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의 향 기▒

상원사 적멸보궁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5. 10. 14:27
상원사 적멸보궁





식어진 여름 늦 햇살을 좇아
오대산 품에 안긴 건
어쩌면 속 좁은 사내의
기발한 착상인 듯도 싶다

새로운 기억 아니면
멀어진 추억 같은 걸
되새김질하지 않아도
고만큼의 여유로
날 굽어보시는 부처님

오틋한 해살거림으로
부처님을 부르면
반질거리는 적멸마루턱이
닳아진 만큼 쌓인 염원들이
단풍색을 닮은 보배궁전을 만들고
넘실대는 수해(樹海)는
또 다른 꿈을 만들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또 한 번 눈 떠보면
부처 아님이 없어
마음에 부처님 한 분 모시고 보니
어느 덧 내 마음도 부처이네.


◀시작노트▶

오대산과의 인연은 참 질기다. 질기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리 썩 좋은 기억만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수학여행 때 월정사 앞 잣나무에 올라 잣을 따다가 떨어져 다친 기억하며, 군대 시절에 힘든 훈련의 한 정점을 오대산에서 맞은 기억도 꽤나 힘들었던 기억 가운데 하나이다.

상원사 적멸보궁에 올랐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오대산 7부능선 쯤일까. 적멸보궁이 있다. 눈에 보이는 부처님이 없는 곳에서 부처님을 찾는다는 건 여간한 마음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그 적멸보궁에서 허공을 향해 절을 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염원이 쌓여서인지 마루턱이 닳아있다. 그때 저 마루턱이 닳아진 만큼 허공에 염원이 쌓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끝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초록빛 잎새들이 이루는 나무 바다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부처 아님이 없다는 말씀이 되살아났다. 자연보호니 환경운동이니 하는 말들, 모두 주체와 객체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다. 주객일체의 심경, 바로 저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가 부처임을 알 때 세상이 낙원이다. 극락이다. 천국이다. 천당이다.

내가 함부로 한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한줄기 물이 모두 내게 죄주고 복주는 직접적인 대상임을 아는 일, 그것이 전부다. 그것을 모르고 자행자지 할 때, 거기가 바로 지옥이고 고해이다.

그럼 지금 난 극락에 사는걸까, 지옥에 살고 있는걸까. 확신이 없다. 단지 극락 만들기위해 내 일을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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