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의 향 기▒

옷을 벗으며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6. 16. 10:43
옷을 벗으며




내게 맘겨진 것은 이제

하나도 없습니다.

새벽하늘 울리는

그 첫 사자후의 모습처럼

번거한 삶의 거적들을 걷어내면

살아있다는 것이나 죽음은

둘이 아닌 그것이나

괜시리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몫일 뿐입니다.

하나도 없는 그 꺼풀들을

또 다시 벗겨내며

어줍잖은 몸 가운데로

물 한줄기 흩뿌려봅니다.

그때, 나

살아있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닌 그것입니다.

나 지금,

옷을 벗고 있습니다.



◀시작노트▶

빈손으로 아무 것고 걸치지 않은채 태어났는데 살면서 느는 것은 욕심인가 봅니다. 아이는 하늘사람이라 태어나면서 엄마젖을 얻는데 욕심많은 사람은 욕심때문에 마음 아픕니다.

어느 새벽녘 희번하게 밝아오는 동천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씻은 적이 있습니다. 옷을 벗으면서 생사의 문제가 옷하나 벗고 입는데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면서 조금은 생사를 초월했는지 모릅니다. 옷을 벗으며 그 생각을 하지만, 지금은 숨 한 번 쉬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고, 눈 한 번 떴다 감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느덧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는 나이가 되었나봅니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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