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127) - 참 맛있는 밥상

자작나무숲이이원 2003. 1. 27. 09:55
오늘 그린 풍경화 - 참 맛있는 밥상





천성이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미워하는 사람이 전혀 없지도 않습니다. 그 가운데 음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도 끼어 있습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까탈을 부리는 사람에겐 미운 마음도 나고 싫은 마음도 납니다.

모든 ‘먹는 일’은 혼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적당한 값을 치르고 사 먹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어느 식당은 또 가고 싶은 마음이 나지만 그렇지 않은 식당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먹는 일’이 양으로 먹고 질로 먹었지만 지금은 문화로 먹는 시대입니다. 일방적으로 차려진 음식은 몇 번 손이 가질 않습니다.

‘먹는 일’도 결국은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준비한 분은 ‘정성’을 나누고 먹는 사람은 ‘감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점심은 늘 대중식당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뷔페식으로 덜어먹는 곳인데 오늘은 평소와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소에도 음식을 바로바로 준비해주긴 하지만 국은 퍼온 대로 그대로 두었는데, 오늘은 가스렌지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또 다른 정성을 본 것입니다.

누가 쓴 글인지는 생각나진 않지만 ‘남편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방법은 미역도 잘 불리고 재료도 잘 넣어서 끓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멸치 조금 넣고 끓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역도 대충 씻어서 그냥 푹 끓여서 내 논답니다. 하지만 남편은 같은 미역국으로 알고 먹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웃고 지나쳤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습관을 지닌 남녀가 만나 결혼 생활을 하면 아무래도 익힌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음식 타박 하는 것도 결국은 습관이고 인격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전 아내에게 평생 음식 타박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어려울 것 같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늘 마음을 챙기면 가능한 일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 잠깐이라도 마음을 모아 내 앞에 놓인 이 음식이 천지자연의 혜택과 수많은 이웃과 가족의 노력의 결과로 내 생명을 보호하여 줌을 감사하고, 그 은혜를 갚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먹는다면 그 음식은 예사 음식이 아닐 것입니다. ‘먹는 일’은 아무리 하찮게 여겨도 우리 삶을 떠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소중한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의 밥상 뿐 아니라 마음의 밥상도 꼭 같다는 생각입니다. 결국은 삶이라는 밥상이니까요.

삶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조용히 마음을 불렀습니다. 조금은 우울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듯하여 오후 햇살에 마음을 살짝 꺼내놓고 말렸습니다. 조금씩 차오르는 기쁨과 희망으로 오늘의 밥상을 맛있게 비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건강만으로 삶의 밥상을 차리려고 합니다. 어쩌다 감당키 힘든 병이 찾아오면 어쩔 줄 모르고 헤매다가 삶의 밥상을 거르기 일쑤입니다. 가끔은 아픔도 데려다 잘 달래고 때론 혼내면서 삶의 밥상을 비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만으로 삶의 밥상을 차리려고 합니다. 사소한 다툼들로 그 사랑이 힘들어지면 마치 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듯 삶의 밥상을 거릅니다. 미움 속에서도 마음은 자라남을 깨닫고 다시 의연하게 밥상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쁨만으로 삶의 밥상을 차리려고 합니다. 슬픔도 나를 자라게 하는 눈물로 삶의 정화시키는 참 맛있는 밥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즐거움만으로 삶의 밥상을 차리려고 합니다. 괴로움도 나를 자라게 하는 정당한 괴로움도 있음을 알아 쓰디 쓴 삶의 밥상도 맛있게 비워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만남만으로 삶의 밥상을 차리려고 합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삶의 정칙이듯 이별도 함께 차려진 밥상을 받아들고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만으로 삶의 밥상을 차리려고 합니다. 마음 혼자서 존재할 수 없듯이 몸까지 함께 차려진 밥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좋고 긍정적인 것만으로 삶의 밥상을 차리려고 합니다. 나쁘고 부정적인 것들도 나를 자라게 하는 훌륭한 밥상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삶의 밥상을 앞에 두고도 편식하고 있지 않는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과 내 몸으로 짓는 모든 것들로 내일이라는 삶의 밥상을 차립니다.

똑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음식 맛이 천차만별이듯이 삶의 밥상을 차리기 위한 재료를 가지고 어떤 삶을 만들 것인가 요리법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은 잘 세워야 합니다.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맛있는 삶의 밥상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 하러 이 세상에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다음은 잘 돌려야 합니다. 삶의 밥상을 마련하기 위한 재료는 바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잘 돌려야 합니다. 아픔을 돌려 건강으로, 미움을 돌려 사랑으로, 슬픔을 돌려 기쁨으로, 괴로움을 돌려 즐거움으로, 헤어짐을 돌려 만남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그런 돌림의 밥상의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으려면 인내, 희망, 용기, 열정, 정성, 감사와 은혜를 골고루 뿌려 먹어야 합니다.

이 한 끼의 밥상이 내게는 넘치는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너무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