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1202) - 아름다운 비밀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12. 2. 02:44
오늘 그린 풍경화 - 아름다운 비밀






비밀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야말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니가 알고 내가 안다는 옛말(天知地知我知汝知)도 있으니 진정한 의미의 비밀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잘 아는 가까운 인연도 모르는 비밀을 많이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잘 아는 누구는 어떤 버릇을 갖고 있고, 혹은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가고 하는 등의 그런 비밀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엔 참으로 오랫동안 잊혀졌기 때문에 아름다운 비밀이 있습니다. 실은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가 다름 아닌 아름다운 비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너무도 아름다워 감동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군대가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있던 1944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독일의 한 연대에서 연대장이 외출중이던 어느 날 상류사회출신 젊은 장교 6명이 모여 토론을 벌이다가 흥분을 참지 못한 한 젊은 장교 한 사람이 권총을 빼들고 히틀러의 초상에 냅다 총을 갈겨댔습니다. 이건 큰 일도 보통 큰 일이 아니었지요.

우리 나라의 유신 시절을 생각해 보면 쉽게 그 상황이 이해가 갈 겁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에 대고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발길질을 하는 상황과 비슷했을까. 다른 5명의 장교들이 사태의 심각함에 경악해 할 말을 잃은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그 때 한 장교가 나서서 모두 히틀러를 쏘자고 제의하고 이미 흉한 몰골이 된 히틀러의 사진에 권총을 발사했습니다. 그 때 기분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혹시 뒤가 두려운 사람은 없었을까 말입니다. 다른 장교들도 따라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공범이 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사건은 탄로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오랫동안 잊혀지고 있다가 그 중의 한 사람이 언론인인 '마리온 된호프'라는 사람이 그 때의 일을 얘기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목숨을 건 모험을 주도한 사람은 다름 아닌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 체코의 바츠라프 하벨과 함께 세계의 3대 양심으로 불리는 분입니다.

왜 갑자기 이 분이 생각이 났느냐 하면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 이 분이 오셨었는데, 예전에 제가 신문 스크랩해 둔 것이 생각나 이렇게 아름다운 비밀이라는 얘기를 하게 된 겁니다. 어때요. 참으로 아름다운 얘기 아닙니까.

젊은 장교들은 상부로부터 매일 무책임하고 터무니없는 명령을 받고 있었는데, 항상 그런 명령을 아래로 전달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번민하며 토론하다가 성격이 급한 장교가 히틀러에게 권총을 쏘았는데, 이 일이 참으로 오랫동안 묻혀저서 아름다운 비밀이 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아름다운 비밀'이라고 제목한 이유를 알겠지요.

우리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웃집 닭장에 서리를 가거나 과수원에 서리를 갈 때 혼자 가지 않았지요. 함께 했지요. 공범을 만드는 겁니다. "같이 했는데"라는 생각, 걸려도 함께 벌 받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위안이 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할 때 보면 꼭 빼 놓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요. 서리 하는데 함께 끼워달라고 생떼를 써도 빼놓는 사람말입니다. 왜냐면 평소에 그 사람과는 서로간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 우리도 아름다운 비밀을 만듭시다. 그렇다고 함께 서리 하러 가자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예전처럼 서리나 하면서 나눈 비밀 말고, 참으로 아름다운 비밀 말입니다.

안으로 감추어야겠습니다. 비밀은 안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지 밖으로 드러나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렇게 안으로 안으로 내가 만드는 비밀은 언젠가 꺼내 쓸 때가 있겠지요. 아름다운 비밀인채로요.

참, 그대와 난 무슨 "아름다운 비밀"이 있지요?



2001년 12월 2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