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 - 새벽 풍경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매번 저릿한 느낌이 드는 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이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몸을 덮어주던 이불과 그 위에 살포시 앉은 어둠을 조심스레 개키면 저 멀리 희번한 동녘 하늘은 해돋이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아주 경건하게 창문을 열고 밤새 정화된 맑은 공기를 내 욕심껏 들이키면 폐부를 지나 내 무의식의 영역까지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점퍼를 덧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밤새 이완된 몸을 이리 저리 비틀어 눌려 잠든 세포들을 깨우면 몸 구석구석에서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문을 나설 때 부지런한 김군이 새벽잠 털고 날라 온 툭- 던지는 아침 신문에 밤새 영근 새 소식들이 알알이 열려있습니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은 소식들도 많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아름다운 소식의 열매도 알차게 영글어 있습니다.
채 가시지 않은 어둠 속으로 의경들의 힘찬 구보 소리가 들립니다. 스무살 갓 넘은 똘랑똘랑한 눈빛들의 청년들이 좁은 길목에서 피가 울뚝이듯이 달려갑니다.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선임자는 구보가 힘에 겨운지 뒤에서 헉헉거립니다. 나도 저렇게 뛸 수 있을까.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미시령 입구에서 맨몸으로 내달려 그 시린 미시령 계곡 물에 몸 담그던 그 칼바람속의 구보가 지금 생각나는 건 왜일까? 골목을 돌아가는 의경들의 힘찬 함성이 밀려옵니다. 나를 넘어뜨리고 다시 일어나 뛰어라 합니다.
종종 걸음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일찍 등교하는 여중생들 입가에 하얀 김이 서립니다. 채 떨쳐내지 못한 자도 자도 부족한 마법의 잠은 잠시 찬 날씨 속에서 깨어있습니다. 아이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셨을 어머님의 모자란 잠은 언제 채울 수 있을지, 어머님들의 모자란 잠에 따뜻한 우유 한잔을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낯을 익힌 학생 하나가 토란 잎 위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통통 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얼마나 맑던지 내 귀가 즐겁다 즐겁다 난립니다. 의식의 흐름은 어서 웃으라며 튜닝을 하고 그 아이와 맞은 내 주파수의 얼굴엔 하얀 웃음이 피어납니다. 새벽하늘에 번져가는 웃음꽃은 좀 있으면 떠오를 아침 햇살처럼 환합니다.
내 걸음은 느릿느릿합니다. 그렇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진 않지만 내 오감을 열어두고 만나는 새 아침의 모습이 내 몸 안에서 활기차게 맥노리를 하고 있습니다. 몸은 마치 맞게 데워져 무척 상쾌합니다. 좀 있으면 쓰레기차가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십니다. 10리터짜리 작은 봉투에 가득 담긴 쓰레기는 썩을 준비를 하는 듯 냄새가 심합니다. 아마 제대로 썩을 것 같습니다.
30여분이나 걸었을까요. 평소 걷던 길의 절반 정도 왔으니 아마 그 정도 되었을 겁니다. 남자 몇 분이 타이어를 교체합니다. 그 부근에 있는 몇 대의 자동차가 모두 펑크가 나 있습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펑크를 냈나 봅니다. 사내들은 듣기에도 거북한 욕을 마구 하며 시린 손으로 타이어를 교체합니다. 나라도 화가 단단히 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왜 이런 욕들을 일을 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사내들도 갚을 자리에서 참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하루의 첫 시작이 마음이 아프니 만나는 인연마다 혹 낯 찡그리고 마음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싶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인연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의 소망을 빌었습니다.
좀 더 걷다가 우유 배달하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 입 언저리에 하얀 김이 서리고, 옹알거리는 자식들을 두고 나왔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시원한 우유 한 잔 마시고 싶어 주머니를 찾아보니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맛만 생각하기로 했지요. 평소에 낯을 좀 익혀둘걸, 그러면 오늘 같은 날 좀 미안하기는 해도 우유 하나 외상으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반가운 얼굴로 “아주머니 애쓰시네요!” 말간 인사를 건넸더니 아주머니 얼굴도 환해집니다. 나도 겨우 얼굴만 몇 차례 익혔을 뿐인데 아주머니는 늘 이 길을 오고 가는 나를 기억하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무심한 사람입니다. 얼른 우유 하나 건네시며 바쁜 걸음을 옮깁니다. 이른 아침부터 빚을 졌습니다. 어떻게 갚을까 곰곰 생각하며 걸음을 옮깁니다.
집에 있으면 일찍 일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늦게 자기도 하고 가족들과 부대끼다보면 환한 아침 햇살을 눈곱 낀 얼굴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일찍 일어나 내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로 맞이하는 하루는 온통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새벽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둘지 않고, 쫓기지 않고, 나태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유 있는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봉산 자락을 휘감고 도는 새벽안개, 그 그리움에 풀어진 하얀 소망들이 투명한 햇살에 녹아 걷히고 있습니다. 햇살 환한 아침입니다.
