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 - 사랑을 주체 못해 정을 감당 못해
워낙 사람을 좋아하여 사람 만나는 일이라면 열일 젖혀두고 가다보니 때론 정작 해야 할 일도 미뤄지게 되고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을 때가 왕왕 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보다. 4월 21일 가입하여 너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또 때론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1주년 정모 소식을 접하고는 오랫동안 망설이게 되었다. 너무 일이 많이 밀려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그리운 사람들이 모인다는데.
일기예보를 들었다. 비가 온단다. 그깟 비 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고운 숲길 에둘러 가면 그만이지 않는가 말이다. 가을 이름을 얻은 지 한참 되었는데 산의 나무들은 아직 초록이다. 이제 마지막 광합성을 위해 온 물관을 열어두고 쑥쑥 땅의 생명을 보듬는가 보다.
출발하기 이틀 전 ‘봄의 향기’님이 메일을 주셨다. 같이 갈 수 있겠느나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고 대전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만나 도란도란 사는 얘기를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어느덧 공주 문턱이다. 한번 와 본 곳이라 망설이지 않고 들어섰으나 아직 도착한 가족이 없다. 첫 번째로 도착했나보다. 1등은 회비 깎아준다는 규칙은 없었지만, 조금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간밤의 피곤을 날리는 향긋한 우롱차를 한 다관 넉넉하게 내어주신 서편제 주인장의 배려 덕이다.
이제 궁금증이 더해진다. 평소 사이버에서 만난 인연들인데 어떤 모습일까, 정말 생각한 모습 그대로일까. 전날 저녁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그리면서 이름표를 준비했었다. 그 기대와 얼마나 맞을까, 웃음 먼저 실풋 흐르겠지. 서울에서 한 팀이 도착한다. 생각 그대로이다. 이 기막힌 조화의 울림이라니, 영화 서편제에서 푸른 보리밭길을 어깨춤추며 부르던 진도아리랑 가락의 느낌 그대로였다.
몇 차례 모임을 통해서 얼굴 익힌 분들도 있었겠지만, 처음인 분들도 많았는데 ‘어색함’이라는 이름은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었으니 좋은 인연임이 분명했나 보다.
사람들이 모였다. 팔도의 사투리가 섞인다. 꽃피는 동백섬의 청람빛살 담고 고운 해운대 바다내음이 실려온다. 충청도의 ‘왔시유’ 한 마디에 배가 뒤집어지기도 하고 전라도의 그 시끌사끌한 표준말도 정겨운 자리다.
이른 동자치 챙겨먹고 나선 길이라 정오를 넘기니 시장기가 동한다. 칼집이 촘촘히 박힌 돼지고기는 대리석 돌판위에서 구워지고 몇 가지 반찬은 정갈하다. 고운 인연과의 한때이니 그야말로 걸다. 낮술이 꺼려지기도 하지만 맥주와 소주 한잔씩에 설악산 보다 먼저 불콰한 단풍이 들고, 이도 모자라 내장산 숲길에서 자란 오가피로 담근 오가피주를 맘껏 내온 ‘나인벨스’님 덕분에 만산홍엽(滿山紅葉)이 절로 된다.
팥시루떡에 굵은 초 하나 꼽고 첫 돌을 자축하는 제법 그럴싸한 자리가 마련됐다. 모인 사람은 40여분 남짓했지만 자리는 넘쳤다. 사랑방카페 가족들 모두 마음은 보낸 까닭이다.
고기 몇 점 넣고 상추를 몇 번 쌌더니 배가 부르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날이 오늘 같은 날인가 보다. 시작 시간에 대어오지 못한 인연들이 끊이질 않았지만, 누구하나 탓하기 보다는 어서 오라며 손을 이끈다. 담아온 이야기야 날을 세워도 다 나누지 못하겠지만, 아쉬움을 접고 2부는 햇살이 뜨거워 카페 안에서 이루어졌다.
