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514) - 인연의 달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10. 30. 22:06
오늘 그린 풍경화 - 인연의 달





등에 땀이 조금 흐릅니다.
비를 기다리는 농심들은 안타까움만 더하는데
올려본 하늘은 맑기만 합니다.
햇살에 느뭇조는 정원의 나무들과
넝쿨장미꽃 나무에 물을 주어보지만
오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너무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저녁 나절 햇살 쉬는 틈을 내어 바지런을 떨어보지만
내리는 비님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모양입니다.

저녁 일기예보 시간에 북한의 날씨를 전해주는데
형제들의 가뭄은 더 심한가 봅니다.
바짝 타들어가는 밭에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듯
푸석거리기만 하고 심어논 작물들의 이파리들이
꼬구라져 있는 모습이 여간한 아픔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 고추모 한판(24)을 사다
빈 화분이며 양동이, 스치로폼 등에 심고는
여간 마음 쓰이는게 아닙니다.
사람이나 짐승들은 소리라도 지르고 끼앙거리기도 하지만
식물들은 제 혼자 감당하다 못하겠으면
아무 말없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마음 챙겨 물도 주고 지주도 세웠더니
제법 땅심을 받았는지 이파리들이 푸릇합니다.


등에 땀이 흘러 시원한 물줄기를 뿌리며
샤워라도 하고픈 마음이 나지만 좀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대신에 대야에 물을 조금 받아 수건에 적셔
땀을 닦아내는 것으로 더운 몸을 식힙니다.
저 하나 이리 하는게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싶지만
이리라도 하지 않으면 저리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낯을 들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서입니다.

내일이 스승의 날입니다.
이 땅에 참 스승이 있네, 없네 하지만
그런 말 하기 전에 오늘의 내가 서 있는 지금의 이 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내 삶에 있어서
어떤 형태로든지 선생님마다
많은 가르침을 베풀어주셨음을 잊지 못합니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
도화지를 준비해 가지 못한 학생을 나오라 하여
칠판에 얼굴을 문지르며
"너 같은 놈 때문에 수업이 안된다"하신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지금도 그런 분이 선생님이셨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누구신가를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자신있게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이셨던
한인례 선생님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여기에는 많은 사연이 있지만 다 얘기할 수는 없음)
약속의 땅 사북(강원도 정선에 있음)에서
어린 광산 노동자로 살던 내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시어
"너는 공부해야 한다"며 달래고 꾸짖고 설득하여
결국은 중학교 졸업 2년 뒤에 전북 익산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 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매년 봄 햇살에 그려보는 스승의 날이 되면
어김없이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사실 그 선생님을 만 3년만인 어제(13일)
익산에 가서 만나뵈었습니다.
3년전에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시어 귀국하신지
얼마되지 않았거든요.
너무나 반가워하시고 제가 하는 일에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을 해 주시는
정말 크신 선생님입니다.

이분외에도
내인생에 아름다운 영향을 미친 많은 스승님들이 계시지만
그분들에 대한 생각도 다 그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나마 그 모든 분들과
이 땅의 동량들을 키우시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립니다.

선생님들은 우리를 자라게 하는 빗줄기입니다.
많은 비가 내렸으면 하는 소망을 빌며
오늘의 풍경화 그리기를 마칩니다.


자작나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