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린 풍경화 - 태백 칼국수
예전에 들은 말 가운데 기억하는 한 마디가 어느 도시를 가던지 역전 부근에 있는 식당들의 음식 맛이란 게 그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없다는 말이다. “무슨 역 밥상 같다”는 말이 반찬 가지 수만 너절하지 먹잘 게 없다는 뜻이다. 낯선 지방을 여행하거나 일이 있어 갈 때 자주 이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그 지역 “관광과”등에 전화로 알아보는 것이다. 그곳에서 안내하는 곳은 경험상으로 맛과 서비스에서 믿어도 좋다. 안내받아 간 식당에 미리 시청이나 군청에서 소개를 받아 왔다고 말하면 뭔가 달라져도 달라진다.
전북 익산역 앞에는 수많은 식당들이 즐비하다. ‘먹자골목’은 아니어도 다양한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전라도 밥상이 그렇듯 맛깔스런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역 앞이 예전에 가장 번화했던 중앙동이다. 지금도 예전과 같은 소란스런 번화함은 없지만, 시내의 한 중심이 갖는 위엄 있는 왁짜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건물의 앞면은 새로 치장해서 세련된 맛이 느껴지지만 조금만 안으로 헤집어 들어가 보면 아주 오랜 건물에서 풍기는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집이 많다.
예로부터 우리는 음식이름 앞에 지역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었나 보다. 전주 비빔밥, 수원 갈비, 나주 곰탕, 춘천 닭갈비 등의 이름이다. 오늘 난 태백 칼국수를 얘기하고 싶다. 짐작했겠지만, 태백 칼국수는 강원도 태백에서 유명한 음식 이름도 아니고, 전북 익산 역 앞에 있는 조그마한 칼국수 집의 이름이다. 차 두 대가 비켜갈 수 없는, 사람 두서넛 겨우 비켜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 초입에 20여년을 한결같이 서있는 식당이다.
내가 그 식당을 다닌 지 벌써 15년이 지났어도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겨주고 칼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이다. 일하는 분들도 대부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인데 길게는 20여년 가까이 일한 분도 있고, 짧게는 5년여정도 일한 그야말로 가족같이 어울려 일한다. 일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 대소사에도 서로 참여하여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자매처럼 지낸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있을 수 있는 힘이 무얼까, 재밌는 것은 그 주위에 식당이 많고 늘 주인이 바뀌지만 ‘태백 칼국수’만은 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그 맛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동안 변함없이 한결같은 맛을 낼 수 있는 비밀은 무얼까. 다는 모르지만 15년 단골로서 몇 가지 짐작해 보는 일은 있다. 칼국수의 국물은 요즘 유행하는 해물 칼국수가 아닌 돼지뼈와 다시 멸치로 우린다. 돼지뼈는 늘 싱싱한 것을 고르고, 좋은 멸치를 고르기 위해 직접 남해까지 멸치를 보러 다닌다. 그 뼈와 멸치로 지금도 사장님이 직접 저녁내내 푹 고아낸다.
15년을 다니는 동안 잊지 못할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요즘 어지간한 식당치고 담배를 못 피우는 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나도 예전엔 담배를 피웠는데, 그 집에선 처음부터 아예 금연이었다. 처음 온 분들의 불만이 없지도 않았지만, 식당에서 담배연기를 날린다는 건, 청결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꾸준히 금연운동을 편 결과 지금은 당연히 금연인줄 알고, 멋모르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도 슬그머니 넣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태백칼국수는 가게가 좁다보니 식탁이 몇 되지 않는다. 식당에 가서 합석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선 바쁠 땐 합석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낯모르는 남녀끼리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한솥밥을 먹는다는 식구라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이 태백 칼국수에서는 자연스럽다.
또한 이 집의 반찬은 단순하다. 사시사철 내놓는 배추김치와 여름철엔 단무지, 겨울철엔 한입에 베어 먹기 힘든 큰 깍두기를 내 놓는다. 그러니 언제나 두 가지인 셈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오래전에 김치를 김치라 부르지 않고 “금치”라 불렀던 때가 있다. 그 때 대부분의 식당에선 배추김치 대신 다른 김치를 만들어 내놓았다. 배추 한 포기에 몇 천원씩 하던 때인데, 매일 김치를 담근다는건 파는 만큼 손해를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아니 요즘 같이 배추가 비싼 철엔 다른 김치를 내 놔도 뭐라는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다.”
“난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스스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반찬 하나 더 내놓는 것도 약속에 어긋나고, 다른 반찬을 내는 것도 약속에 어긋나요.”
그래서인지 이 집의 김치 맛은 별나다. 그만큼 맛있다는 얘기다. 예전에 자취할 때 아쉬운 소릴 하면 한통씩 퍼주곤 하던 그런 김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김치가 굉장히 빨간데도 그리 맵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잘 먹으니 말이다. 그 답은 이렇다. 김치 맛도 어느 한 부류 사람들에게 맞출 수 없어서 매운 맛과 단 맛이 나는 고추를 계약 재배해서 최상의 것을 쓴다. 그러니 맛이 없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이 집 칼국수 맛의 비결은 또 하나 있다. 다른 아닌 “나눔의 실천 ”이다. “장사해서 번 돈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쓰는 것은 옳지 않다. 나눠야 한다.”그런 나눔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사돈의 팔촌까지 대소사의 어려움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복지기관, 종교기관에도 나눔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는 나누었다는 생각이 없다. “우리 집에 오신 손님들이 부탁한 일을 대신 할 뿐이다”라는 게 태백 칼국수 오상해 사장님의 생각이다.
