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1231) - 매듭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12. 31. 16:38
오늘 그린 풍경화 - 매듭






군대시절 여러 가지 매듭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매듭의 원리는 "잘 묶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묶어야 풀어야 할 때 잘 풀리고, 풀리지 않아야 할 때 풀리지 않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이 한 해 동안 어떤 매듭을 묶고 풀어야 할 때 잘 풀었는지, 풀지 않아야 할 때 온전한 모습으로 있었는지를 되돌아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스스로 이런 약속을 합니다. "오늘 하루도 몸과 입과 마음을 온전하게 사용하여 은혜를 갚고 누군가를 위해 살겠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에는 아침의 다짐을 제대로 실천했는지 반성하고 마음속으로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며 편안한 잠자리에 듭니다. 새 달이나 새해도 하루를 맞이하고 보내는 것처럼 "계획" "실천" "반성"이라는 틀 속에서 지냅니다.

이제 새해 아침 스스로를 묶었던 수많은 매듭 가운데 풀 것은 어떤 것이 있고, 풀지 않아야 할 것은 제대로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새해 아침에 이런 매듭을 묶었습니다. "너 스스로 격려하고 위로해라" "입과 몸과 마음을 챙겨라" "너만을 위해 살지 말아라" "겸손한 마음으로 칭찬하고 용서해라"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을 전해라" 이런 매듭을 묶고 "辛巳五則"이라 이름짓고 붓글씨로 써서 수첩 맨 앞에 붙여두었습니다.

첫 번째 매듭은 "너 스스로 격려하고 위로해라"입니다. 그 동안은 스스로를 조이고 채찍질하며 늘 긴장 속에 살다보니 내 몸 안 모든 세포들이 늘 반항을 합니다. 참 삶의 근본은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는데 있다는 것을, 그 힘이 세상을 좀 더 맑고 밝고 훈훈하게 한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이 마음가짐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사실 한 해를 돌아보니 자잘한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나를 닦달하고 조이기보다는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그 격려와 위로에 다음 번엔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이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해지는 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매듭은 "입과 몸과 마음을 챙겨라"입니다. 늘 내 안에서 함께 하는 내 모습인데,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여 인연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뒤돌아서 눈물 흘리게 한 일이 많습니다. 앞 칼럼에서 쓴 "멈추고 웃고 함께 하는" 것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가장 쉬운 처세(긍정적인 의미에서의)의 방법임을 체험적으로 안 것입니다. 멀리 보지 않더라도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몸 한 번 잘못 놀려서 괴로움을 겪는 사람을 수도 없이 보게됩니다. 내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희망을 얻고 행복을 찾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런 다짐과는 달리 되돌아보면 수 없이 저지른 말과 행동의 잘못들, 곱게 쓰지 못한 마음씨들이 온 세상에 뿌려져 상극의 인연으로 자라날 틈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새해 첫 다짐을 챙겨 사느라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고 한 해를 보내왔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매듭은 "너만을 위해 살지 말아라"입니다. 내 가족, 내 건강, 내 일 등 모든 것을 내 본위로 살다보면 이웃의 아픔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본다면 남을 위하는 마음과 행동이 결국은 내 스스로에게 엄청난 이로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힘들고 어렵고 괴로움에 함께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도 내 어려움과 괴로움과 절망의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밉니다.
올 한해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보다는 나를 위하는 마음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더 나누며 살고, 욕심 주머니 하나를 덜어냈다는 작은 위안을 가져봅니다.

네 번째 매듭은 "겸손한 마음으로 칭찬하고 용서해라"입니다. 나는 분명히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아니지 누가 보더라도 정당한 일인데도 내 행동을 받아들이는 상대는 옳게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 감정의 골을 메우지 않은 채 직설법으로 "내 옳음"만 전했지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빈정거림으로 들리지 않게, 충고를 할 때도 기분 상하지 않게끔 내 마음속에서 겸손함을 심은 뒤에 칭찬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사실 이 네 번째가 내게 가장 어려운 매듭이었습니다. 편안하게 지내야할 가까운 사람과의 인연을 내 맘속에서 밀어내려 애쓴 겁니다. 사실 이 매듭은 제대로 풀고 지나가야 할 것 같은데 좀 더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매듭은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을 전해라"입니다. 무뚝뚝한 남자라 사랑한다 말하고 전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정한 매듭입니다. 아내와 가족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사랑을 표현하겠다고 정한 건데, 지금도 자신이 없는 부분입니다. 가끔은 진지하기보다 가벼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 게 사랑입니다. 아내는 아이들 셋과 씨름하며 직장생활 하느라 무척 힘든 한 해를 보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와 늘 함께 있지 못하여 사랑이 모자랄텐데 별 탈 없이 잘 자라 주었습니다.
유형의 것으로 사랑을 표하기보다는 무형의 것이라도 전할 수 있는 감동이 많았는데 그것마저 소홀히 한 부족한 남편이자 아빠였습니다.

사실 이 다섯 매듭은 각각인것 같지만 모두 하나입니다. 어느 한 매듭이라도 정확히 맺고 풀줄 안다면 다른 매듭도 저절로 맺어지는 아주 놀라운 매듭입니다. 새해 첫날 묶었던 매듭을 다시 풀어 맵니다. 이 매듭은 내 평생 유효할테니까요. 여러분도 함게 이 다섯가지 매듭을 맺지 않으실래요. 전 다시 매듭을 맺고 새해를 기다리렵니다.



2001년 12월 31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