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 - 섬진강에서 지리산으로
섬진강은 이제 마악 옷을 벗고 있었다. 지난 계절을 아리며 흘렀던 불투명한 옷을 벗고 투명한 수정빛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아마 부끄러운가 보다. 봄 햇살에 통통 튀는 은빛 물결속에 소살이는 봄 사랑들이 아직 제 모습을 찾기 전 인듯 한데 잔잔한 수면위를 간지르는 봄 바람에 가만 있질 못하고 연신 수정을 만드는가보다.
광주에서 출발하는 찻길이 한가롭다. 온통 봄빛으로 가득한 산천을 흘려보내며 섬진강 줄기 따라 봄 마중 가는 길이다. 성미가 급하여 가만 있질 못하고 그 넘치는 봄 빛살에 연신 한없는 경배의 감탄사를 올렸다.
동행한 지인들은 이런 내 모습이 조금 의아스러운가보다. 쌍계사를 지나쳤다. 넘치는 상춘객의 발길을 뒤로하고 칠불사 쪽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칠불사 아래의 범왕마을이다. 인연이 있는 분에게 점심을 부탁하여 점심을 먼저 먹기로 하고 올라가는 길이다.
5년전에 왔을 때 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넓혀진 길하며 산길 아래로 쿨콸거리며 흐르는 물줄기도 줄어든 것 같다. 도착한 시간이 약속한 12시 반이다.
음식도 거의 준비되어 있었다. 먼저 목이나 축이라며 고로쇠물을 내온다. 이즘엔 끝물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채취한 것이란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온 그 달큰한 맛은 뭐랄까, 군에 있을 때 천리를 걷는 훈련인 [천리행군]을 마치고 귀대해서 처음 마시는 물처럼 오랜 갈증을 풀어내는 듯, 바로 그런 맛의 깊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
차려 내놓은 밥상은 지난 계절의 수고로움과 새 봄빛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것이었다. 고사리며 개미취, 미역취, 곰취 등 작년에 뜯어 말린 나물종류와 올해 봄 햇살에 고개 내민 두릅, 불미나리, 자운영, 달래 등
때깔 고운 나물들과 섬진강 그 맑은 물에 흐르던 재첩국이다.
도저히 그냥 수저를 들 수 없다. 이 한 때의 식사를 위해 애써주신 하늘 땅의 적당한 기온과 바람, 햇살에 감사하고 이 음식을 먹기 까지 애써 주신 모든 인연들에게도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한 몇술 뜨다가 그냥 먹기에는 왠지 허전하여 큰 그릇을 부탁하여 비비기 시작했다. 산꿀로 담근 고추장에 여러 나물 들을 넣고 고실고실한 밥을 넣고 참기름 듬뿍 넣어 맛있게 비볐다. 입안 가득 그 밥을 떠 먹으니 그 맛은 뭐랄까. 황홀의 맛이었다. 지리산 자락을 돌아오는 봄을 온통 다 먹는 기분이었다. 참, 지져 내놓은 전도 어찌 그리 담백하게 맛있던지, 과식을 해도 한참을 했나보다. 산길을 달려와 고스러진 몸짓이 한없는 평안에 젖는다.
봄 햇살에 느뭇조는 포만감을 뒤로하고 계곡에 점점 박힌 산수유며 진달래 꽃색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젠 칠불사다. 평소에도 깨달음은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라 생각해 왔는데, 부처를 이룬 일곱 왕자분은 그 뒤에 과연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칠불사 일주문이다. 승과 속을 가르는 일주문앞에서 과연 나는 저 세상의 욕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욕망에 초연하여 아름다운 세상의 꿈을 꾸는지 되돌아 보았다.
칠불사도 변하긴 마찬가지다. 예전에 없던 전우(殿宇)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임없다.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수없이 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을 과연 어떤 소망을 빌고 있는 것일까?' 그 염원 앞에 쌓인 부처님의 자비가 한없는 듯 하다. 나도 부처님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했다. 소망을 빌기보다는 차라리 내 비움을 위해 절을 했다.
우리 나란 참 좁기도 좁지, 이 지리산 골짜기 칠불사에서도 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났다. 평소 알고 지내던 어르신들인데, 만나서 반갑다며 굳이 저녁을 사시겠단다. 따로 일행이 있어 죄송하다고 했더니 큰 돈을 건네주신다. 부처님께 올린 참배의 공덕인지, 아름다운 인연짓기의 공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자동차의 속도를 줄였다. 이젠 돌아가는 길이다. 이제부터 화개의 벗꽃(난 벚꽃이 수없이 아름다운 벗들의
속삭임 같아 벗꽃이라 쓰기를 즐긴다.) 십리길을 영접할 일이 남았다. 그동안 난 도대체 그 꽃빛을 보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몰랐다. 하기야 대학 시절에 전군로 벚꽃길을 하이킹하면서 맡았던 그 꽃내와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 있던 왕벚나무의 꽃비를 보았던 기억, 입안이 붉다 붉다 검어지던 버찌를 따 먹던 기억이 추억의 이름으로 있을 뿐이다.
