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1204) - 모든 일에는 준비가 있어야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12. 4. 00:03
오늘 그린 풍경화 - 모든 일에는 준비가 있어야






영광에서 볼일을 마치고 장성으로 넘어오는 길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밤재를 넘는데, 내리막길 한 옆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듭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부부가 자동차가 고장이 났는지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해 하시며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전화를 하고 싶어도 손전화도 없고 손을 들어도 누구하나 쉽게 차를 세워주지 않으니 벌써 한 시간여를 그러고 계신 상황이었습니다.

얼마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는 영광에서 광주로 나가는데 오늘과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도움을 드려야겠다 싶어 차를 세웠습니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배터리가 약하여 시동이 걸리지 않는데 연결선이 없는 겁니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준비가 없으니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겁니다. 미안한 마음만 전하고 길을 떠나며,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자동차 용품점에 가서 연결 점프선과 휴즈 등 자동차 비상용품을 샀습니다.

오늘 고장난 차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배터리가 약하여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얼른 차를 가까이 대고 배터리끼리 연결하여 시동을 걸었더니 쉽게 시동이 걸렸습니다. 추운 날씨에 곱았던 어르신의 손이 펴지고 부부의 얼굴엔 멋지게 살아오신 인생의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극구 사례를 하시겠다며 지갑을 꺼내십니다. 물론 받지 않았지요. 그러면서 제가 그랬지요. 제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더니 당신도 내일 당장 점프선과 휴즈 등 자동차 비상용품을 사시겠다며 머리를 긁적이셨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드렸지요.

"제게 사례를 하시면 우리 둘 사이의 관계로 끝나지만, 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오늘과 같은 은혜를 전하고, 어르신도 남에게 도움을 주시면 은혜는 계속 흐르지 않을까요."

어르신께 설교(?)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지만, 꼭 그러시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계속하셨습니다. 준비가 없으면 도움을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작은 준비가 누군가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작은 준비가 세상을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2001년 12월 4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