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의 향 기▒

에구 못난 사람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7. 31. 10:23
에구 못난 사람





나를 보면 슬퍼지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 쉬운 사실을 여태 모르고 있었으니

멍청해도 어지간히 멍청한게 아닌가 보다.

멋적은 웃음 한자락 흘리고

슬픈 사람을 위로할 아무런 기쁨도 갖지 못하고

이 땅을 살아가고 있으나

별이 놀뎐 자리를 대신할 많은 꿈들이

유성되어 흐를 때 어쩔 수 없다고

흔들리다보면 잊을 수 있을까.

망설임도 없고 그저 바라는 것만으로

행복했어야 했는데 너무도 사랑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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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못난 사람.



★시작노트★

기숙사 생활을 하던 때의 일이다. 난 기숙사에서 조금은 별종으로 통했었다. 늘 너저분하게 늘어놓던 책이며 옷가지들로 인해 얻은 별명이었다. 가끔은 장을 봐다가 한솥가득 떡볶이를 하곤 했는데, 지금도 그맛을 잊지 않는 벗들이 있다.

아침 햇살이 길게 늘어진 날, 여 동창 하나가 마구 화를 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잘못한게 없는데, 하긴 나도 따라 화를 낼 수는 없고 듣고만 있는데, 이건 다름아닌 꿈 얘기다.

어젯밤 꿈에 내가 짐승을 잡아 그 내장을 자기에게 뿌리면서 못살게 굴었단다. 옆에 있던 친구가 왈, "야! 좋아하나본데.." 좋아하니 꿈에 나타난다는게 그 친구의 지론이었다. 그 말이 싫지는 않았지만 상대가 꾼 꿈으로 인해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으니 하루종일 이상하다.

난 아무 말도 않고 허허 웃고만 있었으니, 어지간히 못난 사람(?)인가 보다. 하기사 내 덩치의 반만한 여학생이 내게 대드니 콱 쥐어박을 수도 없고 웃을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잖은가.

그 친구가 얼마전 하와이에서 나왔다. 여전히 똘랑똘랑한 눈으로 세상 사람들 아픔을 보듬기 위해 살고 있다. 아침 햇살에 자는 이슬처럼 맑은 눈빛으로.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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