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의 향 기▒

불갑사 부도 밭

자작나무숲이이원 2004. 10. 28. 23:40

불갑사 부도 밭

 

 

꽃 무릇 피고 지고 세월의 이끼 낀

 

풍만한 배흘림의 뒤뚱한 부도 탑

 

정결한 고행과 순결한 정진의 흔적들이

 

사리(舍利)로 오롯하게 남아있거나 아니면

 

그 마저 소용없는 일이라

 

흔적마저 지우고 떠나셨는지

 

 

 

없고 없고 또한 없다는 그것마저 없는

 

무자화두(無字話頭) 하나 붙들고 매달린 평생이

 

다음 생으로 강물처럼 흘러갔는지

 

몽둥이로 후려쳐 터져 나간 살점과 마른 피가

 

썩고 썩어 침묵하는 산을 키웠는지

 

귀 멍한 외침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메아리 없는 골짜기로 퍼지는지

 

 

 

죽음을 쌓아둔 게 아니라면

 

예서 생명 하나 얻고 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왜 이리 바쁘기만 한지

 

저 잉걸로 붙는 수해(樹海)를 따라

 

정신없이 올라갔다 오는 걸음 속에

 

더디 가란 침묵이 들릴 리 만무 아닌가

 

 

 

까르르한 웃음을 온 산 바르며

 

쫑알쫑알 말의 씨를 뿌리는 아이들

 

저, 저기 다람쥐 한 마디 뽀르르 달리고

 

파르스름한 행자스님 머리 위엔 햇살이 졸고

 

차 씨 따는 손길을 따라 걷는 아이들

 

어느새 사귀었는지

 

저 어린 하늘 사람 하는 말

 

“아저씨는 왜 빡빡이야?”

 

“예끼 놈”

 

 부도 밭이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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