예전에 들은 말 가운데 기억하는 한 마디가 어느 도시를 가던지 역전 부근에 있는 식당들의 음식 맛이란 게 그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없다는 말이다. “무슨 역 밥상 같다”는 말이 반찬 가지 수만 너절하지 먹잘 게 없다는 뜻이다. 낯선 지방을 여행하거나 일이 있어 갈 때 자주 이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그 지역 “관광과”등에 전화로 알아보는 것이다. 그곳에서 안내하는 곳은 경험상으로 맛과 서비스에서 믿어도 좋다. 안내받아 간 식당에 미리 시청이나 군청에서 소개를 받아 왔다고 말하면 뭔가 달라져도 달라진다.
전북 익산역 앞에는 수많은 식당들이 즐비하다. ‘먹자골목’은 아니어도 다양한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전라도 밥상이 그렇듯 맛깔스런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역 앞이 예전에 가장 번화했던 중앙동이다. 지금도 예전과 같은 소란스런 번화함은 없지만, 시내의 한 중심이 갖는 위엄 있는 왁짜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건물의 앞면은 새로 치장해서 세련된 맛이 느껴지지만 조금만 안으로 헤집어 들어가 보면 아주 오랜 건물에서 풍기는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집이 많다.
예로부터 우리는 음식이름 앞에 지역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었나 보다. 전주 비빔밥, 수원 갈비, 나주 곰탕, 춘천 닭갈비 등의 이름이다. 오늘 난 태백 칼국수를 얘기하고 싶다. 짐작했겠지만, 태백 칼국수는 강원도 태백에서 유명한 음식 이름도 아니고, 전북 익산 역 앞에 있는 조그마한 칼국수 집의 이름이다. 차 두 대가 비켜갈 수 없는, 사람 두서넛 겨우 비켜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 초입에 20여년을 한결같이 서있는 식당이다.
내가 그 식당을 다닌 지 벌써 15년이 지났어도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겨주고 칼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이다. 일하는 분들도 대부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인데 길게는 20여년 가까이 일한 분도 있고, 짧게는 5년여정도 일한 그야말로 가족같이 어울려 일한다. 일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 대소사에도 서로 참여하여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자매처럼 지낸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있을 수 있는 힘이 무얼까, 재밌는 것은 그 주위에 식당이 많고 늘 주인이 바뀌지만 ‘태백 칼국수’만은 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그 맛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동안 변함없이 한결같은 맛을 낼 수 있는 비밀은 무얼까. 다는 모르지만 15년 단골로서 몇 가지 짐작해 보는 일은 있다. 칼국수의 국물은 요즘 유행하는 해물 칼국수가 아닌 돼지뼈와 다시 멸치로 우린다. 돼지뼈는 늘 싱싱한 것을 고르고, 좋은 멸치를 고르기 위해 직접 남해까지 멸치를 보러 다닌다. 그 뼈와 멸치로 지금도 사장님이 직접 저녁내내 푹 고아낸다.
15년을 다니는 동안 잊지 못할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요즘 어지간한 식당치고 담배를 못 피우는 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나도 예전엔 담배를 피웠는데, 그 집에선 처음부터 아예 금연이었다. 처음 온 분들의 불만이 없지도 않았지만, 식당에서 담배연기를 날린다는 건, 청결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꾸준히 금연운동을 편 결과 지금은 당연히 금연인줄 알고, 멋모르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도 슬그머니 넣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태백칼국수는 가게가 좁다보니 식탁이 몇 되지 않는다. 식당에 가서 합석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선 바쁠 땐 합석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낯모르는 남녀끼리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한솥밥을 먹는다는 식구라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이 태백 칼국수에서는 자연스럽다.
또한 이 집의 반찬은 단순하다. 사시사철 내놓는 배추김치와 여름철엔 단무지, 겨울철엔 한입에 베어 먹기 힘든 큰 깍두기를 내 놓는다. 그러니 언제나 두 가지인 셈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오래전에 김치를 김치라 부르지 않고 “금치”라 불렀던 때가 있다. 그 때 대부분의 식당에선 배추김치 대신 다른 김치를 만들어 내놓았다. 배추 한 포기에 몇 천원씩 하던 때인데, 매일 김치를 담근다는건 파는 만큼 손해를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아니 요즘 같이 배추가 비싼 철엔 다른 김치를 내 놔도 뭐라는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다.”
“난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스스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반찬 하나 더 내놓는 것도 약속에 어긋나고, 다른 반찬을 내는 것도 약속에 어긋나요.”
그래서인지 이 집의 김치 맛은 별나다. 그만큼 맛있다는 얘기다. 예전에 자취할 때 아쉬운 소릴 하면 한통씩 퍼주곤 하던 그런 김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김치가 굉장히 빨간데도 그리 맵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잘 먹으니 말이다. 그 답은 이렇다. 김치 맛도 어느 한 부류 사람들에게 맞출 수 없어서 매운 맛과 단 맛이 나는 고추를 계약 재배해서 최상의 것을 쓴다. 그러니 맛이 없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이 집 칼국수 맛의 비결은 또 하나 있다. 다른 아닌 “나눔의 실천 ”이다. “장사해서 번 돈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쓰는 것은 옳지 않다. 나눠야 한다.”그런 나눔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사돈의 팔촌까지 대소사의 어려움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복지기관, 종교기관에도 나눔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는 나누었다는 생각이 없다. “우리 집에 오신 손님들이 부탁한 일을 대신 할 뿐이다”라는 게 태백 칼국수 오상해 사장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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