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625) - 월드컵을 읽는 몇 가지 코드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6. 26. 00:17
오늘 그린 풍경화 - 월드컵을 읽는 몇 가지 코드






■ 우리는 이겼다!!!!

이렇게 감동해 본 적이 있던가. 이렇게 하나 되어 소리 높여 코리아를 외쳐본 적이 있던가. 단연코 없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보면서 목 놓아 외친 대한민국이, 우리 모두의 구호가 된 것은 단언컨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의 희망은, 가슴 졸이며 기대했던 소망은 월드컵에서의 첫 승이었다. 그래도 개최국인데, 16강에는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속내를 다 드러내지 못한 바람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었다. 뛰고 뛰고 또 뛰고 가슴이 터질 때까지 뛰었다. 그렇게 첫 승을 이뤘다. 폴란드와의 첫 게임에서 당당히 2대 0이라는 점수차로 이겼다. 미국과의 두 번째 게임에서는 1대 0으로 뒤지다가 쉼 없는 외침과 질주로 1대 1 동점을 이루었다. 예선 마지막 게임에서 피파 랭킹 5위인 포르투갈을 상대로 혼신의 정열을 다해 1대 0으로 이겨 당당히 2승 1무 조 1위의 성적으로 16강이 겨루는 결승 토너먼트에 올랐다. 거칠 것이 없었다.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넘었다. 그리고 스페인과의 8강도 넘어 4강이 겨루는 준결승전까지 올라, 독일과의 경기에서 혼신의 정열로 싸웠지만 안타깝게도 1대 0으로 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지지 않았다. 그들은 승자다. 우리 모두 이겼다.
이제 우리는 브라질 터키전 패자와의 3, 4위전을 남겨두고 있다. 한달여동안 가슴 벅찬 월드컵을 몇 가지 코드로 읽어보고 싶다.

■ 철학을 가진 지도자 <거스 히딩크>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지도자가 있다. 서로가 지도자라며 나선다. 우리에게 바른 길이라고 안내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이 속았던지. 언제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믿음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왜 이리 아쉬움이 많은지, 지도자가 아니라 그들 때문에 속 썩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우리에게 거스 히딩크는 낯설다. 그는 우리와 얼굴 생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낯선 이방일 뿐이다. 그를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영입했다. 가방하나 달랑 들고 입국한 그는 국가대표팀을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담금질을 시작했다. 지연, 학연으로 얼룩진 대표 선발을 오직 실력으로 선발하여 온갖 외압과 언론의 질타에도 굽히지 않았다. 히딩크가 다른게 바로 그 점이다. 다른 분야의 지도자들도 진정 그 일을 할 사람을 제대로 뽑지 못한다. 그만큼 얽히고설켜 있다는 말이다. 난 그의 축구 철학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지도자라면 그 일을 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러면 더딜지언정 그 일을 이룰 수 있다.
월드컵 기간 중 있었던 6.13 지방 선거가 끝난 뒤 바로 일어난 일이 이른 바 자기 사람 심기이다.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나아갈 자리에서 나아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내 일이 아닌 일을 내 일처럼 하는 사람들, 자기 일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려 한다. 지도자는 이 마음을 이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히딩크는 참 지도자다. 이걸 배우자.

■ 자발적으로 모인 응원단 <붉은 악마>

지방 자치단체마다 수많은 축제가 있다. 직접 참여해 본 축제도 여럿 있지만 그때마다 뭔가 나사가 빠진 듯 어색하고 부족해 보였다. 난 그 이유를 자발적 움직임이 아닌 타율적 움직임에서 찾고 싶다. 잘 하던 일도 멍석 깔아놓으면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붉은 악마는 스스로 모였다. 축구가 좋았고, 선수들의 땀방울을 함께 느끼고 싶었고, 운동장의 함성을 내 것 삼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 젊음에 동조한 나도 어느새 붉은 악마가 되어 있었다. 바로 이 힘이다. 우리 민족을 읽는 문화 코드 가운데 하나가 ‘신명’이다. 신명은 축제이다. 신명은 종교이다. 다른 특별한 규칙이 필요치 않다. 가슴 저 밑바닥에 잠겨있는 신명만 일깨우면 되는 것이다.
누구나 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온 사방으로 땀을 뿌리며 사물을 치는 가락에 어깨를 들썩여 본적이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국민이다. 그 신명은 우리가 꿈꾸고 있는 꿈인지도 모른다. 붉은 악마는 이렇게 외친다.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펀지가 되어 받아들인 <축구 대표팀>

그 동안 우리 대표팀의 A매치 경기를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어쩌다 재수 좋으면 이기겠지.” 그 믿음 외에는 다른 믿음을 갖지 못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여러 경기를 보면서 그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왔다.
기러기는 철새다. 두목 기러기가 앞을 서고 삼각편대로 서서 날아간다. 그 줄은 대단히 정연하다. 하지만 두목 기러기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날아가거나 대열을 지어 날아가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면 총을 맞거나 그물에 걸리기도 한다.
사실 히딩크는 무모했다. 20미터 턴 달리기의 요구 수준을 기대보다도 높였다. 선수들은 열심히 따랐다.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그 능력을 일깨운 것이다. 지도 받는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나는 그들이 자랑스럽다. 배울 기회가 되면 쉽게 배우지 말고 죽기를 각오하고 배우는 저력, 그 힘이 미래를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배우자.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나도 모른다. 그것이 참 능력이다.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제 며칠 있지 않으면 월드컵이 끝난다. 난 마음으로나마 대표선수들, 우리 모두의 영웅인 동생들에게 시원한 맥주 한잔씩 사주면서 몇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그들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룬 태극전사이다. 그들 앞에는 생각보다도 많은 명예와 부가 기다리고 있다. 더욱 겸손하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누는 삶을 살라고 부탁을 하겠다. 이런 소식을 들었다. 팀의 맏형인 홍명보 선수가 1억원이라는 거금을 쾌척하여 장학기금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말이다. 난 모든 선수들의 형의 뒤를 따르리라 믿는다. 이렇게 한일 월드컵의 열기는 역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당당히 월드컵 4강의 나라이다. 다시 준비하자. 우리만의 잔치가 아닌 칠천만 온 겨레가 함께 하는 통일의 축제가 되도록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