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1110) - 새벽 바다에서 낚아올린 희망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11. 10. 20:23
오늘 그린 풍경화 - 새벽 바다에서 낚아 올린 희망
그 날의 일기예보는 맑았습니다. 초여름 햇살에 너붓너붓 자라는 풀꽃들이 저마다의 꽃 색과 향기를 준비하는 참 맑은 오후, 어쩌다 부는 바람에 터진 꽃 웃음이 새살거리는 동안 고성(경남 고성) 앞바다엔 남실대는 푸른 물결이 있었습니다.
“여보! 내일 새벽 날씨는 괜찮은가요?”
아내는 파, 부추, 깻잎, 마늘 등 온갖 야채를 정성스레 다듬으며 남편에게 묻습니다.
“그래, 내일은 잔잔하다는구만. 어제처럼 비라도 내리면 멸치를 못잡을건데 다행이야.”
남편은 어구를 챙기고 횟감을 마련할 칼날도 무뎌지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출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고성에 사는 씨와 씨 사이에는 태어난 지 두 돌 지난 영석이가 있습니다. 부부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표정이 참 맑습니다. 얼굴에 푸른 빛이 가시고 발그레한 살빛이 피었습니다. 두 돌이 지났지만 영석이는 몸무게가 10키로 조금 넘습니다. 아직은 엄마품에서 파닥이는 어린새처럼 약한 모습이지만 머지않아 저 푸른 바다와 친구하며 뛰놀 아이입니다. 영석이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수술한 아이입니다.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잘 되어 회복되는 중입니다.
남편이 같은 동네에 사는 어머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 내일 새벽에 집에 좀 오셔서 영석이 좀 봐 주세요.”
영석이의 할머님은 처음 얻는 손자라 온갖 사랑을 다 해 주고 싶었지만, 태어나자마자 병원 신세를 지고 큰 수술을 받아서 엄마 품에서 조금도 떠나지 않으려는데, 수술 마치고 근 한 달동안 매일 어르고 보았더니 요새 들어 할머니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연 듯 해살거리는 웃음을 전해 줍니다.
“그래 알았다. 좀 있다 건너가마.”
밤 하늘에 별들이 수런거리며 바다를 잠재우고 있습니다. 사실 낮에 심한 장난을 치던 파도들이 내일 새벽까지 장난을 쉬지 않으려하자, 별님들이 나선 것입니다. 내일 새벽 바다에서 영석이 부모님이 희망을 낚아 올릴 때까지는 고요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답니다. 사실 며칠동안 장난에 기운에 빠진 파도들도 내일은 좀 쉬자고 휴전을 제의해 논 상태이긴 했지만, 한 번 시작된 장난을 쉽게 그치는 법이 없었거든요. 별님의 청을 핑계로 내일은 맑은 하늘, 잔잔한 바다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영석이 엄마 아빠가 가지고 있는 배는 돈을 주고 빌린 배입니다. 아직은 배를 마련할 형편이 못되기 때문이죠. 그동안 아이 때문에 많은 돈이 들어가고 수술은 엄두도 못내었는데, 대학생들이 자전거로 전국을 순례하며 모금한 돈으로 영석이가 수술을 받아 건강을 되찾게 된 겁니다. 오늘은 그 대학생들이 고성에 들르는 날입니다.
새벽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유난히 반짝이는 새벽별들이 안간 힘을 쓰며 모으는 빛살들이 검은 빛 바다에 촘촘히 박히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멸치회를 대학생들이 좋아할지 어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영석이 엄마 아빠가 그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곰곰 생각하다가 고성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멸치회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고성에 도착하는 시간이 12시라고 들었습니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배부르게 멸치회를 먹게 하려면 적어도 한 양동이의 멸치를 잡아 회로 떠야 했습니다. 멸치는 쉽게 잡혔지만 회로 뜨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부부가 정성스레 손을 놀려 회로 뜬 멸치를 얼음 위에 올려서 살짝 얼려 꾸득거리게 한 뒤, 부지런히 배를 몰았습니다. 영석이 부모님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 한 양동이 가까이 멸치회가 준비되었습니다.
11시가 가까워옵니다. 아내는 준비해간 각종 야채와 양념을 넣고 멸치회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회로 먹기는 어려운 생선으로 바다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회입니다.
저 멀리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영석이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구릿빛 보다도 더 까맣게 타서 알아보기가 어려웠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있었습니다. 그 대학생들을 후원하는 분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영석이 부모님이 준비해 간 멸치회도 상 한 가운데 푸짐하게 올려졌습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영석이 아버님이 주위 사람들의 청에 못 이겨 한마디 했습니다.
“전 영석이가 심장병이라는 진단을 받자 세상이 살기 싫어졌습니다. 다행히 여러분을 만나 영석이가 수술을 받게 되고 저희 부부는 희망을 찾았습니다.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거죠. 영석이는 지금 얼굴에 젖살이 올라 포동포동해졌습니다. 모두 여러분 덕택입니다. 여러분이 오신다기에 새벽에 바다에 나가 저희 부부가 작으나마 정성을 다해 준비한 것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 멸치회는 모두의 소망으로 이루어진 맛이었습니다. 그 맛은 바로 희망이 되어 세상을 맑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난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은 내 욕심껏 멸치회를 먹었습니다. 그 날을 추억하는 오늘도 그 입맛이 생각납니다.
2001년 11월 10일
자작나무숲.
덧붙임 : 대학 3학년 때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방학기간을 이용해 전국을 순례하며 성금을 모금하여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위에 쓴 얘기는 그 때 경남 고성의 한 부부가 마련한 멸치회를 맛있게 먹고 그 멸치회의 준비 과정 얘기를 전해 듣고 기억을 되살려 쓴 글입니다.