그냥 길 따라 내려오면서 벗꽃길을 흔들흔들 걸었다. 수 많은 인파속에서 눈빛 게슴뜨고 콧김을 벌렁거리며 맡았던 그 향내가 너무나 좋다. 꼭 사진으로 찍지 않아도 내 눈빛에 담다 담다 넘치면 가슴에 옮겼다.
아무리 넘치는 내 욕심으로 담아도 누구하나 시비하는 사람이 없어 너무 좋았다. 산자락에 듬성 박힌 진달래 꽃색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벗꽃길 사이로 화사한 개나리의 자태도 너무 아름다웠다. 참, 이 하얀 꽃망울이 지리산을 따라 누운 논에 가득한 풋보리의 초록색과도 환상적이 어울림을 선사해 주었다.
그 울뚝한 나무 어디에 이처럼 화사한 꽃색이 숨어있을까, 왜 우리 인간은 보이는 저 꽃 모습에만 환호하고 탄성을 지르면서 저 안에 감추어져 있는 내밀한 깊이는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사람도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속내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다른 사람을 이 작고 작은 내 잣대로 재서는 안된다. 이것이 진리이고 깨달음이다. 이제 실천의 길만 남은 것이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하동쪽으로 내려가는 내내 화사한 벗꽃길이다. 이 기막힌 나들이에 자연의 축복은 거의 전폭적이었다. 꽃 빛이 식어질 때 쯤 섬진강 건너편 광양의 매실농장에 들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항아리의 모습과 새콤한 매실차 한잔을 들이키니 하루의 여독이 모두 녹아내린다.
어슴한 저녁에 광주로 돌아왔지만, 가슴에 환한 봄 꽃빛에 넘치는 행복을 주체할 수 없으니 어쩌지 참.
2001년 4월 3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섬진강은 이제 마악 옷을 벗고 있었다. 지난 계절을 아리며 흘렀던 불투명한 옷을 벗고 투명한 수정빛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아마 부끄러운가 보다. 봄 햇살에 통통 튀는 은빛 물결속에 소살이는 봄 사랑들이 아직 제 모습을 찾기 전 인듯 한데 잔잔한 수면위를 간지르는 봄 바람에 가만 있질 못하고 연신 수정을 만드는가보다.
광주에서 출발하는 찻길이 한가롭다. 온통 봄빛으로 가득한 산천을 흘려보내며 섬진강 줄기 따라 봄 마중 가는 길이다. 성미가 급하여 가만 있질 못하고 그 넘치는 봄 빛살에 연신 한없는 경배의 감탄사를 올렸다.
동행한 지인들은 이런 내 모습이 조금 의아스러운가보다. 쌍계사를 지나쳤다. 넘치는 상춘객의 발길을 뒤로하고 칠불사 쪽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칠불사 아래의 범왕마을이다. 인연이 있는 분에게 점심을 부탁하여 점심을 먼저 먹기로 하고 올라가는 길이다.
5년전에 왔을 때 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넓혀진 길하며 산길 아래로 쿨콸거리며 흐르는 물줄기도 줄어든 것 같다. 도착한 시간이 약속한 12시 반이다.
음식도 거의 준비되어 있었다. 먼저 목이나 축이라며 고로쇠물을 내온다. 이즘엔 끝물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채취한 것이란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온 그 달큰한 맛은 뭐랄까, 군에 있을 때 천리를 걷는 훈련인 [천리행군]을 마치고 귀대해서 처음 마시는 물처럼 오랜 갈증을 풀어내는 듯, 바로 그런 맛의 깊이를 느낄 수가 있었다.
차려 내놓은 밥상은 지난 계절의 수고로움과 새 봄빛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것이었다. 고사리며 개미취, 미역취, 곰취 등 작년에 뜯어 말린 나물종류와 올해 봄 햇살에 고개 내민 두릅, 불미나리, 자운영, 달래 등
때깔 고운 나물들과 섬진강 그 맑은 물에 흐르던 재첩국이다.
