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127) - 필암리(筆巖里) 가는 길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1. 28. 11:37
오늘 그린 풍경화 - 필암리 가는 길





아직 밤은 먼데 끄묵한 구름이 머리 위에 걸려 있습니다. 괜히 마음이 바빠지기는 하지만 필암서원까지는 황룡전적지에서 채 5분 거리가 되지 않으니 그리 염려할 일은 아닙니다. 옛 향기가 묻어나는 곳을 갈 때 마다 옷깃이 여며지고 타임머신을 타고 먼 길 달려가는 듯 수백년 전의 사람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오늘날 첨단 문명이 주는 산뜻한 냄새는 아니지만, 어린 날 서당에 다닐 때 훈장님 방안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그런 냄새입니다. 산세가 완만한 장성 황룡은 스산한 겨울 빛이 감아 돌고 그늘진 산기슭에 잔설이 남아 한결 운치를 더해 줍니다.

필암서원은 마을 한 가운데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필암리입니다. 필암(筆巖), 그 이름을 먼저 생각해 봅니다. 우선 먼저 생각되는 것이 붓은 바위처럼 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서 글이란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붓은 부드럽고 암은 바위라는 뜻이니 강한 존재입니다. 삶 속에서 강과 약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강변하고 있는 의미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붓은 글을 쓰면 반드시 닳아지는 유한한 존재이고, 바위는 모진 풍상을 견뎌내는 결국은 없어지지만 그래도 인간의 삶속에서 보면 무한한 존재로 읽혀집니다. 그러니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존재의 사고를 초월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는 이름 같습니다.

오래된 고건물은 요즘 지은 집과는 확연히 다른 냄새가 납니다. 뭐라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당당한 위계속에서도 편안함, 눈에 쉽게 띄는 삶의 지혜도 보입니다. 제일 먼저 반겨야 할 것이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데, 언제 지었는지 모르게 새로운 건물이 서원앞에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아마 기념품을 팔고 안내할 공간으로 만들어진 모양인데, 동네 개 한 마리 제 집인 듯 지키고 서서 짖어댑니다. 사납게 짖어대니 미운 생각도 났지만, 얼른 그 생각 거두고 낯선 사람을 보면 짖어대는게 제 역할로 알고 있을테니 그런대로 예쁘게 보입니다. 내 생각을 알아차렸을까, 짖기를 멈추고 지가 안내라도 하려는 듯 쪼르르 달려와 앞장을 섭니다.

새로 지어진 건물앞에 차를 세우고 몇 걸음 옮기니 확연루(廓然樓)라고 쓴 힘찬 글씨가 보입니다. '확연루' 편액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글씬데, 힘찬 필획이 그야말로 '필암'인 듯 느껴집니다. '확연'이라는 말 속에 사방 주위에 욕심껏 자연을 들여다 놓고 싶은 마음이 읽어집니다. 대개 '연(然)'은 자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확(廓)은 본래 '곽'으로 읽는데, 관용적으로 확으로 읽는 글자로 둘레라는 뜻인데 자연스러움과는 달리 인위적인 공간의 한정성을 말합니다. 그러니 두 글자만 보아도 옛 선비의 기개와 기상이 어떠한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확연루 바로 앞에는 홍살문이 서 있는데, 지금 보면 조금 초라해 보이지만, 이 홍살문으로 인해 이 곳이 학문의 신성함과 선조배향의 경건함을 담고 있는 공간임을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쉽게 이 공간에 들어서지만 가장 먼저 내 몸가짐을 바루고 마음가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확연루는 서원의 정문과 누각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문과 누각은 따로 설치하는데 공간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의미 있는 공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고건축물 가운데 특히 누각은 누각 그 자체를 바라보는게 아니라, 그 누각에 앉아 바라보는 사방의 풍치가 얼마나 아름답고, 함께 하는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마 이 서원이 처음 지어질 때는 저 멀리 황룡강 물이 보이고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파노라마처럼 연출했을 것 같은데, 스산한 겨울 바람속에 보는 확연루에서는 검은 구름만 보입니다. 시를 읊고 세상정담을 얘기했을 옛 선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보면 그 때 그 시의 정경과 철학적인 삶의 가르침들이 마음에 새겨지고 가슴에 옮겨집니다.

필암서원은 3단계로 건물이 구분 배치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앞에 말한 확연루를 중심으로 한 정문과 누각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휴식 공간'이고, 그 다음이 '청절당', '숭의재', '진덕재' 등 지금의 교실과 기숙사 역할을 한 '교육 공간'이고, 마지막이 하서 김인후와 고암 양자징을 모신 사묘인 '우동사'가 있는데 이곳은 '존숭 공간'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거꾸로 해서 살펴보면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존숭 공간은 과거속에서 현재로 나오는 곳이라면, 교육 공간은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의 공간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휴식 공간은 현재속에서 담금질된 학문의 성장과 인격의 도야가 미래를 열어 가는 가장 훌륭한 자산이 되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해석이 일반적인 설명은 아닙니다. 서원 등 옛 것을 과거속에 묻어 두고 관광상품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것을 슬프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해보는 것입니다.

필암서원은 야트막한 산세를 그대로 이어 건물을 배치한 유교 건축의 모범적인 모습입니다. 유교 건축의 모범은 중국 산동성의 공자님을 모신 곡부의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건축물이 그 정형인데, 규모가 축소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던 건물이란 소개는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공간에서 글 읽은 학동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제가 너무 너무 좋아 했을텐데 그 낭랑하고 청신(淸新)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따뜻한 계절에는 장성 군민들을 대상으로 서당을 연다고 하니 나도 언제 그 자리에 앉아 옛 글의 향취에 맘껏 취하고픈 마음입니다. 제법 어두워졌습니다. 저녁을 먹고 차향에 흠뻑 젖으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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