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1105) - 아름다운 스승님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11. 9. 21:17
오늘 그린 풍경화 - 아름다운 스승님





책 욕심에 벌써 몇 년째 사 모은 책들이 거실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도 모자라 작은 방 하나를 더 서재로 만들었습니다. 내게 필요한 책들은 거의 있어 도서관이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보고 싶은 책을 실컷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는 도서 분류법도 따르고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만 사 모았기에 필요한 책들을 찾을 때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행복은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행복입니다. 보아야 할 책을 보지 못할 때의 마음 저림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크게 동양철학, 문학, 종교학, 간호학(아내의 책) 분야의 책이 대종을 이룹니다. 그 가운데 동양철학 분야는 원전에서부터 사전류까지 필요한 책은 거의 다 구해 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책을 빌려달라고 해도 잘 빌려주지 않아 원성을 듣기도 하지만, 아주 오랜 된 전설처럼 빌려준 책은 잘 돌아오지 않거든요.

이렇게 책이 많다보니 겪게 되는 고충이 하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분명 내게 있는 책인데 잘 찾을 수 없을 때입니다. 책을 보고 난 뒤에 그 때 그 때 제자리에 두려고 하지만 어찌어찌하다보면 어질러진 채로 놓아두었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내게 원래 둔 채로 그냥 두면 별 문제가 없는데 꼭 마음먹고 집안을 정리한다거나 -주로 책 정리이지만- 아내가 큰 맘 먹고 집을 정리하는 날입니다.

지난 화요일(10월 30일)에도 다음 날 있을 독회 모임공부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다가 꼭 필요한 책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준비 없이 가면 함께 공부하는 여러 선생님들이 헛걸음을 하기 때문에 그냥 대충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무척 죄송한 일이었지만 아는 교수님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집에 있는가 찾아보시겠다고 하시길래, 10여분 뒤에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미안하네. 책이 집에 없구만. 연구실에는 있을걸세. 내가 지금 택시타고 갈테니 그리오소!”

그냥 없다고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12시가 다 된 그 시간에 공부하고 있는 제자를 위해 기꺼이 당신의 편안한 휴식과 잠자리를 저를 위해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연구실에 도착해보니 교수님께서 먼저 도착하셔서는 그 책을 찾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책은 쉽게 보이지 않고 대신 찾고자 하는 책의 일본어판이 있었습니다.

“급히 보려면 힘들걸세. 내가 번역해 줄테니 필요한 부분이 어딘가?”

내일 독회 공부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보다는 교수님에 대한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찾기를 더 하다가 마침내 한국어 판본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책 두 권을 빌려가지고 오는 밤은 밤 12시가 가까워서야 그 책을 찾아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스승님의 참 사랑이 가슴에 새겨지는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2001년 11월 5일
자작나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