도저히 그냥 수저를 들 수 없다. 이 한 때의 식사를 위해 애써주신 하늘 땅의 적당한 기온과 바람, 햇살에 감사하고 이 음식을 먹기 까지 애써 주신 모든 인연들에게도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한 몇술 뜨다가 그냥 먹기에는 왠지 허전하여 큰 그릇을 부탁하여 비비기 시작했다. 산꿀로 담근 고추장에 여러 나물 들을 넣고 고실고실한 밥을 넣고 참기름 듬뿍 넣어 맛있게 비볐다. 입안 가득 그 밥을 떠 먹으니 그 맛은 뭐랄까. 황홀의 맛이었다. 지리산 자락을 돌아오는 봄을 온통 다 먹는 기분이었다. 참, 지져 내놓은 전도 어찌 그리 담백하게 맛있던지, 과식을 해도 한참을 했나보다. 산길을 달려와 고스러진 몸짓이 한없는 평안에 젖는다.
봄 햇살에 느뭇조는 포만감을 뒤로하고 계곡에 점점 박힌 산수유며 진달래 꽃색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젠 칠불사다. 평소에도 깨달음은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라 생각해 왔는데, 부처를 이룬 일곱 왕자분은 그 뒤에 과연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칠불사 일주문이다. 승과 속을 가르는 일주문앞에서 과연 나는 저 세상의 욕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욕망에 초연하여 아름다운 세상의 꿈을 꾸는지 되돌아 보았다.
칠불사도 변하긴 마찬가지다. 예전에 없던 전우(殿宇)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임없다.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수없이 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을 과연 어떤 소망을 빌고 있는 것일까?' 그 염원 앞에 쌓인 부처님의 자비가 한없는 듯 하다. 나도 부처님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했다. 소망을 빌기보다는 차라리 내 비움을 위해 절을 했다.
우리 나란 참 좁기도 좁지, 이 지리산 골짜기 칠불사에서도 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났다. 평소 알고 지내던 어르신들인데, 만나서 반갑다며 굳이 저녁을 사시겠단다. 따로 일행이 있어 죄송하다고 했더니 큰 돈을 건네주신다. 부처님께 올린 참배의 공덕인지, 아름다운 인연짓기의 공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자동차의 속도를 줄였다. 이젠 돌아가는 길이다. 이제부터 화개의 벗꽃(난 벚꽃이 수없이 아름다운 벗들의
속삭임 같아 벗꽃이라 쓰기를 즐긴다.) 십리길을 영접할 일이 남았다. 그동안 난 도대체 그 꽃빛을 보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몰랐다. 하기야 대학 시절에 전군로 벚꽃길을 하이킹하면서 맡았던 그 꽃내와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 있던 왕벚나무의 꽃비를 보았던 기억, 입안이 붉다 붉다 검어지던 버찌를 따 먹던 기억이 추억의 이름으로 있을 뿐이다.
그냥 길 따라 내려오면서 벗꽃길을 흔들흔들 걸었다. 수 많은 인파속에서 눈빛 게슴뜨고 콧김을 벌렁거리며 맡았던 그 향내가 너무나 좋다. 꼭 사진으로 찍지 않아도 내 눈빛에 담다 담다 넘치면 가슴에 옮겼다.
아무리 넘치는 내 욕심으로 담아도 누구하나 시비하는 사람이 없어 너무 좋았다. 산자락에 듬성 박힌 진달래 꽃색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벗꽃길 사이로 화사한 개나리의 자태도 너무 아름다웠다. 참, 이 하얀 꽃망울이 지리산을 따라 누운 논에 가득한 풋보리의 초록색과도 환상적이 어울림을 선사해 주었다.
그 울뚝한 나무 어디에 이처럼 화사한 꽃색이 숨어있을까, 왜 우리 인간은 보이는 저 꽃 모습에만 환호하고 탄성을 지르면서 저 안에 감추어져 있는 내밀한 깊이는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사람도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속내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다른 사람을 이 작고 작은 내 잣대로 재서는 안된다. 이것이 진리이고 깨달음이다. 이제 실천의 길만 남은 것이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하동쪽으로 내려가는 내내 화사한 벗꽃길이다. 이 기막힌 나들이에 자연의 축복은 거의 전폭적이었다. 꽃 빛이 식어질 때 쯤 섬진강 건너편 광양의 매실농장에 들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항아리의 모습과 새콤한 매실차 한잔을 들이키니 하루의 여독이 모두 녹아내린다.
어슴한 저녁에 광주로 돌아왔지만, 가슴에 환한 봄 꽃빛에 넘치는 행복을 주체할 수 없으니 어쩌지 참.
2001년 4월 3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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