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629) - 미래를 준비하는 두 길, 전망과 예언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6. 30. 00:27
오늘 그린 풍경화 - 미래를 준비하는 두 길, 전망과 예언





어려서부터 ‘커서 뭐가 될래?’라는 물음에 어김없이 ‘시인’이 되겠다고 대답했다. 할아버님은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셨다. 함께 시를 읊던 사랑방에서 지었던 시조 한편으로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을 뒤부터 생긴 세뇌된 습관이다. 시인이 되겠다던 마음 속 염원은 내 오랜 화두(話頭)였다.
너무도 불확실했던 내 미래의 한 길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짓고, 오랜 문학 소년의 길을 걸었다. 마약처럼 탐닉했던 문학의 길에서 수없이 쓰러졌다. 많은 좌절과 절망도 겪었지만, 끝내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가끔씩 스스로 되물어지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렇게 쓰러지고 일어서고 다시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내 길을 걸어왔다. 그것이 오늘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떠할까.

미래를 준비하는 길에는 전망(展望)과 예언(豫言)의 두 길이 있다. 물론 전망과 예언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풀이를 알고 싶은 건 아니다. 전망은 미래의 전제인 현재를 펼쳐서 바라보는 것이고, 예언은 미래를 미리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 나와 관계없는 일은 예언을 하고, 나와 직접 관계있는 일은 전망을 한다. 예언을 하면 우선은 나와 상관없는 일로 생각하여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구체적인 개입을 안 한다. 그러나 전망을 하면 미래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고 미리 노력한다.

이 전망과 예언은 시간적으로 가깝고 공간적으로 좁은 곳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멀고 공간적으로 넓은 곳에서는 많은 차이가 난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는 지금 여기, 나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파노라마 가운데, 시간적으로 멀고 공간적으로 넓은 곳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그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준비가 무엇인지를 바라보며, 생각머리의 몇 꼭지를 꺼내본다.

미래사회는 "앎의 시대"이다. 요즘은 정보가 없는 게 아니고 넘쳐서 탈이다. 없는 정보의 추측보다는 구체적으로 내가 아는 것이 참 가치가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앎을 구체적으로 프로그램 하는 능력이 우선된다. 미래 사회는 그 능력이 더욱 중시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앎’이 무엇인지를 아는 노력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난 관심 있는 영역이 문학 뿐 아니라, 동양철학, 교육, 인테리어, 꽃꽂이, 요리 등 참으로 다양하다. 처음 꽃꽂이에 관심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추측하게 된다. 내 머릿속에서는 멋진 작품이 그려지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아름다움의 모습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하지만 그 앎을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 꽃꽂이는 내 것이 된다.

미래사회는 "가치가 일치하는 시대"이다. 개인적인 삶보다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이 더욱 가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이다. 가치라는 말의 의미는 결국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가치가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너무 쉽게 변하는 가치관을 많이 본다. 도대체 저 사람의 가치관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고 변함없는 분명한 가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로 통일된 가치는 아니다. 내 나름대로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 사회는 경쟁을 통한 승리보다는 나만의 가치를 만드는 일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미래사회는 "리얼타임의 시대"이다. 생각과 실천, 결과와 분석이 동시에 가능한 시대이다. 순차적이고 단계적으로 무슨 일이 추진되는 것이 아니고 동시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부와 생활이 둘이 아닌, 바로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오래전에 철공과 관련된 밴딩, 드릴, 용접 등을 배웠다. 그리고 얼마 전에 철공 일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달랐다. 그 결과는 내가 알고 있던 기술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이 말은 결국 ‘배움’과 ‘활용’이 동시성을 띤다는 의미이다. 배움 따로 활용 따로 인 교육은 이미 교육이 아니다. 늘 배움을 쉬지 않아야 리얼타임이다.

미래사회는 "예방의 시대"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피지도인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고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일이 저질러졌다는 얘기이다. 유능한 지도자는 일의 기틀을 보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일하는 형세를 보아서 미리 큰 흐름의 줄기를 잡아주는 것이다. 고침의 시대에는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그 일을 회복할 수 있었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와 미래사회는 그 잘못이 쉽게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옛날엔 나 한 사람 잘못하면 많은 사람이 다치진 않았지만, 지금은 그 잘못이 수백 수천의 생명과 맞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리 막지 않으면 늦다. 항상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미래 사회의 지도자가 해야 할 역할이다.

미래사회는 "비약적인 도약의 시대"이다. 공부를 할 때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변하는 주위 사람의 경우를 너무 자주 본다.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한문 공부를 하는데 굉장히 더디고 능률이 오르지 않았는데, 그래도 꾸준하게 쉼 없이 계속했더니 어느 순간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부터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준비는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적용에 들어가서는 점진적이라는 말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사회는 변하고 있다.

무슨 일이나 십년을 작정하고 달려들면 스스로가 흐뭇해진다. 이십년을 작정하고 달려들면 남들이 알아준다. 삼십년을 작정하고 달려들면 하늘이 인정해준다. 이것이 진리이다. 전제만 분명하고 정당한 일이라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리고 미래사회를 맑고 밝게 만드는 청량제 역할을 할 것이다.

내게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다만 미래를 전망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내가 준비해야할 꺼리들을 챙겨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빠름’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유연함은 늘 가지면서 ‘느림’과의 중도를 찾고 있다. 난 오늘도 이렇게 세상을 보고, 미래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