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의 향 기▒

마른 장미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6. 16. 10:41
마른 장미





나의 웃음을 축복하는 손길에게

아름다운 장미 한다발 선물받고

헤- 벌린 입을 오랫동안 닫지 못해

눈가에 생기는 잔주름들이 거뭇해 지는 날,

하얀 손을 잡고 가슴에 안았던

그 고운 사랑의 꽃말들이

내 좁은 방안에서 말라가고 있다



하나씩 멀어지는 슬픔과

하나씩 생겨나는 은혜가 서로 만나

오랜 작별을 하는 슬프기도 하고

은혜롭기도 한 날에

마른 꽃잎지며 꽃 향에 취해

몇 날을 멀미하던 여린 가슴이

꽃다지 무리로 벙글고

온 땅의 이슬 모아 다시,

생명을 부르고 있다.




◀시작노트▶

수 년전에 한 일년동안 부산에 살았다. 낯선 도시의 한켠에서 낯모르는 사람을 만나 부대낀 날이 그리워졌다. 경상도 사람들은 첫마음을 잘 주지 않는다고 한다. 한 일년쯤 지나서 자기 마음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만남을 갖는다. 나이를 잊고 만나던 수많은 인연들과 정들어갈 때 쯤, 부산을 떠나왔다. 그 때 한 청년이 내게 장미 꽃 한 다발을 주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라 내심으로는 놀랐지만, 마음이 환해지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지역'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일까. 땅덩어리가 너른 나라에서는 땅으로 구분짓고 경계를 그었지만, 이 작은 나라에서 지역이라는 말이, 요즘 항간에 떠도는 '지역색'이라는 말이 가당한 말인가.

내 고향은 전라도 함평이다. 경상도라 해서, 또 다른 지역이라 해서 다른 마음이 내게 있지 않다. 더불어 지낼 한 형제이고 남매이다. 마른 꽃잎이 내게 그 마음을 챙겨준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시 의 향 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리를 빗으며  (0) 2002.06.16
금와당(金蛙堂) 물어가는 길  (0) 2002.06.16
내 컴퓨터  (0) 2002.06.14
숲정이 그네  (0) 2002.06.14
바위얼굴  (0) 200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