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 - 팽이와 탑 블레이드
추석을 며칠 앞두고 큰 아이(민성) 입에 ‘탑 블레이드 사 달라’는 소리가 조롱조롱 달렸다. 잊지도 않고 집요하게 요청한다. 평소 같으면 다른 걸 사주거나 아예 묵살하겠지만, 내 어릴 적 명절 날 받았던 선물들을 생각하며, ‘그러마’고 대답한 뒤, 마트에서 호기롭게 탑 블레이드 팽이를 다섯 개 샀다. 추석 날 사내 조카들 몫까지 말이다.
탑 블레이드 팽이를 주자마자 가지고 놀아봤는지 곧 바로 익숙하게 가지고 논다. 평소엔 떼쓰지 않던 둘째 아이(민수)까지 달라고 한다. 민수 몫을 챙겨주다 보니 정작 챙겨두었던 큰 집 조카 몫이 없어져 버렸다. 만원을 주며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할 밖에. 민수도 바로 익숙하게 가지고 논다. 이젠 막내 민지까지 오빠들에게 떼를 써서 팽이를 가지고 논다. 마찬가지로 금방 익숙해진다. 그것으로 끝이다.
고향 언덕에선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대개는 산판이 벌어진다.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하는 간벌도 목적이지만, 더 큰 목적은 겨울 땔감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이들 놀이는 가을이 되면 별로 할 게 없다. 여름철에야 깨 벗고 물에 뛰어들어 입술이 파랗도록 놀면 그만인데, 가을 문에 들어서서는 별 다른 놀이가 없는 것이다. 먹거리도 풍부하지 않아 겨우 땡감이나 우려먹는 정도였고 닭서리 등은 나이 어린 우리들 몫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팽이를 준비하는 일이 큰 일 가운데 하나다. 낫으로 직접 깎을 수 없으니 집안 삼촌을 조르거나 동네 형들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갖은 아양을 다 떨어야 마련할 수 있는 놀이감이다. 팽이는 한 겨울 얼음위에서 놀 수 있는 적어도 서너달은 즐거울 수 있는 놀이인 것이다.
기계로 맨도롬하게 깎여지고, 예쁜 색칠해진 팽이는 별 재미가 나질 않는다. 다양한 크기의 나무를 깎아 만드는데, 낫으로 깎을 수 있는 소나무가 가장 많이 애용된다. 크기별로 소나무를 마련하여 송진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말려 여러 크기의 팽이를 깎은 뒤 팽이 밑둥엔 쇠구슬을 박았다. 쇠구슬 보다 조금 작게 구멍을 판 뒤에 구슬을 달구어 넣으면 치지직거리며 하얀 연기가 난다. 그 알쏘롬한 송진내와 이제 곧 팽이를 칠 수 있다는 기쁨에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는지 모른다.
팽이만 깎았다고 모든 준비가 끝난 게 아니다. 나름대로 팽이를 장식해야 한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크레용을 이용하는 방법이지만 가끔은 못을 달구어 그림을 그려넣기도 했다. 그런 다음 길을 들여야 하는데 직접 팽이를 쳐보는 것이다. 무게 중심이 바르지 않으면 여간한 힘으로 쳐서는 바로 서지도 않는다. 자동차 바퀴의 밸런스를 맞추듯이 몸통을 다듬으면서 균형을 맞추고 길을 들여간다.
팽이채는 주로 닥나무 껍질을 물에 축여 사용하거나 노끈을 꼬아서 쓰기도 했고 가끔은 두꺼운 옷을 끊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팽이채는 한 나절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고, 착착 감기는 맛도 적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형 하나가 까만 칼집의 칼과 펜치를 들고는 폐타이어 하나를 주어다 고무 부분을 칼로 끊자 두꺼운 실을 감아 놓은 뭉치가 나왔다. 끝 부분을 잘 오린 뒤 펜치로 잡아당기면 50여센치 정도되는 줄이 나왔다. 그것의 정확한 이름은 몰랐지만 ‘피댓줄’이라고 불렀다. 그 줄은 동네 팽이계에 혁명을 몰고 왔다. 가는 줄이지만 고무가 감겨있고 무게도 있어서 팽이 몸체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어서 어지가한 굵기의 팽이는 그야말로 팽팽 잘도 돌았다. 이렇게 길을 들인 팽이는 한 겨울 얼음위에서 손등이 갈라지도록 쳐서 반질반질해 정도로 아끼는 물건이 되었다.
팽이와 함께 자란 어린 날의 가을과 겨울은 쉽게 주어지는, 엄마 아빠 조르면 구해지는 탑 블레이드 같은 그런 계절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팽이를 구하기 위해 윗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도 배웠다. 내 팽이를 구한 뒤엔 그 팽이를 예쁘게 꾸미는 노력을 더했다. 스티커 몇 장 붙여서 꾸미는 탑 블레이드 팽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맛이다. 뒤뚱거리지 않고 팽팽 돌아가도록 치는 법 노하우를 터득하면서 나름대로 ‘창의성’이라는 머리를 썼던 것 같다.
