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의 향 기▒

노란 지붕을 가진 시골집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6. 16. 10:46
노란 지붕을 가진 시골집



왕궁가를 지날 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몸에 걸쳐진 두툼한 옷가지도

흰눈을 맞고 있고

발길은 산으로 향해 있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고,

찌든 때를 감추려 하는데

감추면 감출수록 드러나는 부끄러움들,

내리는 눈에 감추어있습니다



내게 남겨진 일 하나는

어딘가에 있을,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르고 있는

나만의 당신, 우리 모두의 님을

만나는 일이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느덧 눈도 그치고

햇살 두어줄 그어 비치고 있습니다.

하얀 눈망울이 슬픈 노루 한 마리

희벌쩍 저멀리로 달아나고

바람도 흘긋 불어오고

가끔은 산꿩의 사랑노래도 들려오고

머리위를 나는 산까치 입에

붉은 까치밥 열매가 물려있고

별안간 어깨가 시려옵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해 보나

내 만나야 할 님은 오늘도 만나지 못하여

복도 지지리 없구나

통곡해 보지만 별수 없음입니다



걸음을 재촉하다

발 끝에 채이는 돌무덤 밑으로

고운 새살을 가꾸고 있는

어린 생명을 보았습니다

아! 그 기쁨.

그 안에 내가 찾고 있는

우리님이 웃고 계셨습니다

벙근 입으로 해살한 웃음을 웃고

머리를 들어보니 하늘가에도

흐르는 바람에도

하늘거리는 시누대 틈에도

님은 계셨습니다

내 시린 어깨를

꼬옥 감싸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멀리 노란 지붕을 가진

시골집 담벽에 걸린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습니다.




◀시작노트▶

철이 바뀌면 내 삶에도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어한다. 그 변화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난 산에 오른다. 아무 생각없이 무아(無我)의 심경으로 산을 오른다.

봄이 되면 사람들은 희망을 꿈꾼다. 지난 겨울을 이겨내고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삶도 지난 날의 힘들고 어렵고 괴로웠던 일들을 모두 떨구어내고 새 봄빛처럼 찬란한 환희를 꿈꾼다.

왕궁은 전북 익산에 있는 미륵산 자락을 등에 지고 있는 들녘이다. 백제의 궁성터가 있었던 자리라 왕궁이란 이름을 얻었다. 무심으로 미륵산에 올라 왕궁들을 지나는데, 새록 돋는 봄 소식이 너무 좋았다. 그건 분명 생명의 환희였다. 눈 들어 멀리 보이는 집 지붕이 노란 색이다. 지붕색으로는 참 드문 색이다. 그 집벽에 커다란 시계가 걸려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세월은 간다.

사람만 가지 않으려 한다. 좀 더 좀 더 더디게 쉬었다 가자 한다. 저 혼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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