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전 산 책▒

[도덕경02] 모든 일은 서로의 관계에서

자작나무숲이이원 2003. 3. 3. 18:00
[도덕경02] 모든 일은 서로의 관계에서






◀옛 길▶

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道德經> 제 2장 중)
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새 길▶

있음과 없음은 서로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길고 짧음은 서로의 관계에서 견주어지고
높고 낮음은 서로의 관계에서 기우는 것이고
악기 소리와 목소리는 서로의 관계에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의 관계에서 좇는 것이다.


◀漢字工夫▶

相[木, 5] 서로 상,볼 상, 자세히 상
難[ ,11] 어려울 난, 재앙 난, 꾸짖을 난
易[日, 4] 쉬울 이, 바꿀 역(※쉽다는 뜻의 '이'로 쓰일 때는 주로 難易, 容易등과 함께 쓰인다.)
較[車, 6] 견줄 교, 비교할 교
傾[人,11] 기울 경, 뒤집힐 경
音[音. 0] 소리 음, 음악 음(여기서는 악기 소리하는 뜻으로 쓰임)
聲[耳,11] 소리 성, 음성 성(여기서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뜻으로 쓰임)
和[禾, 3] 화할 화, 서로 응할 화
隨[阜,13] 따를 수, 수행할 수, 좇을 수


◀산책 길▶

우리가 아는 '아름다움'은 반드시 '추함'이라는 상대적인 말이 있음을 뜻한다. '착함'도 '착하지 않음'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세상의 존재 양식은 상대적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틀리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절대적인 존재 양태가 있음을 의미한다. 하늘의 상대는 땅인가. 하늘은 하늘로서 그 절대적인 존재인 것이다. 맞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늘은 땅이라는 상대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에 하늘인 것이다. 헷갈린다.

후자를 따라보자.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다. '잘함'과 '잘못함'이 있는 것은 상대가 있음이다. 완전한 혼자(이 말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라면 '잘함'과 '잘못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상대'라는 말은 이미 '있음'을 뜻하며,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가치가 성립되지 않는다. 참 삶의 가치는 서로의 관계성 속에서 성립되는 그야말로 서로의 사이를 어떻게 가꾸느냐의 문제이다.

완전한 짧음, 쉬움은 없다. 그야말로 상대적이다. 이 말이 틀린 것이라면 '완전한 짧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으면 되는데, 이 말은 설명할 수 없다. 짧음과 비교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그 짧음은 더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쉬움'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은 저절로 그러한데, 상대라고 하는 분별은 왜 생겨나는가? '내'가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사람의 육근(眼耳鼻舌身意, 눈·귀·코·입·몸·마음)이 작용하면서 분별이 생기고, 분별이 생기면서 상대가 생겼다. 내 육근을 사용할 때 이미 가치가 매겨진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극단 미추(美醜)'의 공연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그 공연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가졌던 생각이 미추에 대한 관념이다. 십 수삼년전에 손진책씨(극단 미추 단장)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미추냐고. 그의 대답은 이렇다. 미추라는 상대적인 관념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미추를 아우르고, 미추를 초월하여 결국에는 미추를 그대로 사랑하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미추라는 이름은 이 시대의 돌(?)인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미추 관념, 그야말로 '아름다움'과 '추함'은 사람이면 느끼는 본질 감정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내 마음속에 이미 미추를 분별하고 가름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산책길을 조금 더 걸어가 보자.

이러한 가치를 본질적으로 뛰어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성인이다. <도덕경>의 가르침은 성인이 되면 미추를 아우를 수 있다고 본다.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하지 않음으로 가르침을 베푼다.
모든 일 생겨나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일 이루나 가지려 하지 않고
할 것 다 이루나 거기에 의지하지 않고
공을 쌓으나 차지하지 않는다.
(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어떠한가?

유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함으로 가르침을 베풀고
일 생기면 마다하고
일 이루면 가지려 하고
할 것 다 이루면 거기에 의지하고
공을 쌓으면 차지하려 한다.

이제 이 산책길을 걷는 의미 하나를 찾아야겠다. 좋아하는 말 가운데 '과정'이라는 말이다. 영어의 'progress'인데, 이 말은 어떤 목표나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마음의 작용이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는 성인이 아니다. 성인을 지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임을 깨닫고 실천하면 된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이 나쁜 게 아니다. 마음이 나는 것이 사람이다. 그 마음을 돌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본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회복한 본래 마음을 실천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