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얘야, 참 맑은 눈을 가졌구나

자작나무숲이이원 2004. 10. 18. 14:42

얘야, 참 맑은 눈을 가졌구나



노을이 비껴가는 가을 오후, 동산선원(東山禪院)에 구릿빛 얼굴에 소위 계급장을 단 건장한 청년이 찾아와 원장 할머님을 찾았다. 그가 찾는 원장 할머님은 공타원 조전권 교무님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미 열반에 드신 원장 할머님을 뵐 수가 없었다. 그 소식에 청년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교무님들이 달래보아도 그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한참을 운 뒤에 그 청년이 말한 울음의 연유는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따스한 감동이었다.

“열 예닐곱 나이에 집안 형편이 워낙 가난하여 세끼 밥은 고사하고 희멀건 죽이나마 한 끼 얻어먹은 날은 행복한 날이었답니다. 이런 가난이 싫어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녔죠. 그 당시 동산선원에 널린 빨래며, 신발 등도 훔칠 물건들 중 하나였는데, 훔치다 들켜 다른 교무님께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뿐, 또 다시 물건을 훔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원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다가 원장 할머님과 두 눈을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도망가려 했지만 발이 웬일인지 발이 떨어지질 않아 원장 할머님 방까지 따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잔뜩 꾸중 들을 생각에 주눅이 들어있는데, 과자와 과일을 내어주시며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얘야, 참 맑은 눈을 가졌구나. 그런데 어쩌다보니 나쁜 일을 저지른 거구나. 맑은 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자. 알았지?’ 이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온 몸에 짜르르하게 전기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모님께도 늘 꾸중만 듣던 천덕꾸러기였는데, 어쩌면 태어나 처음 듣는 칭찬이었을 게다. 집에 돌아와 자신을 되돌아보던 어린 소년은 그 뒤, 신문배달과 구두닦이 등으로 돈을 벌어 야간 학교를 다니다가 군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다. 장교가 되어 오늘날 자기 모습을 둘러보니 모두 원장 할머님의 칭찬 한 마디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다. 첫 휴가를 얻어 제일 먼저 찾은 분이 원장 할머님이었는데, 그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눈물이 났다는 것이다.

“당신은 참 맑은 눈을 가지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