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1126) - 바람의 섬 제주에서 신바람나다(終)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11. 26. 17:09
오늘 그린 풍경화 - 바람의 제주에서 신바람나다(終)
▣ 햇살 닮은 억새꽃밭 - 산굼부리
좀 늦잠을 잤습니다. 오늘은 제주 여행의 마지막날입니다. 친구가 준비한 아침을 먹고는 느긋하게 쉬려는데 친구가 성화를 부립니다. 제주까지 와서 그냥 쉬려느냐는 거지요. 그래서 '강추'받은 곳이 '산굼부리'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황홀한 햇살을 받을 수 있다는 부연설명과 함께요.
산굼부리 가는 길에 '신비의 도로'가 있습니다. 사실 마음에 두지 않고 출발하였는데, 갑자기 차가 밀립니다. '사고라도 났나'하고 밖을 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깡통이나 병들을 도로 위에 올려놓고 '과연 그런지'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착시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건 상관없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현상 앞에 호기심이 일어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경사가 낮은 곳이 높게 보이는데 내 차가 그 길에 접어들자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워보았습니다. 아래로 내려갈 것 같은 차가 서서히 뒷걸음을 칩니다. 바쁜 길이라 서두르긴 했지만 신기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좁은 길이라 그냥 지나칠 차들을 위해서 약간의 우회도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조금 더 달려가는데 '제주마 방목지'라는 간판이 눈에 띕니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조랑말들의 모습이 너무도 평화롭습니다. 임꺽정이 제주도에 와서 야생의 말 한 필을 부리며 맘껏 달렸을 그 탁 트인 초원지대는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듯 푹신하고 한라산을 떠돌던 구름이 초록 융단 위로 살짝 걸립니다.
가까이서 함께 할 수 있다길래 방목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왜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한라산 중턱의 초원지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적당히 높낮이를 보이고 있는 오름들이 그들을 강하게 좀 더 강하게 만든 원인이라 생각되어졌습니다. 말을 타고 스릴을 만끽하고 싶었으나 내 몸무게(?)를 생각하여 그만 두고, 목책 바깥으로 나와 풀을 뜯어 말들에게 주었더니 히힝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도 좋습니다.
산굼부리에 도착했습니다. 성문이 먼저 나와 반깁니다. 햇살이 스치다가 사선으로 내려그은 그림자가 성벽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 다음 우리를 반긴 건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발자국입니다. 나무판으로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올라가자 내 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억새꽃밭이 넘실넘실 은빛 바다를 만들고 있습니다. 산굼부리는 움푹 패인 커다란 구멍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비가와도 분화구에는 물이 고이지 않고, 그 대신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씻어 갊아두고 있습니다.
꼭대기에 소풍을 온 아이들이 김밥을 먹고 있는데, 얼마나 먹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다가가 "누가 아저씨 김밥 하나 줄래" 했더니 처음 보는 낯선 아저씨인데도 서로 김밥을 건넵니다. 천진한 하늘사람들에게 김밥 몇 개 얻어먹었더니 푹 꺼졌던 배가 제주의 오름처럼 솟아오릅니다.
억새꽃이 햇살에 하늘거립니다. 억새꽃은 햇살의 방향에 따라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바람에 몸을 맡기지만 절대 꺾이지 않고 흔들흔들 가을의 춤을 춥니다. 억새꽃밭 곳곳에 잎새 누운 그늘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써놓고 간 사랑의 시어들이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조금 진한 포즈를 취하는 신혼부부들도 있지만 모두가 웃음으로 보아줄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숫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부럽기 때문입니다. 가위바위보를 하며 산굼부리를 내려오는데 아내에게 졌습니다. 행복의 은빛 바람이 등뒤에서 불어옵니다.
▣ 이끼 낀 산그늘에서 햇살 청하기 - 비자림
오후 네 시 비행기라 바쁜 마음이었지만 비자림은 욕심을 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이번 2박 3일동안의 제주여행을 조용히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도 났구요. 단순림으로는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한다지만 그것보다는 울울창창한 숲길을 걷는 재미가 너무 쏠쏠합니다.
아내와 함께 숲으로 난 좁은 길을 걸으며 해살한 웃음을 얇게 펴발랐습니다. 숲길을 걷는 한 일행이 우리 부부를 알아봅니다. 난 사실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말입니다. 기억하지 못해 죄송하다 말하고 고운 눈웃음을 던지고는 좀 더 작은 숲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얼굴에 거미줄이 걸리고 길은 고르지 않아 힘들었지만 비자나무 향내는 온 몸의 세포를 흔들어 깨웁니다. 흐린 핏줄기를 맑게 정화하며 어색한 음색으로 들려오던 몸의 리듬도 제자리를 찾는 듯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비자림에는 비자나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름표가 붙어있기도 했지만 내가 이름을 아는 나무도 몇 종은 있습니다. 자귀나무는 아직 깃털같은 분홍꽃을 매달고 있고, 후박나무는 그 너른 이파리들을 노랗게 물들이는 중입니다.
