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 - 풍장(風葬)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초등학교 운동장을 맘껏 뛰노는 일입니다. 체육시간에 운동장 한 구석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앉아 폴폴 나는 먼지 속을 뛰노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선천성 심장병은 단 한 번의 수술로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너 차례의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 수술이 힘든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19살이었습니다. 수술이 힘든 경우였지요. 항상 가뿐숨을 쉬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죽어도 좋으니 수술이라도 한 번 받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며 성금을 모았지만, 수술을 해도 나을 가망이 없는 경우의 안타까움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괴로움입니다.
지리산 바람이 쉼 없이 부는 구례에서 태어난 그 아이는 천형(天刑)처럼 가뿐숨을 몰아쉬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수술한 번 받게 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수술에 대한 판단은 의사선생님이 하는 것이지,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는 사전 검사를 통해 수술이 매우 힘든 경우로 살 가망이 10%가 채 될까 말까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선생님! 비록 힘들고 어려움이 많았지만 19년을 살았습니다. 한 번 수술이라도 받게 해 주세요. 이렇게 살다 죽으면 한이 많을 것 같아요. 수술을 받다가 죽어도 좋으니 수술을 해 주세요."
구례의 산골에서 홀어머님과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사는 그 아이는 학교에 가기도 힘이 들어 집에서 쉬고 있다가 어렵사리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초가을 햇살이 늬엿지는 9월의 어느 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매일 찾아가 위로를 하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 아이는 유달리 만두를 좋아했는데, 그 아이는 수술 받고 건강해 지면 함께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가자며 즐거워했고, 함께 전국순례를 한 친구들을 오빠라고 부르며 아주 잘 따랐습니다.
입원 며칠 뒤 아이의 수술 스케줄이 잡혔습니다. 학교 수업 관계로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수술은 잘 될 거야. 마음 편하게 먹어라.'며 위로를 했지만, 내 마음도 무거워 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내내 수술이 잘 되길 빌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병원에 갔을 때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는 산소 호흡기로도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워 의사 선생님이 직접 공기를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이성을 잃기가 쉬워 머리가 어찔했지만 바로 냉정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아이의 어머님과 동생들을 위로해 '더 힘들게 하지 말자'며 산소호흡기를 떼기로 했습니다. 지리산에 함께 올라가자던 그 아이는 이미 고요한 잠에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사러 가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그 날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화장을 하기로 하고 아이가 입을 옷을 준비하러 시장엘 갔습니다. 경황이 없는 가족을 대신해 장례 준비를 순례단원들끼리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이지만 예쁜 옷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예쁜 꽃무늬가 수놓아진 청 원피스와 속옷, 양말, 머리띠 등을 사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입관식을 마치고 2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화장장에서 그 힘들게 살아온 열 아홉 세월에 불을 지펴 무거운 몸을 쉬며 한 줌 재로 변해 갔습니다. 곱게 빻은 열 아홉 아이의 몸은 너무 가벼웠습니다. 아이의 어머님은 오빠라 부르며 따랐던 우리에게 마지막을 보낸 이곳(전북 익산)에 뿌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자식이 먼저 가면 가슴에 묻지 차마 저 들녘에 뿌릴 수는 없었던 겁니다.
왕궁에 있는 한 저수지가에는 억새풀이 하늘거리고 있었습니다. 왠지 슬프게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려 온 몸이 오그라들었습니다. 그 바람결에 한 줌 한 줌 그 아이의 유골을 뿌리니 바람을 따라 오랜 평온의 잠을 자는지 바람도 잡니다.
얼마 전 그 저수지가를 지나는데 저녁 노을이 집니다. 그 노을에 붉어진 아이의 고운 웃음이 살풋 피었습니다. 아마 새 몸 받아 올 그날에는 건강한 몸으로 노고단을 오르고 있을 아름다운 산처녀 일겁니다.
2001년 12월 5일
자작나무숲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초등학교 운동장을 맘껏 뛰노는 일입니다. 체육시간에 운동장 한 구석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앉아 폴폴 나는 먼지 속을 뛰노는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선천성 심장병은 단 한 번의 수술로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너 차례의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 수술이 힘든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19살이었습니다. 수술이 힘든 경우였지요. 항상 가뿐숨을 쉬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죽어도 좋으니 수술이라도 한 번 받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며 성금을 모았지만, 수술을 해도 나을 가망이 없는 경우의 안타까움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괴로움입니다.
지리산 바람이 쉼 없이 부는 구례에서 태어난 그 아이는 천형(天刑)처럼 가뿐숨을 몰아쉬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수술한 번 받게 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수술에 대한 판단은 의사선생님이 하는 것이지,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는 사전 검사를 통해 수술이 매우 힘든 경우로 살 가망이 10%가 채 될까 말까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선생님! 비록 힘들고 어려움이 많았지만 19년을 살았습니다. 한 번 수술이라도 받게 해 주세요. 이렇게 살다 죽으면 한이 많을 것 같아요. 수술을 받다가 죽어도 좋으니 수술을 해 주세요."
구례의 산골에서 홀어머님과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사는 그 아이는 학교에 가기도 힘이 들어 집에서 쉬고 있다가 어렵사리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초가을 햇살이 늬엿지는 9월의 어느 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매일 찾아가 위로를 하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 아이는 유달리 만두를 좋아했는데, 그 아이는 수술 받고 건강해 지면 함께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가자며 즐거워했고, 함께 전국순례를 한 친구들을 오빠라고 부르며 아주 잘 따랐습니다.
입원 며칠 뒤 아이의 수술 스케줄이 잡혔습니다. 학교 수업 관계로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수술은 잘 될 거야. 마음 편하게 먹어라.'며 위로를 했지만, 내 마음도 무거워 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내내 수술이 잘 되길 빌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병원에 갔을 때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는 산소 호흡기로도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워 의사 선생님이 직접 공기를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이성을 잃기가 쉬워 머리가 어찔했지만 바로 냉정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아이의 어머님과 동생들을 위로해 '더 힘들게 하지 말자'며 산소호흡기를 떼기로 했습니다. 지리산에 함께 올라가자던 그 아이는 이미 고요한 잠에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사러 가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그 날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화장을 하기로 하고 아이가 입을 옷을 준비하러 시장엘 갔습니다. 경황이 없는 가족을 대신해 장례 준비를 순례단원들끼리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이지만 예쁜 옷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예쁜 꽃무늬가 수놓아진 청 원피스와 속옷, 양말, 머리띠 등을 사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입관식을 마치고 2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화장장에서 그 힘들게 살아온 열 아홉 세월에 불을 지펴 무거운 몸을 쉬며 한 줌 재로 변해 갔습니다. 곱게 빻은 열 아홉 아이의 몸은 너무 가벼웠습니다. 아이의 어머님은 오빠라 부르며 따랐던 우리에게 마지막을 보낸 이곳(전북 익산)에 뿌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자식이 먼저 가면 가슴에 묻지 차마 저 들녘에 뿌릴 수는 없었던 겁니다.
왕궁에 있는 한 저수지가에는 억새풀이 하늘거리고 있었습니다. 왠지 슬프게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려 온 몸이 오그라들었습니다. 그 바람결에 한 줌 한 줌 그 아이의 유골을 뿌리니 바람을 따라 오랜 평온의 잠을 자는지 바람도 잡니다.
얼마 전 그 저수지가를 지나는데 저녁 노을이 집니다. 그 노을에 붉어진 아이의 고운 웃음이 살풋 피었습니다. 아마 새 몸 받아 올 그날에는 건강한 몸으로 노고단을 오르고 있을 아름다운 산처녀 일겁니다.
2001년 12월 5일
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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