‘웃음’님의 사회로 시작된 2부는 ‘골목어귀’님의 축시낭송으로 막을 올렸다. “사랑 해보셨나요”라고 묻는 고운 눈빛에 골목 어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까르르한 웃음보다는 해질 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아쉬움이 묻어있는 듯 했다. 바로 이어 내가 얼마전 카페에 올린 ‘한 살이라는 나이’의 축시를 낭송했다. 평소 그런 자리가 많았는데도 떨림은 여전했다. 아마도 그 떨림은 ‘낯섬’에 대한 떨림보다는 글에 대한 부끄러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이어진 여러 님들의 노래 자랑은 어쩜 그리들 절창인지 정작 아쉬운 것은 시간 뿐이었다. 그 중에 ‘코알라’님과 ‘사라’님이 손끝으로 전해주는 사랑[수화]은 고운 분들의 마음을 읽기에 충분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모든 분들 노래도 듣고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었을 텐데 야속한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날이 어둑해졌다. 먼길 떠나는 분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나지만 역시나 마음은 두고들 가신다. 마무리 즈음에 ‘시모나’님이 읽어주신 축시는 어찌나 간절하던지 사랑방의 앞날이 그대로 그려졌다.
작은 정성이지만 행운권도 뽑고, 노래자랑에 대한 시상도 하고, 마지막으로 좁은 카페안에서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쥔장인 ‘깨비’님이 초를 들고 ‘웃음’님이 잔잔하게 읽어가는 나레이션에 모두 하나가 되었다. ‘석별의 정’이 못내 아쉬웠지만, 또 다른 기억 하나 만들기 위해 사진 몇 장 찍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바른 채.
길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길, 30여분을 마른 번개가 치더니 들이 붓듯이 비가 내린다. 피곤함도 몰려왔지만 고운 만남이 주는 피곤이라면 금방 풀릴 것 같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건 간에 몇몇 분들의 헌신적인 노고와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다면 오래가지 못하는 모임이 되겠지만, 이 모든 것이 절묘하다.
하여 나 지금 사랑을 주체 못하고 정을 감당 못하겠고, 고운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함께 한 인연들 이름을 여기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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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회원으로 있는 한 카페의 정모 참석후 적은 감상문입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여 사람 만나는 일이라면 열일 젖혀두고 가다보니 때론 정작 해야 할 일도 미뤄지게 되고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을 때가 왕왕 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보다. 4월 21일 가입하여 너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또 때론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1주년 정모 소식을 접하고는 오랫동안 망설이게 되었다. 너무 일이 많이 밀려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그리운 사람들이 모인다는데.
일기예보를 들었다. 비가 온단다. 그깟 비 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고운 숲길 에둘러 가면 그만이지 않는가 말이다. 가을 이름을 얻은 지 한참 되었는데 산의 나무들은 아직 초록이다. 이제 마지막 광합성을 위해 온 물관을 열어두고 쑥쑥 땅의 생명을 보듬는가 보다.
출발하기 이틀 전 ‘봄의 향기’님이 메일을 주셨다. 같이 갈 수 있겠느나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고 대전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만나 도란도란 사는 얘기를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어느덧 공주 문턱이다. 한번 와 본 곳이라 망설이지 않고 들어섰으나 아직 도착한 가족이 없다. 첫 번째로 도착했나보다. 1등은 회비 깎아준다는 규칙은 없었지만, 조금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간밤의 피곤을 날리는 향긋한 우롱차를 한 다관 넉넉하게 내어주신 서편제 주인장의 배려 덕이다.
이제 궁금증이 더해진다. 평소 사이버에서 만난 인연들인데 어떤 모습일까, 정말 생각한 모습 그대로일까. 전날 저녁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그리면서 이름표를 준비했었다. 그 기대와 얼마나 맞을까, 웃음 먼저 실풋 흐르겠지. 서울에서 한 팀이 도착한다. 생각 그대로이다. 이 기막힌 조화의 울림이라니, 영화 서편제에서 푸른 보리밭길을 어깨춤추며 부르던 진도아리랑 가락의 느낌 그대로였다.
몇 차례 모임을 통해서 얼굴 익힌 분들도 있었겠지만, 처음인 분들도 많았는데 ‘어색함’이라는 이름은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었으니 좋은 인연임이 분명했나 보다.
