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03] 현인을 숭상하지 말라
◀옛 길▶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도덕경> 제 3장 중).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난.
◀새 길▶
현인을 숭상하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다투지 않을 것이다.
얻기 힘든 보배를 귀히 알지 않으면 사람들이 훔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욕심날만한 것을 보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을 것이다.
◀漢字工夫▶
不[一, 3] 아닐 불, 말 불(일반적으로는 불로 읽지만, 뒤에 오는 글자의 첫음이 'ㄷ'이나 'ㅈ'이 올 경우에는 '부'로 발음함. 예 ; 不動(부동), 不知(부지) 등)
尙[小, 5] 오히려 상, 바랄 상, 숭상할 상
賢[貝, 8] 어질 현, 어진 사람 현, 착할 현
使[人, 6] 하여금 사, 시킬 사
爭[爪, 4] 다툴 쟁, 소송할 쟁
貴[貝, 5] 귀할 귀, 높을 귀, 소중할 귀
難[ , 11] 어려울 난(란), 재앙 난, 근심 난
得[ , 8] 얻을 득, 이익 득, 덕 득
之[ , 3] 갈 지, 이(지시대명사)것 지, ∼의(관형격 조사)
貨[貝, 4] 재화 화, 뇌물 화
爲[爪, 8] 할 위, 될 위, 만들 위
盜[皿, 7] 도둑 도, 훔칠 도
見[見, 0] 볼 견, 생각할 견('현'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나타나다, 드러나다의 경우로 해석되는 경우로 바로 알기는 어렵고 문장속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보는 것과 드러나는 것의 관계로 이해하면 쉽다. 즉 보는 것은 견이고, 보아서 드러나는 것은 현이다.)
可[口, 2] 옳을 가, 가히 가, 쯤 가
欲[欠, 7] 하고자 할 욕, 바랄 욕 (慾은 욕심이나 욕정의 뜻으로 쓰인다.)
亂[乙, 12] 어지러울 난, 간음할 난, 난리 난, 반역 난
◀산책 길▶
우리는 훌륭한 사람, 좋은 보배, 탐나는 물건을 보면 가까이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뒤집는다. 멀리 하고 귀히 여기지 말라고 한다. 우리 같은 범부는 행동하기 힘든 경우인 듯 하다. 도대체 어떤 경지에서나 이런 삶의 자세가 가능한 것일까.
노자의 가르침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고 배는 실답게 하며, 뜻은 약하게 하고 뼈는 튼튼하게 합니다. 사람들에게 항상 앎이 없고 욕망도 없게 하고, 영리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것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이다. 어렵지만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자. 실천의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 가르침도 궤변이 되고 말 것이다.
현인을 숭상하면 사람들은 다툴까, 얻기 힘든 보배를 귀히 알면 사람들이 훔칠까, 욕심날만한 것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러울까. 만약 이와 같다면 왜 그럴까.
현인을 숭상한다는 것은 전제는 닮아감이다. 닮아감이 전제되지 않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게 된다. 보배를 귀히 안다는 것은 나눔과 안분이 전제되어야 한다. 내가 부자인 것을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주었을 때이다. 주었다는 흔적없이 주었을 때 그 보배는 참으로 값진 보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욕심날 만한 것은 분명히 다른 사람도 욕심나게 되어있다. 서로가 내 것 삼으려고 하면 다툼이 끊임없게 된다. 이른 바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다투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이 될 것이다. 내 만족의 깊이와 넓이, 방법을 바꿔보자.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비우고 뜻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역사는 마음이 이루어 온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뜻을 세워 일을 해왔다. 노자의 이 가르침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우리가 마음 먹은 것들이 언제나 옳고 정당한 것인가, 우리가 세운 뜻이 항상 개인이나 사회, 국가에 유익한 것이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노자의 가르침은 이렇다. 근원적으로 마음이나 뜻이 없는 무지한 삶을 살도록 한 것이 아니고, 지금 이 나이를 먹는 동안 알게 모르게 가져온 잘못된 마음이나 틀린 생각들을 덜어내고 비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배나 뼈는 누가 뭐라해도 나의 중심이다. 가장 근원적인 기본이다.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내 마음으로 내 생각으로 출발하는게 아니라 내면의 깊은 성찰을 통해 나를 다스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마음자리에서는 현인을 바로 보게되고 귀한 것을 참으로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욕심날만한 것을 보아도 마음이 초연해 질 것이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옛 길▶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도덕경> 제 3장 중).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난.
