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 - 이 세상의 절반과 함께 한 저녁
사실 이건 협박(?)에 못 이겨 가게 되었습니다. 왠지 가지 않으면 은근히 뒤가 걱정이 되었거든요. 영광에 있는 여성의 전화에서 하루 먹거리를 준비하여 함께 하고자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11월의 마지막 날이라 다음날 바쁜 일이 있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찍고라도 와야겠다는 기분으로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오늘은 익산→광주→영광→장성으로 와야하는 퍽 피곤한 길입니다. '초원의 집'이라는 곳에서 먹거리 장터가 열렸는데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평소 인연 있는 분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혼자라서 자리를 잡고 앉기보다는 비어있는 카운터에 앉아 비빔밥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구석진 자리이긴 하지만 혼자 조용히 먹기에는 그만이었습니다. 잠시 뒤에 한 병원의 간호사 다섯 명이 자리가 없다며 의자만 가져다가 합석을 했습니다.
비빔밥은 겨울 햇살에 곱게 자란 야채들과 고추장이 어우러진 아주 맛있는 저녁이었습니다. 사실 매우 배가 고팠던 터라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다 보니 비빔밥 한 그릇이 그대로 남아 조금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먹기 시작한 것이 뚝딱. 포만감에 행복합니다. 제가 살이 좀 찐(?) 이유는 순전히 음식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탓이죠.
간호사들은 모두 아가씨들이었는데, 음식을 남깁니다. 비빔밥을 비며 먹다가 남기면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농민들은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제값을 받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벼 야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밥 한 톨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건 죄악(?)임을 알아야 하는데.
조금 뒤에 알고 지내던 선생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몇 년 전 한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분인데 건강의 여의치 않아 휴직하고 계신데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에 행복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지기입니다.
여러 얘기를 한참 나누는데 또 다른 선생님 한 분이 합석하셨습니다. 그 분은 영광에 있는 '영산성지고' 선생님이십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한 여러 담론들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 영산성지고는 우리 나라 대안학교의 싹을 틔운 곳으로 참 교육의 열정이 살아있는 학교입니다.
사실 우리의 고민은 이 땅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자각을 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와 같이 공부하고 있는 한 여중의 선생님께 들은 얘기 한 토막 하지요. 어느 날 한 여학생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등교하였더랍니다. 남자 선생님이 말하기도 무안했겠지만, 조용히 불러 속옷을 제대로 입고 오라고 말하자 그 아이의 대답이 이랬답니다. "왜요, 선생님! 흥분되세요." 도저히 여중생의 말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 그 선생님은 억병으로 취하여 이 땅에서 선생질(?) 하며 이렇게 자괴감을 느낀 적은 없다며 내뱉은 말이고 보면 사실이었나 봅니다.
그 선생님은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계십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인데, 기숙사에서 나오는 아침 6시 반부터 7시반까지 한 시간동안 가족을 만나는게 전부라고 합니다. 요샌 그게 조금 힘이 드나 봅니다. 참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부대꼈던 젊은 날의 열정이 식는 것 같아 걱정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 선생님의 열정은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땅에서 여성운동, 여성단체 등등을 입에 떠올리면 왠지 모를 투쟁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땅의 절반인 여성으로서 정당한 책임과 권리, 의무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또 다른 절반인 남성의 생각은 많이 다른가 봅니다. 나도 남잔데.
어느 여성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 분은 그 지역사회의 또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는데 그 단체는 거의 대부분이 남성이랍니다. 그 모임에 가면 남성들이 하는 얘기가 "여성의 전화" 때문에 살기 힘들다며 여성의 전화가 없어져야 한답니다. 저는 그 얘기가 이렇게 들렸습니다. 기득권에 대한 아쉬움, 정당한 권리 나눔에 대한 서운함이 아닐까 말이죠.
사실 이 모임의 회원 가운데 제가 아는 분은 세분입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같은 학교에 근무한 인연으로 오늘 영광에까지 오게 된 겁니다. 이 세분은 평등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꾸는 맹렬 여성들입니다.
