙죽을 하여 인정고 없고 사정도 없다. 결과는 오직 하나, 외웠으면 그날 배울 글을 다시 써 주시고 풀이를 해 주시지만, 외우지 못했으면 두어차례 더 기회를 준 뒤에 여지없이 목침위에 올라서야 한다.
외우기가 끝나면 쓰기다. 창호지를 매어쓰는 공책에 글씨를 써주시면 초배지나 신문지, 갱지 등에 글씨 연습을 한다. 한참을 쓰고 있으면 세필로 틀린 부분을 고쳐준다. 그렇게 익힌 글씨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내 식대로가 아닌 바른 법대로 가르침의 줄을 잡은 것이다.
저녁나절 한 모임에 다녀왔다. 망년의 벗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을 놓고 품평회를 하는 칼날이 번득이는 예단과 결단의 모임이다. 처음부터 이 모임이 기다려지고 마음에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흔히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인간관계는 그 순간은 좋을 수 있지만 영원히 좋기는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중학교 시절 시를 쓴다고 깝죽대며 다녔는데 어찌나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는지 스스로도 천재시인이라도 되는 냥 기고만장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 마음속에 자라는 "문학"에 대한 작은 열정의 싹을 살리기 위한 칭찬이었는데 그것이 이미 열매 맺고 결실을 거둠에 대한 칭찬인걸로 착각하고 지냈던 적이 있다.
대학시절 시 지도를 받던 선생님께 수십 점의 작품을 내 딴에는 혼을 쥐어짜서 쓴 글이고, 스스로도 감동하여 만족했던 작품인데, 선생님의 '빨간 펜'은 인정이 없었다.
어떤 작은 여지라도 있는 게 아니라 잘 봐줘야 글 전체에 크게 엑스표를 그리는 것이었고 그것도 아니면 아예 북북 찢어버리는 거였다. 처음엔 '당신은 얼마나 시를 잘 쓰시길래'라며 비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오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꾸준히 쉼 없이 썼더니 엑스표나 찢어버리는 작품이 훨씬 줄어들었다. 50여점을 들고 가면 서너 점만 버리고는 다 살려주셨다. 그때부터 다시 '빨간 펜'으로 난도질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예 잘못 잡은 시상이나 시의 전개 등을 막기 위한 '빨간 펜'이었다면, 뒤의 '빨간 펜'은 잘 잡은 시상과 전개를 더 시답게 만들어주시는 사랑의 '빨간 펜'이었습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더 열심히 천착하라는 가르침이었다.
한 5년을 계속한 이 "빨간 펜" 문학수업은 어느 날 끝이 났다. 이제부터 찾아오지 말라고 하였다. 서운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제부터는 스스로의 시 세계를 찾아 정진하라는 거였다. 스스로 빨간 펜 공부를 하라는 거였다.
문학과 관련한 여러 모임이 있지만 한달에 한번 있는 이 품평회가 좋은 이유는 다시 "빨간 펜"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도하고 있는 문학 동아리가 하나 있다. 아직 학생들인데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나 작품에 대한 분석은 아주 뛰어난데,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기 작품에 대한 평가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기의 시상이나 전개를 합리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받았던 것처럼 "빨간 펜"수업을 하고 싶지만 그나마 있는 문학에 대한 열정마저 식을까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대학시절 ‘한국사’ 수업을 듣는 교수님의 ‘악명’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C나 D아니면 아주 잘한다고 해야 B를 준다는 것이었다. 가끔은 F도 남발했다고 하니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 수업은 교양 필수 과목이었기 때문에 선택이 여지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 2학기에 받는 과목이라 부담이 가중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학기 중에 리포트를 내 주셨다. 주제는 ‘한국의 역사를 보는 여러 시각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한국의 역사를 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그 관점들의 타당성과 거기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리하는 과제였다.
비슷한 종류의 글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은 쉽게 생각했나 보다. 난 나름대로 여러 책을 참고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여 내 딴에는 충실한 리포트를 준비하였다. 학기가 끝날 무렵 교수님이 불러 연구실에 가보니, 책 몇 권과 일전에 제출한 리포트를 되돌려주셨다. 그리고는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리포트는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작게는 오탈자, 시각이 좋은 부분은 왜 좋은지, 고쳐야 할 부분은 왜 고쳐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적어서 되돌려준 것이다. 그리고는 기말 고사를 봤다. A+를 받았다.
그 때 이런 다짐을 한 기억이 난다. 내가 만일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오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부가 한 단계 성숙할 때가 있다. 그 때는 다름 아닌 '충고'를 받아들일만한 마음이 준비되면 그 사람의 공부는 날을 기약하고 반드시 성공하는 공부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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