팽이는 내가 만들어가는 창의성이라면, 탑 블레이드 팽이는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창의성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 아이들은 오늘도 탑 블레이드 팽이를 가지고 놀고 나는 어린 날 팽이에 얽힌 추억 하나를 곱씹는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큰 아이(민성) 입에 ‘탑 블레이드 사 달라’는 소리가 조롱조롱 달렸다. 잊지도 않고 집요하게 요청한다. 평소 같으면 다른 걸 사주거나 아예 묵살하겠지만, 내 어릴 적 명절 날 받았던 선물들을 생각하며, ‘그러마’고 대답한 뒤, 마트에서 호기롭게 탑 블레이드 팽이를 다섯 개 샀다. 추석 날 사내 조카들 몫까지 말이다.
탑 블레이드 팽이를 주자마자 가지고 놀아봤는지 곧 바로 익숙하게 가지고 논다. 평소엔 떼쓰지 않던 둘째 아이(민수)까지 달라고 한다. 민수 몫을 챙겨주다 보니 정작 챙겨두었던 큰 집 조카 몫이 없어져 버렸다. 만원을 주며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할 밖에. 민수도 바로 익숙하게 가지고 논다. 이젠 막내 민지까지 오빠들에게 떼를 써서 팽이를 가지고 논다. 마찬가지로 금방 익숙해진다. 그것으로 끝이다.
고향 언덕에선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대개는 산판이 벌어진다.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하는 간벌도 목적이지만, 더 큰 목적은 겨울 땔감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이들 놀이는 가을이 되면 별로 할 게 없다. 여름철에야 깨 벗고 물에 뛰어들어 입술이 파랗도록 놀면 그만인데, 가을 문에 들어서서는 별 다른 놀이가 없는 것이다. 먹거리도 풍부하지 않아 겨우 땡감이나 우려먹는 정도였고 닭서리 등은 나이 어린 우리들 몫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팽이를 준비하는 일이 큰 일 가운데 하나다. 낫으로 직접 깎을 수 없으니 집안 삼촌을 조르거나 동네 형들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갖은 아양을 다 떨어야 마련할 수 있는 놀이감이다. 팽이는 한 겨울 얼음위에서 놀 수 있는 적어도 서너달은 즐거울 수 있는 놀이인 것이다.
기계로 맨도롬하게 깎여지고, 예쁜 색칠해진 팽이는 별 재미가 나질 않는다. 다양한 크기의 나무를 깎아 만드는데, 낫으로 깎을 수 있는 소나무가 가장 많이 애용된다. 크기별로 소나무를 마련하여 송진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말려 여러 크기의 팽이를 깎은 뒤 팽이 밑둥엔 쇠구슬을 박았다. 쇠구슬 보다 조금 작게 구멍을 판 뒤에 구슬을 달구어 넣으면 치지직거리며 하얀 연기가 난다. 그 알쏘롬한 송진내와 이제 곧 팽이를 칠 수 있다는 기쁨에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는지 모른다.
팽이만 깎았다고 모든 준비가 끝난 게 아니다. 나름대로 팽이를 장식해야 한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크레용을 이용하는 방법이지만 가끔은 못을 달구어 그림을 그려넣기도 했다. 그런 다음 길을 들여야 하는데 직접 팽이를 쳐보는 것이다. 무게 중심이 바르지 않으면 여간한 힘으로 쳐서는 바로 서지도 않는다. 자동차 바퀴의 밸런스를 맞추듯이 몸통을 다듬으면서 균형을 맞추고 길을 들여간다.
팽이채는 주로 닥나무 껍질을 물에 축여 사용하거나 노끈을 꼬아서 쓰기도 했고 가끔은 두꺼운 옷을 끊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팽이채는 한 나절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고, 착착 감기는 맛도 적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형 하나가 까만 칼집의 칼과 펜치를 들고는 폐타이어 하나를 주어다 고무 부분을 칼로 끊자 두꺼운 실을 감아 놓은 뭉치가 나왔다. 끝 부분을 잘 오린 뒤 펜치로 잡아당기면 50여센치 정도되는 줄이 나왔다. 그것의 정확한 이름은 몰랐지만 ‘피댓줄’이라고 불렀다. 그 줄은 동네 팽이계에 혁명을 몰고 왔다. 가는 줄이지만 고무가 감겨있고 무게도 있어서 팽이 몸체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어서 어지가한 굵기의 팽이는 그야말로 팽팽 잘도 돌았다. 이렇게 길을 들인 팽이는 한 겨울 얼음위에서 손등이 갈라지도록 쳐서 반질반질해 정도로 아끼는 물건이 되었다.
팽이와 함께 자란 어린 날의 가을과 겨울은 쉽게 주어지는, 엄마 아빠 조르면 구해지는 탑 블레이드 같은 그런 계절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팽이를 구하기 위해 윗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도 배웠다. 내 팽이를 구한 뒤엔 그 팽이를 예쁘게 꾸미는 노력을 더했다. 스티커 몇 장 붙여서 꾸미는 탑 블레이드 팽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맛이다. 뒤뚱거리지 않고 팽팽 돌아가도록 치는 법 노하우를 터득하면서 나름대로 ‘창의성’이라는 머리를 썼던 것 같다.
팽이는 내가 만들어가는 창의성이라면, 탑 블레이드 팽이는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창의성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 아이들은 오늘도 탑 블레이드 팽이를 가지고 놀고 나는 어린 날 팽이에 얽힌 추억 하나를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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