그 중 여성 운동의 가장 중요한 타깃은 남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들에게 여성 운동의 올바른 속내를 알리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죠. 남성들의 올바른 이해가 선행된다면 따로 여성운동도 없어질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아는 분들과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또 다른 인연들과 함께 한 소중한 저녁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숲에 별빛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2001년 12월 3일
자작나무숲
사실 이건 협박(?)에 못 이겨 가게 되었습니다. 왠지 가지 않으면 은근히 뒤가 걱정이 되었거든요. 영광에 있는 여성의 전화에서 하루 먹거리를 준비하여 함께 하고자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11월의 마지막 날이라 다음날 바쁜 일이 있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찍고라도 와야겠다는 기분으로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오늘은 익산→광주→영광→장성으로 와야하는 퍽 피곤한 길입니다. '초원의 집'이라는 곳에서 먹거리 장터가 열렸는데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평소 인연 있는 분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혼자라서 자리를 잡고 앉기보다는 비어있는 카운터에 앉아 비빔밥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구석진 자리이긴 하지만 혼자 조용히 먹기에는 그만이었습니다. 잠시 뒤에 한 병원의 간호사 다섯 명이 자리가 없다며 의자만 가져다가 합석을 했습니다.
비빔밥은 겨울 햇살에 곱게 자란 야채들과 고추장이 어우러진 아주 맛있는 저녁이었습니다. 사실 매우 배가 고팠던 터라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다 보니 비빔밥 한 그릇이 그대로 남아 조금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먹기 시작한 것이 뚝딱. 포만감에 행복합니다. 제가 살이 좀 찐(?) 이유는 순전히 음식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탓이죠.
간호사들은 모두 아가씨들이었는데, 음식을 남깁니다. 비빔밥을 비며 먹다가 남기면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농민들은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제값을 받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벼 야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밥 한 톨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건 죄악(?)임을 알아야 하는데.
조금 뒤에 알고 지내던 선생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몇 년 전 한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던 분인데 건강의 여의치 않아 휴직하고 계신데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에 행복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지기입니다.
여러 얘기를 한참 나누는데 또 다른 선생님 한 분이 합석하셨습니다. 그 분은 영광에 있는 '영산성지고' 선생님이십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한 여러 담론들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 영산성지고는 우리 나라 대안학교의 싹을 틔운 곳으로 참 교육의 열정이 살아있는 학교입니다.
사실 우리의 고민은 이 땅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자각을 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와 같이 공부하고 있는 한 여중의 선생님께 들은 얘기 한 토막 하지요. 어느 날 한 여학생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등교하였더랍니다. 남자 선생님이 말하기도 무안했겠지만, 조용히 불러 속옷을 제대로 입고 오라고 말하자 그 아이의 대답이 이랬답니다. "왜요, 선생님! 흥분되세요." 도저히 여중생의 말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 그 선생님은 억병으로 취하여 이 땅에서 선생질(?) 하며 이렇게 자괴감을 느낀 적은 없다며 내뱉은 말이고 보면 사실이었나 봅니다.
그 선생님은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계십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인데, 기숙사에서 나오는 아침 6시 반부터 7시반까지 한 시간동안 가족을 만나는게 전부라고 합니다. 요샌 그게 조금 힘이 드나 봅니다. 참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부대꼈던 젊은 날의 열정이 식는 것 같아 걱정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 선생님의 열정은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땅에서 여성운동, 여성단체 등등을 입에 떠올리면 왠지 모를 투쟁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땅의 절반인 여성으로서 정당한 책임과 권리, 의무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또 다른 절반인 남성의 생각은 많이 다른가 봅니다. 나도 남잔데.
어느 여성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 분은 그 지역사회의 또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는데 그 단체는 거의 대부분이 남성이랍니다. 그 모임에 가면 남성들이 하는 얘기가 "여성의 전화" 때문에 살기 힘들다며 여성의 전화가 없어져야 한답니다. 저는 그 얘기가 이렇게 들렸습니다. 기득권에 대한 아쉬움, 정당한 권리 나눔에 대한 서운함이 아닐까 말이죠.
사실 이 모임의 회원 가운데 제가 아는 분은 세분입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같은 학교에 근무한 인연으로 오늘 영광에까지 오게 된 겁니다. 이 세분은 평등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꾸는 맹렬 여성들입니다.
그 중 여성 운동의 가장 중요한 타깃은 남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들에게 여성 운동의 올바른 속내를 알리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죠. 남성들의 올바른 이해가 선행된다면 따로 여성운동도 없어질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아는 분들과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또 다른 인연들과 함께 한 소중한 저녁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숲에 별빛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2001년 12월 3일
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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