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717) - 함께 기뻐하는 마음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7. 18. 10:34
오늘 그린 풍경화 - 함께 기뻐하는 마음





해가 흐른다. 햇빛은 삼라만상을 하나 하나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대지의 모든 자리들도 어둠과 빛으로 나누지만 다투지는 않는다. 그 햇빛이 이끄는 길을 따라 며칠 전에 지인의 청에 못이기는 척하고 다녀온 곳이 전북 김제 청운사라는 절 집이다. 절 집의 아름다움도 여느 산사 못지 않지만, 백련으로 가득 찬 앞마당의 향기를 맡자고 해서이다.

처음 가는 낯선 길이다. 너른 김제평야에 넘실대는 벼들의 초록빛이 어찌나 진한지 스치기만 했는데도 내 온 몸과 마음에 초록이 넘친다. 좁다란 시골길을 한참을 에둘러서 가다보니 연향이 코끝에 스미고, 칠월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산그늘이 어찌나 의젓한지 완숙의 경지에 들어선 장인(匠人)의 손놀림처럼 부드러운 빛이다.

내 사는 곳이 지방도시이긴 하지만 바쁘게 살다보면 도심에서도 푹푹 찌는 한여름을 맞기 십상이다. 다행인 것은 내가 일하는 곳 가까이에 자그마하지만 숲이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피곤에 지친 듯 하면 얼른 그 숲으로 달려가 솔 향내에 취하여 산의 품에 안겨 잠든다. 나무들은 반갑다며 갖가지 향내를 만들고 바삐 바람을 불러 내게 가져다 준다. 그러면 난 힘이 난다.

함께 한 지인은 연신 감탄사다. 그 친구는 남이 잘하는 일에는 쌍수를 들어 박수치며, 마치 제가 한 일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 일을 누가 했건 이미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 일은 이미 스스로 한 일이다. 백련이 화사한 곳에서도 '누가 이런 곳에 연을 심었을까, 가꾸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고마워 고마워 너무 고마워'라며 말뿐이 아니라 온 몸으로 기뻐해준다.

내가 싫어하는 속담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내 마음이 기쁘다” “똥을 본 사람은 그 똥을 치워야 한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생각함’과 '더불어 삶'이라고 생각한다. 운전을 하면서 가지는 생각 하나가 ‘내가 하면 남도 한다’는 거다. 내가 횡단보도에서 멈추면 다른 차들도 멈추는 것을 본다. 하지만 내가 멈추지 않고 달리면 뒤를 따라오던 대부분의 차들도 따라 달린다.

아침에 길을 나서다 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내 마음과 얼굴을 살핀다. 어쩜 그리 얼굴에 웃음이 없는지, 무표정이라기 보다는 짜증내고 있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인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 중에도 아침 햇살을 닮은 하얀 웃음을 달고 가는 사람을 보면 난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그 사람에게 하루 종일 좋은 일만 가득하라고 말이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 내가 너무 좋아하는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절망과 좌절과 포기의 상황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짓는 죄 가운데 가장 무서운 죄라는 ‘살도음(殺盜淫)’을 저지른 사람도 희망이 있다면 참 사람으로서 온전한 삶의 명령, 생명을 이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이웃에 있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본다. 한 부류는 남이 잘 되는 꼴을 못보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다른 사람이 선을 베풀면 마치 제가 한 일인양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남이 베푸는 선에도 제일인양 기뻐하는 사람들에게는 향기가 난다. 마치 저 연꽃 방죽에서 피어나는 향내처럼 말이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지만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온다”는 말. 내 주위를 둘러봐도 향기를 풍기고 사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도 달라 보인다.

그 다름이 '웃음의 향기'이다. 늘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펴 바르고 다니는 사람들은 왠지 모를 편안함과 삶에 대한 희망의 언어를 전해준다. 이 웃음은 돈 들이지 않고 가장 쉽게 자기를 가꾸는 방법이면서 대인관계의 가장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오죽했으면 "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말이 있을까.

다른 하나는 '말씨의 향기'이다. 사실 난 날카롭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얼굴에 미소를 짓기 위해 노력하고 요즘엔 나름대로 편안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여전히 말에 있어서만은 날카롭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아직도 다듬어야 할 잡티가 많다는 뜻일게다. 내가 아는 선배님 한 분은 방송국에서 근무한다. 방송을 진행하니 그 말이 얼마나 부드러울까 싶지만 그 보다는 그분의 말씨에서 풍겨져 오는 따뜻함과 배려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더 말씨의 향기를 잘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사람의 향기라는게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그 향기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실천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즉, '실천의 향기'이다. 실천하지 않는 사람의 향기는 일시적이고 찰나적일 수 밖에 없다. 향기가 있다해도 오래가지 못하고 어쩌면 역한 향기를 풍길지도 모른다. '웃음' '말씨' '실천'은 남의 것이 아닌 바로 내 것이다. 바로 내가 향기를 만드는 주체라는 것이다. 남이 잘 하는 일에 함께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넘치는 웃음과 말씨와 실천을 마련하는 길임을 깨닫는 이 저녁이 너무 시원하다. 연향에도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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