그 날의 일기예보는 맑았습니다. 초여름 햇살에 너붓너붓 자라는 풀꽃들이 저마다의 꽃 색과 향기를 준비하는 참 맑은 오후, 어쩌다 부는 바람에 터진 꽃 웃음이 새살거리는 동안 고성(경남 고성) 앞바다엔 남실대는 푸른 물결이 있었습니다.
“여보! 내일 새벽 날씨는 괜찮은가요?”
아내는 파, 부추, 깻잎, 마늘 등 온갖 야채를 정성스레 다듬으며 남편에게 묻습니다.
“그래, 내일은 잔잔하다는구만. 어제처럼 비라도 내리면 멸치를 못잡을건데 다행이야.”
남편은 어구를 챙기고 횟감을 마련할 칼날도 무뎌지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출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고성에 사는 씨와 씨 사이에는 태어난 지 두 돌 지난 영석이가 있습니다. 부부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표정이 참 맑습니다. 얼굴에 푸른 빛이 가시고 발그레한 살빛이 피었습니다. 두 돌이 지났지만 영석이는 몸무게가 10키로 조금 넘습니다. 아직은 엄마품에서 파닥이는 어린새처럼 약한 모습이지만 머지않아 저 푸른 바다와 친구하며 뛰놀 아이입니다. 영석이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수술한 아이입니다.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잘 되어 회복되는 중입니다.
남편이 같은 동네에 사는 어머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 내일 새벽에 집에 좀 오셔서 영석이 좀 봐 주세요.”
영석이의 할머님은 처음 얻는 손자라 온갖 사랑을 다 해 주고 싶었지만, 태어나자마자 병원 신세를 지고 큰 수술을 받아서 엄마 품에서 조금도 떠나지 않으려는데, 수술 마치고 근 한 달동안 매일 어르고 보았더니 요새 들어 할머니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연 듯 해살거리는 웃음을 전해 줍니다.
“그래 알았다. 좀 있다 건너가마.”
밤 하늘에 별들이 수런거리며 바다를 잠재우고 있습니다. 사실 낮에 심한 장난을 치던 파도들이 내일 새벽까지 장난을 쉬지 않으려하자, 별님들이 나선 것입니다. 내일 새벽 바다에서 영석이 부모님이 희망을 낚아 올릴 때까지는 고요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답니다. 사실 며칠동안 장난에 기운에 빠진 파도들도 내일은 좀 쉬자고 휴전을 제의해 논 상태이긴 했지만, 한 번 시작된 장난을 쉽게 그치는 법이 없었거든요. 별님의 청을 핑계로 내일은 맑은 하늘, 잔잔한 바다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영석이 엄마 아빠가 가지고 있는 배는 돈을 주고 빌린 배입니다. 아직은 배를 마련할 형편이 못되기 때문이죠. 그동안 아이 때문에 많은 돈이 들어가고 수술은 엄두도 못내었는데, 대학생들이 자전거로 전국을 순례하며 모금한 돈으로 영석이가 수술을 받아 건강을 되찾게 된 겁니다. 오늘은 그 대학생들이 고성에 들르는 날입니다.
새벽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유난히 반짝이는 새벽별들이 안간 힘을 쓰며 모으는 빛살들이 검은 빛 바다에 촘촘히 박히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멸치회를 대학생들이 좋아할지 어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영석이 엄마 아빠가 그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곰곰 생각하다가 고성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멸치회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고성에 도착하는 시간이 12시라고 들었습니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배부르게 멸치회를 먹게 하려면 적어도 한 양동이의 멸치를 잡아 회로 떠야 했습니다. 멸치는 쉽게 잡혔지만 회로 뜨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부부가 정성스레 손을 놀려 회로 뜬 멸치를 얼음 위에 올려서 살짝 얼려 꾸득거리게 한 뒤, 부지런히 배를 몰았습니다. 영석이 부모님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 한 양동이 가까이 멸치회가 준비되었습니다.
11시가 가까워옵니다. 아내는 준비해간 각종 야채와 양념을 넣고 멸치회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회로 먹기는 어려운 생선으로 바다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회입니다.
저 멀리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영석이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구릿빛 보다도 더 까맣게 타서 알아보기가 어려웠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있었습니다. 그 대학생들을 후원하는 분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영석이 부모님이 준비해 간 멸치회도 상 한 가운데 푸짐하게 올려졌습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영석이 아버님이 주위 사람들의 청에 못 이겨 한마디 했습니다.
“전 영석이가 심장병이라는 진단을 받자 세상이 살기 싫어졌습니다. 다행히 여러분을 만나 영석이가 수술을 받게 되고 저희 부부는 희망을 찾았습니다.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거죠. 영석이는 지금 얼굴에 젖살이 올라 포동포동해졌습니다. 모두 여러분 덕택입니다. 여러분이 오신다기에 새벽에 바다에 나가 저희 부부가 작으나마 정성을 다해 준비한 것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 멸치회는 모두의 소망으로 이루어진 맛이었습니다. 그 맛은 바로 희망이 되어 세상을 맑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난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은 내 욕심껏 멸치회를 먹었습니다. 그 날을 추억하는 오늘도 그 입맛이 생각납니다.
2001년 11월 10일
자작나무숲.
덧붙임 : 대학 3학년 때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방학기간을 이용해 전국을 순례하며 성금을 모금하여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위에 쓴 얘기는 그 때 경남 고성의 한 부부가 마련한 멸치회를 맛있게 먹고 그 멸치회의 준비 과정 얘기를 전해 듣고 기억을 되살려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