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805) - 사판(沙板)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8. 5. 00:16
오늘 그린 풍경화 - 사판(沙板)





할아버님은 땔감 준비를 위해 일꾼 몇을 얻었다. 나이는 어려도 한 덩치 실했던 난 어지간한 산판일의 잔심부름은 너끈했다. 베어내던 나무 가운데 기둥이 실하고 가지가 잘 뻗은 소나무는 따로 켜서 지게감이 되었다. 워낙 솜씨가 좋았던 할아버님이 만든 지게며 소쿠리 등 어지간한 살림살이는 산 것보다 더 좋았다. 손수 만들어 쓰신 할아버님께는 언제나 지게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끊이질 않았다. 정과 끌, 낫과 톱으로만 만드는 그 지게는 여간 튼튼한 게 아니었다.

서당에 다닌지 얼마되지 않은 날, 집에 돌아오자 할머님은 호박죽을 쑤고 계셨고, 할아버님은 소나무를 켜서 얇은 판자를 만들고 계셨다. 난 그게 뭐가 될지 퍽 궁금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손놀림이었기 때문이다. 그 판자가 뭐가 될지는 며칠이 지나도 알 수가 없었다. 평소와는 다른 꼼꼼하게 만드시는게 뭔가 값나는 것을 만드는가 보다, 생각만 하고 말았다.

만들기 시작한지 근 한달여가 지나서야 그냥 평범한 네모진 쟁반 모습이었다. 난 그저 집에서 쓰는 쟁반이겠거니 했다. 할아버님은 내 손을 이끌고 도내기(시골에 있는 개울가)로 가서 물가에 모여있는 모래톱에서 고운 모래를 담게 했다. 몇 번이고 고운 채에 거르고 함태골 물에 씻어서 그늘에 말렸다. 도대체 뭐에 쓸려고 그러시지.

그 쟁반과 모래가 준비되자, 할아버님이 불렀다. 거기에는 한 가지가 더 준비되어 있었다. 다름 아닌 탱자나무를 잘 다듬은 젓가락 비슷한게 열 댓 자루 있었다. 준비된 판자에 모래를 붓고는 몇 번 흔들자 모래가 고르게 퍼졌다. 그리고는 나무 막대로 글씨를 써 보이셨다. 모래위에 써지는 글씨는 반듯반듯하고 정확한 모습으로 써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글씨연습 도구였다. 그것의 이름이 "사판"이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옛 선비들이 돌위에 글씨를 쓰고 이파리에 글씨를 썼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모래판에 글씨를 썼다는 얘기도 듣도 보도 못했지만, 그것은 글씨연습도구라기 보다는 아주 재밌는 장난감이었다. 글씨만 쓸 수 있는게 아니라 그림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님의 사판을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몇 번을 썼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할아버님은 용케 글씨연습을 게을리 한 것을 알고 계셨다. 막대붓 끝이 닳아진 정도로 내 글씨 연습의 성실함을 점검하셨던 것이다. 나중에는 일부러 토방에다 벅벅 문질러서 한참을 닳게 한 후 글씨를 썼지만, 그것마저도 알고 계셨다. 그야말로 나는 요령만 피우는 사람이 되버린 것이다. 불호령이 무서워 제대로 글씨 연습을 했다.

사실 글씨 연습에 대한 직접적인 계기는 다른데 있었다. 내 외가는 한동네 걸음이었다. 심심하면 외가에 가서 밥을 먹고 오곤 했는데, 가끔씩 맛보는 갓 구운 파래김에 간장을 찍어먹는 맛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기사 요즘 먹는 김은 그런 맛이 나질 않는다. 외가의 벽에는 상장과 잘 쓴 습자 종이가 벽지를 대신해 붙어있는데, 어머님이 습자를 잘해서 받은 상장이었다. 우선 목표가 생겼다. 어머님처럼 글씨를 쓰리라. 그땐 요즘처럼 무슨 펜글씨교본 같은 걸 구해볼 수 없었다. 실은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창호지를 매서 만든 책에 훈장님이 써주신 글씨와 할아버님이 신문지에 써주시는 글씨가 체본이었다.

그렇게 닳아서 버린 나무붓이 수십자루가 넘었다. 연필로 쓰거나 붓으로 써봐도 제법 반듯한 글씨가 되었다. 동네에 소문난 명필하나 탄생한 것이다. 그때부터 동네 제사의 지방이며 편지대필, 명정(銘旌) 등을 도맡아 쓰고 다녔다. 아마 꾸준히 계속했으면 지금쯤은 대단한 명필이 되었을텐데, 할아버님은 글씨만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셨다. 글을 알지 못하고 글씨에만 빠지만 안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중학교땐 각종 서예대회에 나가 제법 상도 받았지만, 그 뒤로 오랜 기간 붓을 잡지 않았다. 그래도 어려서 길러진 필력이라 지금도 제법 반듯한 글씨라는 평을 듣는다.

요즘은 글씨의 대부분이 컴퓨터 앞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작 글씨는 제멋대로인 경우를 많이 본다. 분명 고칠 수 있는데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요즘은 교본도 많다. 건성으로 쓰지 않고 정성껏 다섯권만 쓴다면 제대로된 글씨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모항 바닷가 모래사장에 수많은 글씨를 써보았다. 어린 날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아이들에게 제법 큰 화이트 보드를 걸어주고 보드펜을 사주었다. 거의 난장판 수준이다. 할아버님처럼 '사판'을 만들어주진 못해도 아이들은 반듯한 글씨를 쓰길 바라는 아빠의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