사람들이 모였다. 팔도의 사투리가 섞인다. 꽃피는 동백섬의 청람빛살 담고 고운 해운대 바다내음이 실려온다. 충청도의 ‘왔시유’ 한 마디에 배가 뒤집어지기도 하고 전라도의 그 시끌사끌한 표준말도 정겨운 자리다.
이른 동자치 챙겨먹고 나선 길이라 정오를 넘기니 시장기가 동한다. 칼집이 촘촘히 박힌 돼지고기는 대리석 돌판위에서 구워지고 몇 가지 반찬은 정갈하다. 고운 인연과의 한때이니 그야말로 걸다. 낮술이 꺼려지기도 하지만 맥주와 소주 한잔씩에 설악산 보다 먼저 불콰한 단풍이 들고, 이도 모자라 내장산 숲길에서 자란 오가피로 담근 오가피주를 맘껏 내온 ‘나인벨스’님 덕분에 만산홍엽(滿山紅葉)이 절로 된다.
팥시루떡에 굵은 초 하나 꼽고 첫 돌을 자축하는 제법 그럴싸한 자리가 마련됐다. 모인 사람은 40여분 남짓했지만 자리는 넘쳤다. 사랑방카페 가족들 모두 마음은 보낸 까닭이다.
고기 몇 점 넣고 상추를 몇 번 쌌더니 배가 부르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날이 오늘 같은 날인가 보다. 시작 시간에 대어오지 못한 인연들이 끊이질 않았지만, 누구하나 탓하기 보다는 어서 오라며 손을 이끈다. 담아온 이야기야 날을 세워도 다 나누지 못하겠지만, 아쉬움을 접고 2부는 햇살이 뜨거워 카페 안에서 이루어졌다.
‘웃음’님의 사회로 시작된 2부는 ‘골목어귀’님의 축시낭송으로 막을 올렸다. “사랑 해보셨나요”라고 묻는 고운 눈빛에 골목 어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까르르한 웃음보다는 해질 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아쉬움이 묻어있는 듯 했다. 바로 이어 내가 얼마전 카페에 올린 ‘한 살이라는 나이’의 축시를 낭송했다. 평소 그런 자리가 많았는데도 떨림은 여전했다. 아마도 그 떨림은 ‘낯섬’에 대한 떨림보다는 글에 대한 부끄러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이어진 여러 님들의 노래 자랑은 어쩜 그리들 절창인지 정작 아쉬운 것은 시간 뿐이었다. 그 중에 ‘코알라’님과 ‘사라’님이 손끝으로 전해주는 사랑[수화]은 고운 분들의 마음을 읽기에 충분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모든 분들 노래도 듣고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었을 텐데 야속한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날이 어둑해졌다. 먼길 떠나는 분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나지만 역시나 마음은 두고들 가신다. 마무리 즈음에 ‘시모나’님이 읽어주신 축시는 어찌나 간절하던지 사랑방의 앞날이 그대로 그려졌다.
작은 정성이지만 행운권도 뽑고, 노래자랑에 대한 시상도 하고, 마지막으로 좁은 카페안에서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쥔장인 ‘깨비’님이 초를 들고 ‘웃음’님이 잔잔하게 읽어가는 나레이션에 모두 하나가 되었다. ‘석별의 정’이 못내 아쉬웠지만, 또 다른 기억 하나 만들기 위해 사진 몇 장 찍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바른 채.
길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길, 30여분을 마른 번개가 치더니 들이 붓듯이 비가 내린다. 피곤함도 몰려왔지만 고운 만남이 주는 피곤이라면 금방 풀릴 것 같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건 간에 몇몇 분들의 헌신적인 노고와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다면 오래가지 못하는 모임이 되겠지만, 이 모든 것이 절묘하다.
하여 나 지금 사랑을 주체 못하고 정을 감당 못하겠고, 고운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함께 한 인연들 이름을 여기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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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회원으로 있는 한 카페의 정모 참석후 적은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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