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1030) - 자유와 테러

자작나무숲이이원 2001. 10. 31. 15:31
오늘 그린 풍경화 - 자유와 테러






▣ 형제만 다섯인 우리 가족

할아버지께서 대처에 나가 사는 자식들을 모두 볼 수 있는 때는 명절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친손자나 외손자들 중에 한 명은 시골 조부모님댁에서 살아야 하는 가족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한학을 하신 할아버님은 워낙 성격이 꼿꼿하신 분이어서 손자들은 한 6개월이나 1년을 지내기가 어려웠답니다. 그런 제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으니 제 성격도 어지간하긴 한가봅니다.

할아버님은 모두 3남 3녀의 여섯 자녀를 두셨는데, 그 중에 아버님은 위로 누님 두분과 형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아버님은 자식 욕심이 있었는지, 모두 다섯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들만 다섯이었습니다. 남자 여섯에 여자 한 명인 가족, 아마 상상이 갈겁니다. 하지만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었고 지금 생각에도 동네에서 누가 쉽게 건드리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난 그 중에 셋째입니다. 위로 형님이 두 분 계시고, 동생도 둘이 있습니다.
지금 나이가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인 그야말로 대단한 형제들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사내 아이들이 어려서 가장 재미있어 하는 놀이는 뭐니뭐니 해도 '축구'였습니다.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 공을 들고 나가면 아이들은 모두 공주위로 몰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덩치가 컸던 저는 형제들 중에서도 그 공을 차지하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동생들은 어떻게 해 보겠는데 형님들은 내겐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축구를 해도 또래아이들끼리 했기 때문에 공을 먼저 차지하지 않으면 별로 놀게 없었습니다.

형들이 공을 차지하면 밑의 두 동생은 일찌감치 포길하는데, 전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을 달라고 갖은 때를 다 쓰는 겁니다. 울며 불며 매달리면 어쩌다가 한 번은 귀찮은 듯 포기를 하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지 자주 쓰면 약발이 먹히질 않습니다. 그 다음 방법이 공을 미리 감추는 방법인데, 이 방법도 처음 한 두 번 먹히는 방법이고 점점 숨기는 반경이 커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형들도 집요해지고 자꾸 때리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방법이 사실 치졸하기는 하지만 무기(?)를 쓰는 것입니다. 어쩌다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면 큰 형님은 왼쪽 허벅다리의 깊게 패인 상처를 내게 보여주곤 합니다. 공을 주지 않으면 공을 찢어버리겠다고 칼을 들고 설치다가 그만 형님 다리에 깊은 상처를 내고 만 겁니다. 그 때 아마 성질 급하신 아버님께 엄청 맞은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공에 대한 저의 집착은 쉽게 놓아지는게 아니었습니다. 벽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 오기가 생기고 더 교묘하고 집요한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골 할아버님 댁에서 지내다 어쩌다 집에 오는 나를 위한 형제들의 배려였나 봅니다. 공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형제들간의 싸움은 그치질 않았습니다.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지만 형제만 다섯인 우리의 싸움은 어느 때는 거의 사생결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형제가 싸움을 그만 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형님들이 양보하는 거고, 둘은 동생들이 형님들을 위해 드리는 겁니다. 공 때문에 싸우게 되면 형님들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나가서 놀아라."
동생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이 가지고 노세요."
이런 말이 오가면서 차례를 배우고 양보하는 미덕과 형제애 같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런 형제들이 모두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나만 아이가 셋이고.

▣ 자유와 테러

세상에는 세상을 구분짓는 여러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 가운데 '강(强)'과 '약(弱)'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이기는 것은 강이고, 지는 것이 약입니다. 이 강약을 나라에 대비하면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고, 사람에게 대비하면 강자와 약자가 있습니다. 지금 미국과 아프카니스탄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지켜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난 이 전쟁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려고 참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에 대한 공부도 했고, 미국의 자유주의와 테러에 대해서도 수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자라오면서 지금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강과 약을 사람에 대비시켜 봅니다. 강자와 약자로 나누어보면 강자는 약자로 인하여 강의 목적을 이루게 되고, 약자는 강자로 인하여 강을 얻는 까닭에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하여 살지만, 친하고 친하지 않는 관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진리 가운데 영원한 강과 영원한 약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강자가 되는 방법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강을 베풀 때에 나로 이롭고 상대도 이롭게 하는 방법을 써서 약자를 강자로 진화시키는 것이 영원한 강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약자가 강자가 되는 방법은 강자를 선도자로 삼아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약자의 자리에서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다시 없는 강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강자가 강자의 노릇을 할 때에 어떻게 해야 이 강이 영원한 강이 되고 어떻게 해야 이 강이 변하여 약이 되는 것인지 생각없이 '나만 이롭고 상대는 해롭게 하는'데에만 그치고 보면 아무리 강자라도 약자가 되는 것입니다. 약자도 어떻게 해야 약자가 변하여 강자가 되고 어떻게 해야 강자가 변하여 약자가 되는 것인지 생각없이 다만 강자에게 대항하려고만 하고 약자가 강자로 진화되는 이치를 알지 못한다면 영원한 약자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강자이며 강대국입니다. 아프카니스탄은 약자이며 약소국입니다. 우선 멈추어야 합니다. 미국의 무차별 공습을 쉬고 아프카니스탄의 저항을 쉬어야 합니다. 전쟁은 끝없는 전쟁을 부르고 테러도 끝없는 테러를 부릅니다. 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테러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도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쉬는 방법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멈춘 다음에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번 테러와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이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를 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미국은 세계의 지도국으로 거듭나야 하고, 아프카니스탄은 국가 개발과 국민 계몽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둘은 '창조적인 긴장 관계'속에서 서로의 발전과 서로의 진급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자칫 이상적인 모습일 뿐,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내 생각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내 안에도 강과 약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내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테러를 멈출 수 있는 힘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있습니다. 전쟁을 멈출 수 있는 힘은 강대국에게 있습니다. 이번 테러와 전쟁은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뿐입니다.

테러와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명복을 빌며 어지러운 생각의 끝을 접으며, 그들이 저 먼 세상에서나마 알라의 뜻이든지 하나님의 뜻이든지 관계없이 서로 더불어 하나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2001년 10월 30일
자작나무숲 길에서.

*위에 말한 아프카니스탄은 그 전체를 말하는게 아니라 오사마 빈 라덴(하지만 이것도 분명치 않다. 만약 그가 이번 테러를 주도했다면)을 중심으로 하는 탈레반의 일부 극렬주의자를 말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