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1101) - 가을꽃의 으뜸, 단풍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11. 2. 06:23
오늘 그린 풍경화 - 가을꽃의 으뜸, 단풍





내겐 어쩌지 못하는 고질의 병 하나가 있는데, 이 병은 가끔이긴 하지만 산을 찾아 푹 잠겨있다 와야 상태가 호전된다. 예전엔 욕심으로 산을 다녔지만, 무릎을 수술한 뒤로는 산과 더불어 지낸다는 의미를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군 생활 3년을 내설악에서 했으니, 단풍구경은 실컷 했겠다며 부러워하지만, 안타깝게도 군 생활하는 동안에는 설악산의 단풍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대신 오대산과 건봉산 등의 단풍에 혼곤하게 취하곤 했다.

가을 산에 오르면 초록 잎이 바래서 붉고 노랗고 갈색으로 물든다. 단풍은 가을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말하지만, 단풍으로 물드는 것은 기온이 10℃쯤일때다. 그때가 가을이다. 하지만 봄에 싹이 트는 온도도 10℃쯤이니, 사람의 눈으로 본 생명과 소멸의 순간이 같은 기후조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은 통하는가 보다.

단풍이라는 말은 본디 한자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단풍나무를 말하는데 가을 산이 울긋불긋 물드는 모든 것을 총칭하는 말이 되었다. 가을 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이었기 때문일까. 그건 아마도 다른 나무의 이름에는 변화의 의미가 없는데 단풍나무에만 변화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어 느티나무나 피나무, 버즘나무 등도 가을이 되면 잎이 변하지만 그 이름에는 가을에 변하는 잎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단풍은 그 이름에 ‘붉다’라는 뜻의 ‘단(丹)’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연록 빛이나 진초록일 때의 이름보다는 가을 한 중간에 온 산을 뒤덮을 때의 그야말로 절정일 때의 이름이다.

이제 산길을 재촉해보자. 우리는 흔히 단풍 구경 가자고 하여 나서는 곳이 설악산, 내장산, 지리산, 강천산 등등 단풍으로 아름다운 명산들을 찾아 한껏 취하고 온다. 요즘은 산에 오르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인지 아예 산 밑에 단풍나무를 많이도 심어둔다. 가서는 산 밑에 있는 단풍을 보고 온다. 하지만 단풍은 앞서 말했듯이 붉은 색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가을 산의 물듦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단풍뿐만이 아니라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받아들이는 느낌의 색깔이다. 적당히 등에 땀도 흐르고 삽삽한 바람도 불어야 단풍을 보는 격조가 풍긴다. 가을 산을 걸으면서 마치 경기라도 하는 듯이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면 난 얼른 몸을 피한다. 군 생활 덕에 산악을 평지처럼 다니지만 어느 풍경 하나 그냥 그대로 스쳐 보내기 싫어서이다. 우리는 흔히 ‘아름답다’는 한 생각으로 단풍구경을 간다. 어쩌면 나무의 절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절정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한편으론 나무의 가장 앙상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냥 즐기면 됐지, 무에 그리 세상을 복잡하게 산다고 핀잔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특히나 가을산에 오르면서는 겸허를 배웠으면 싶다. 산에 다니면서 산을 오른다는 뜻의 등산(登山)이라는 말이 얼마나 오만한 인간의 말인지를 배운다. 주자의 글 가운데 산정부산(山頂不山)이라는 말이 있다. 산꼭대기는 산이 아니라는 뜻인데, 산에서 배워야 할 겸허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산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제 발로 걸아가야 한다. 남이 걸어준 발길로 산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나 가을산은 절정의 순간에서 물러섬의 결단을 가르쳐준다. 봐라. 얼마나 화려한가.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낙엽으로 진다. 새봄부터 키운 가지들도 잎을 떨구고 겨울을 맞는다. 그래도 그들은 앙상한 게 아니라 당당하다. 모두 비웠을 때의 당당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난 그 당당함 속에서 새봄을 준비하는 삶의 자세를 배운다. 새봄 오면 다시 잎눈을 틔우고 신록으로 채울 희망을 읽는다. 그래서 난 가을산의 그 시릿함이 무지무지 좋다.

얼마 전 지리산 노고단에서 피아골로 산행을 다녀왔다. 날이 흐려 어둑했으나 의외다 싶게 산길은 어둡지 않았다. 단풍잎 등이 환히 켜진 까닭이다. 산꼭대기는 이미 바삭 마르고 있는데 아래로 내려올수록 농익고 있다. 가을바람에 떨어진 잎들이 채 마르지 않아 그대로 길을 밝히고 있었다. 노랗고 빨간 색 단풍잎 등을 내 발길 옮기는 곳마다 켜놓았다고 생각하니 흐뭇한 마음 애써 감추지 않아도 온 몸이 좋아서 근질근질하다.

단풍잎들이 바람에 건듯건듯 춤추며 내린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천리(天理)로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들이 내는 우우하는 소리들이 들리고, 산새들이 날아간다. 갈색으로 물든 상수리나무 위를 오르내리는 다람쥐의 날쌘 몸놀림도 갈색이다.

제 나무로 떨어지는 이파리는 별로 없다. 바람의 힘을 빌기는 하지만 제나무보다는 다른 나무로 가서 떨어지거나 나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한 곳에 가서 떨어져 썩거나 바스라져 바람에 떠돌다가 이 땅 어딘가에서 가벼운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낙엽은 제 모양대로 세상을 보듬고 살아가며 제 모양의 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게 단풍의 옷을 벗고 있다.

그래서 난 가을에 피는 꽃이 많지만 단풍을 꽃이 아닌데도 가을꽃의 으뜸 반열에 올려두고 싶다. 나만의 욕심일까. 누가 뭐라 해도 난 그러고 싶으니 누가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