2001년 12월 8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매번 저릿한 느낌이 드는 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이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몸을 덮어주던 이불과 그 위에 살포시 앉은 어둠을 조심스레 개키면 저 멀리 희번한 동녘 하늘은 해돋이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아주 경건하게 창문을 열고 밤새 정화된 맑은 공기를 내 욕심껏 들이키면 폐부를 지나 내 무의식의 영역까지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점퍼를 덧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밤새 이완된 몸을 이리 저리 비틀어 눌려 잠든 세포들을 깨우면 몸 구석구석에서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문을 나설 때 부지런한 김군이 새벽잠 털고 날라 온 툭- 던지는 아침 신문에 밤새 영근 새 소식들이 알알이 열려있습니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은 소식들도 많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아름다운 소식의 열매도 알차게 영글어 있습니다.
채 가시지 않은 어둠 속으로 의경들의 힘찬 구보 소리가 들립니다. 스무살 갓 넘은 똘랑똘랑한 눈빛들의 청년들이 좁은 길목에서 피가 울뚝이듯이 달려갑니다.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선임자는 구보가 힘에 겨운지 뒤에서 헉헉거립니다. 나도 저렇게 뛸 수 있을까.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미시령 입구에서 맨몸으로 내달려 그 시린 미시령 계곡 물에 몸 담그던 그 칼바람속의 구보가 지금 생각나는 건 왜일까? 골목을 돌아가는 의경들의 힘찬 함성이 밀려옵니다. 나를 넘어뜨리고 다시 일어나 뛰어라 합니다.
종종 걸음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일찍 등교하는 여중생들 입가에 하얀 김이 서립니다. 채 떨쳐내지 못한 자도 자도 부족한 마법의 잠은 잠시 찬 날씨 속에서 깨어있습니다. 아이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셨을 어머님의 모자란 잠은 언제 채울 수 있을지, 어머님들의 모자란 잠에 따뜻한 우유 한잔을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낯을 익힌 학생 하나가 토란 잎 위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통통 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얼마나 맑던지 내 귀가 즐겁다 즐겁다 난립니다. 의식의 흐름은 어서 웃으라며 튜닝을 하고 그 아이와 맞은 내 주파수의 얼굴엔 하얀 웃음이 피어납니다. 새벽하늘에 번져가는 웃음꽃은 좀 있으면 떠오를 아침 햇살처럼 환합니다.
내 걸음은 느릿느릿합니다. 그렇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진 않지만 내 오감을 열어두고 만나는 새 아침의 모습이 내 몸 안에서 활기차게 맥노리를 하고 있습니다. 몸은 마치 맞게 데워져 무척 상쾌합니다. 좀 있으면 쓰레기차가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십니다. 10리터짜리 작은 봉투에 가득 담긴 쓰레기는 썩을 준비를 하는 듯 냄새가 심합니다. 아마 제대로 썩을 것 같습니다.
30여분이나 걸었을까요. 평소 걷던 길의 절반 정도 왔으니 아마 그 정도 되었을 겁니다. 남자 몇 분이 타이어를 교체합니다. 그 부근에 있는 몇 대의 자동차가 모두 펑크가 나 있습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펑크를 냈나 봅니다. 사내들은 듣기에도 거북한 욕을 마구 하며 시린 손으로 타이어를 교체합니다. 나라도 화가 단단히 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왜 이런 욕들을 일을 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사내들도 갚을 자리에서 참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하루의 첫 시작이 마음이 아프니 만나는 인연마다 혹 낯 찡그리고 마음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싶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인연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의 소망을 빌었습니다.
좀 더 걷다가 우유 배달하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 입 언저리에 하얀 김이 서리고, 옹알거리는 자식들을 두고 나왔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시원한 우유 한 잔 마시고 싶어 주머니를 찾아보니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맛만 생각하기로 했지요. 평소에 낯을 좀 익혀둘걸, 그러면 오늘 같은 날 좀 미안하기는 해도 우유 하나 외상으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반가운 얼굴로 “아주머니 애쓰시네요!” 말간 인사를 건넸더니 아주머니 얼굴도 환해집니다. 나도 겨우 얼굴만 몇 차례 익혔을 뿐인데 아주머니는 늘 이 길을 오고 가는 나를 기억하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무심한 사람입니다. 얼른 우유 하나 건네시며 바쁜 걸음을 옮깁니다. 이른 아침부터 빚을 졌습니다. 어떻게 갚을까 곰곰 생각하며 걸음을 옮깁니다.
집에 있으면 일찍 일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늦게 자기도 하고 가족들과 부대끼다보면 환한 아침 햇살을 눈곱 낀 얼굴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일찍 일어나 내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로 맞이하는 하루는 온통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새벽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둘지 않고, 쫓기지 않고, 나태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유 있는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봉산 자락을 휘감고 도는 새벽안개, 그 그리움에 풀어진 하얀 소망들이 투명한 햇살에 녹아 걷히고 있습니다. 햇살 환한 아침입니다.
2001년 12월 8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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