사실 비자림을 제대로 둘러보자면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는데, 비행기 시간에 쫓겨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침 이른 시간, 햇살이 마악 떠오르는 시간이나 안개가 살풋 낀 날이라면 더욱 근사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이끼가 낀 비지나무 산그늘에서 햇살을 청하는데 이파리 사이로 가는 빗살무늬처럼 쏟아지는 기쁨이 갈비뼈처럼 내 가슴에 꽂힙니다.
▣ 삶의 활력 초록빛 제주바다 - 돌아오는 길
문화는 사람들이 삶 속에서 유형 무형의 형태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제주의 환경과 문화도 제주사람들의 오랜 삶과 세월의 부대낌속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아주 짧은 2박 3일 동안 둘러본 걸 가지고 주제넘게 너무 많이 내뱉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행은 '눈빛에 담아와 가슴에 쌓아두고 풀어쓰는 자양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짧지 않은 글을 쓴 것은 제주를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앞서 말한 '살아가면서 풀어쓸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위에 다 적지 않은 여러 곳을 다녀왔지만 제주에서 담아온 기억의 기쁨이 너무 커 눈빛에 담아온대로 마음밭에 켜켜이 쌓아두렵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관광 명승지들이 있지만 내 발로 밟지 않은 곳이라 아무 얘기도 쓰지 않았습니다.
고등어 한 상자와 해산물 약간을 구입한 뒤, 점심은 김밥으로 대신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신제주에 사는 친구와 서귀포에 사는 친구부인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져서 미안함 가득하지만, 언제 뭍에 나오면 근사한 시간을 보내야죠.
제주에 오면서 밀린 일을 해야겠다고 가져온 노트북은 그냥 짐으로 되가지고 왔습니다. 여행은 욕심으로 하는게 아니란게 분명해진거죠.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보는 제주 바다가 어슴한 안개가 설핏 낀 초록빛으로 반짝이며 살아갈 앞날의 희망이 됩니다.
2001년 11월 27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 햇살 닮은 억새꽃밭 - 산굼부리
좀 늦잠을 잤습니다. 오늘은 제주 여행의 마지막날입니다. 친구가 준비한 아침을 먹고는 느긋하게 쉬려는데 친구가 성화를 부립니다. 제주까지 와서 그냥 쉬려느냐는 거지요. 그래서 '강추'받은 곳이 '산굼부리'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황홀한 햇살을 받을 수 있다는 부연설명과 함께요.
산굼부리 가는 길에 '신비의 도로'가 있습니다. 사실 마음에 두지 않고 출발하였는데, 갑자기 차가 밀립니다. '사고라도 났나'하고 밖을 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깡통이나 병들을 도로 위에 올려놓고 '과연 그런지'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착시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건 상관없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현상 앞에 호기심이 일어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경사가 낮은 곳이 높게 보이는데 내 차가 그 길에 접어들자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워보았습니다. 아래로 내려갈 것 같은 차가 서서히 뒷걸음을 칩니다. 바쁜 길이라 서두르긴 했지만 신기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좁은 길이라 그냥 지나칠 차들을 위해서 약간의 우회도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조금 더 달려가는데 '제주마 방목지'라는 간판이 눈에 띕니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조랑말들의 모습이 너무도 평화롭습니다. 임꺽정이 제주도에 와서 야생의 말 한 필을 부리며 맘껏 달렸을 그 탁 트인 초원지대는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듯 푹신하고 한라산을 떠돌던 구름이 초록 융단 위로 살짝 걸립니다.
가까이서 함께 할 수 있다길래 방목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왜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한라산 중턱의 초원지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적당히 높낮이를 보이고 있는 오름들이 그들을 강하게 좀 더 강하게 만든 원인이라 생각되어졌습니다. 말을 타고 스릴을 만끽하고 싶었으나 내 몸무게(?)를 생각하여 그만 두고, 목책 바깥으로 나와 풀을 뜯어 말들에게 주었더니 히힝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도 좋습니다.