◀새 길▶
현인을 숭상하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다투지 않을 것이다.
얻기 힘든 보배를 귀히 알지 않으면 사람들이 훔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욕심날만한 것을 보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을 것이다.
◀漢字工夫▶
不[一, 3] 아닐 불, 말 불(일반적으로는 불로 읽지만, 뒤에 오는 글자의 첫음이 'ㄷ'이나 'ㅈ'이 올 경우에는 '부'로 발음함. 예 ; 不動(부동), 不知(부지) 등)
尙[小, 5] 오히려 상, 바랄 상, 숭상할 상
賢[貝, 8] 어질 현, 어진 사람 현, 착할 현
使[人, 6] 하여금 사, 시킬 사
爭[爪, 4] 다툴 쟁, 소송할 쟁
貴[貝, 5] 귀할 귀, 높을 귀, 소중할 귀
難[ , 11] 어려울 난(란), 재앙 난, 근심 난
得[ , 8] 얻을 득, 이익 득, 덕 득
之[ , 3] 갈 지, 이(지시대명사)것 지, ∼의(관형격 조사)
貨[貝, 4] 재화 화, 뇌물 화
爲[爪, 8] 할 위, 될 위, 만들 위
盜[皿, 7] 도둑 도, 훔칠 도
見[見, 0] 볼 견, 생각할 견('현'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나타나다, 드러나다의 경우로 해석되는 경우로 바로 알기는 어렵고 문장속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보는 것과 드러나는 것의 관계로 이해하면 쉽다. 즉 보는 것은 견이고, 보아서 드러나는 것은 현이다.)
可[口, 2] 옳을 가, 가히 가, 쯤 가
欲[欠, 7] 하고자 할 욕, 바랄 욕 (慾은 욕심이나 욕정의 뜻으로 쓰인다.)
亂[乙, 12] 어지러울 난, 간음할 난, 난리 난, 반역 난
◀산책 길▶
우리는 훌륭한 사람, 좋은 보배, 탐나는 물건을 보면 가까이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뒤집는다. 멀리 하고 귀히 여기지 말라고 한다. 우리 같은 범부는 행동하기 힘든 경우인 듯 하다. 도대체 어떤 경지에서나 이런 삶의 자세가 가능한 것일까.
노자의 가르침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고 배는 실답게 하며, 뜻은 약하게 하고 뼈는 튼튼하게 합니다. 사람들에게 항상 앎이 없고 욕망도 없게 하고, 영리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것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이다. 어렵지만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자. 실천의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 가르침도 궤변이 되고 말 것이다.
현인을 숭상하면 사람들은 다툴까, 얻기 힘든 보배를 귀히 알면 사람들이 훔칠까, 욕심날만한 것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러울까. 만약 이와 같다면 왜 그럴까.
현인을 숭상한다는 것은 전제는 닮아감이다. 닮아감이 전제되지 않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게 된다. 보배를 귀히 안다는 것은 나눔과 안분이 전제되어야 한다. 내가 부자인 것을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주었을 때이다. 주었다는 흔적없이 주었을 때 그 보배는 참으로 값진 보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욕심날 만한 것은 분명히 다른 사람도 욕심나게 되어있다. 서로가 내 것 삼으려고 하면 다툼이 끊임없게 된다. 이른 바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다투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이 될 것이다. 내 만족의 깊이와 넓이, 방법을 바꿔보자.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비우고 뜻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역사는 마음이 이루어 온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뜻을 세워 일을 해왔다. 노자의 이 가르침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우리가 마음 먹은 것들이 언제나 옳고 정당한 것인가, 우리가 세운 뜻이 항상 개인이나 사회, 국가에 유익한 것이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노자의 가르침은 이렇다. 근원적으로 마음이나 뜻이 없는 무지한 삶을 살도록 한 것이 아니고, 지금 이 나이를 먹는 동안 알게 모르게 가져온 잘못된 마음이나 틀린 생각들을 덜어내고 비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배나 뼈는 누가 뭐라해도 나의 중심이다. 가장 근원적인 기본이다.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내 마음으로 내 생각으로 출발하는게 아니라 내면의 깊은 성찰을 통해 나를 다스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마음자리에서는 현인을 바로 보게되고 귀한 것을 참으로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욕심날만한 것을 보아도 마음이 초연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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