산굼부리에 도착했습니다. 성문이 먼저 나와 반깁니다. 햇살이 스치다가 사선으로 내려그은 그림자가 성벽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 다음 우리를 반긴 건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발자국입니다. 나무판으로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올라가자 내 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억새꽃밭이 넘실넘실 은빛 바다를 만들고 있습니다. 산굼부리는 움푹 패인 커다란 구멍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비가와도 분화구에는 물이 고이지 않고, 그 대신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씻어 갊아두고 있습니다.
꼭대기에 소풍을 온 아이들이 김밥을 먹고 있는데, 얼마나 먹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다가가 "누가 아저씨 김밥 하나 줄래" 했더니 처음 보는 낯선 아저씨인데도 서로 김밥을 건넵니다. 천진한 하늘사람들에게 김밥 몇 개 얻어먹었더니 푹 꺼졌던 배가 제주의 오름처럼 솟아오릅니다.
억새꽃이 햇살에 하늘거립니다. 억새꽃은 햇살의 방향에 따라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바람에 몸을 맡기지만 절대 꺾이지 않고 흔들흔들 가을의 춤을 춥니다. 억새꽃밭 곳곳에 잎새 누운 그늘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써놓고 간 사랑의 시어들이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조금 진한 포즈를 취하는 신혼부부들도 있지만 모두가 웃음으로 보아줄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숫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부럽기 때문입니다. 가위바위보를 하며 산굼부리를 내려오는데 아내에게 졌습니다. 행복의 은빛 바람이 등뒤에서 불어옵니다.
▣ 이끼 낀 산그늘에서 햇살 청하기 - 비자림
오후 네 시 비행기라 바쁜 마음이었지만 비자림은 욕심을 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이번 2박 3일동안의 제주여행을 조용히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도 났구요. 단순림으로는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한다지만 그것보다는 울울창창한 숲길을 걷는 재미가 너무 쏠쏠합니다.
아내와 함께 숲으로 난 좁은 길을 걸으며 해살한 웃음을 얇게 펴발랐습니다. 숲길을 걷는 한 일행이 우리 부부를 알아봅니다. 난 사실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말입니다. 기억하지 못해 죄송하다 말하고 고운 눈웃음을 던지고는 좀 더 작은 숲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얼굴에 거미줄이 걸리고 길은 고르지 않아 힘들었지만 비자나무 향내는 온 몸의 세포를 흔들어 깨웁니다. 흐린 핏줄기를 맑게 정화하며 어색한 음색으로 들려오던 몸의 리듬도 제자리를 찾는 듯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비자림에는 비자나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름표가 붙어있기도 했지만 내가 이름을 아는 나무도 몇 종은 있습니다. 자귀나무는 아직 깃털같은 분홍꽃을 매달고 있고, 후박나무는 그 너른 이파리들을 노랗게 물들이는 중입니다.
사실 비자림을 제대로 둘러보자면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는데, 비행기 시간에 쫓겨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침 이른 시간, 햇살이 마악 떠오르는 시간이나 안개가 살풋 낀 날이라면 더욱 근사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이끼가 낀 비지나무 산그늘에서 햇살을 청하는데 이파리 사이로 가는 빗살무늬처럼 쏟아지는 기쁨이 갈비뼈처럼 내 가슴에 꽂힙니다.
▣ 삶의 활력 초록빛 제주바다 - 돌아오는 길
문화는 사람들이 삶 속에서 유형 무형의 형태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제주의 환경과 문화도 제주사람들의 오랜 삶과 세월의 부대낌속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아주 짧은 2박 3일 동안 둘러본 걸 가지고 주제넘게 너무 많이 내뱉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행은 '눈빛에 담아와 가슴에 쌓아두고 풀어쓰는 자양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짧지 않은 글을 쓴 것은 제주를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앞서 말한 '살아가면서 풀어쓸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위에 다 적지 않은 여러 곳을 다녀왔지만 제주에서 담아온 기억의 기쁨이 너무 커 눈빛에 담아온대로 마음밭에 켜켜이 쌓아두렵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관광 명승지들이 있지만 내 발로 밟지 않은 곳이라 아무 얘기도 쓰지 않았습니다.
고등어 한 상자와 해산물 약간을 구입한 뒤, 점심은 김밥으로 대신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신제주에 사는 친구와 서귀포에 사는 친구부인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져서 미안함 가득하지만, 언제 뭍에 나오면 근사한 시간을 보내야죠.
제주에 오면서 밀린 일을 해야겠다고 가져온 노트북은 그냥 짐으로 되가지고 왔습니다. 여행은 욕심으로 하는게 아니란게 분명해진거죠.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보는 제주 바다가 어슴한 안개가 설핏 낀 초록빛으로 반짝이며 살아갈 앞날의 희망이 됩니다.
2001년 11월 27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