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216) - 그림 이야기 둘, 지암 유승훈의 연꽃 그림전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2. 28. 10:33
오늘 그린 풍경화 - 연꽃 벙그는 아름 세상, 지암 유승훈의 연꽃 그림전
▣ 연꽃 그림에 취하여
주무숙(周茂叔)의 애련설(愛蓮說)은 연꽃 사랑 얘기다. 그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연꽃은 진흙 뻘 속에서 나오나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는다.
속은 비어있고 밖은 꼿꼿하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나오지도 않는다.
향기는 멀어도 더욱 맑고,
외로 서서 말갛게 뿌리를 땅에 내린다.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 두고 즐길 수는 없다."
주무숙은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하여 연꽃의 맑고 아름다운 덕을 늘 가까이 그리며 살았다.
왜 이처럼 옛 사람의 연꽃 사랑 얘기를 끄집어 낸 것일까? 지혜와 학문의 전당인 원광대학교의 울안에 새로 들어온 새 세기의 희망인 새내기들과 둥근 빛으로 세상을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들어가는 모든 원광가족들의 새날을 위해 여기 신용벌에 지암 유승훈 선생님의 '연꽃 그림전'을 연다.
그 전시회의 앞머리에 몇 글자 덧 두어 여러분의 마음 깊숙히 간직할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은 '연꽃 그림전'을 꼻으려는(평하려는) 것은 아니고, 나도 맘 편히 연꽃 그림에 취하며 세상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 연꽃과 함께 하는 나의 즐거움
연꽃에 얽힌 내 개인적인 얘기 몇 가지 해야겠다. 내 탯자리는 전남 함평이다. 불갑산 연실봉(蓮實峰) 자락 아랫동네 대각리에서 태어났으니 태생부터 연꽃과는 인연을 맺은 셈이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북적대는 시장같은 이름있는 관광지보다는 혼자 찾아가 아슴한 새벽안개를 맘껏 맞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찾는다. 전남 무안에 있는 백련(白蓮)밭을 찾아가는 것이 그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작년 여름에는 중국 산동성에 있는 대명호(大明湖)에 들렀을 때 맡았던 연꽃 향내는 오랜 걸음에 지친 이방인의 마음을 한없는 평안의 희열에 넘치게 하였다.
그리고 전남 영광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은강가에 수련꽃 웃음이 방싯거릴 때, 세작(녹차의 한 종류)을 한 웅큼 연꽃잎 속에 넣고 한밤의 이슬을 모으고 밤 별들의 수런거림을 담아 따뜻한 물에 우려 마시면 그 연꽃 향내가 늘어지려는 온 몸 세포를 하나 하나 깨우는 다선삼매(茶禪三昧)의 진경에 들으며 즐거웠던 적도 있다.
나는 이처럼 연꽃과 잇닿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요즘말로 '매니아'인 것이다.
연꽃에 대한 상식적인 얘기 몇 가지만 더해야겠다. 이렇게 조곤조곤 쏟아내고 싶은 얘기 보따리가 아직도 여럿인데 지면은 제한되어 있는 듯하여 걱정스럽긴 하지만, 여하튼 쏟아내 보자.
연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는 특징이 있다. 여타의 꽃들은 꽃이 피고 난 뒤에 열매가 맺어 영글지만, 연은 꽃이 피면 열매가 그 안에 들어있다. 방화즉과(方花卽果)라고 흔히 쓰는 말이다. 그만큼 알찬 꽃이다. 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연의 열매인 연실인데, 보통의 종자들은 2,3년 지나면 발아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연실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발아율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나온 연실을 요즘에 싹 틔웠으니 그 끈질긴 생명력은 요즘 우리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한다.
▣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맑아지는 세상사
이쯤에서 연꽃 그림 얘기를 해야겠다.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의 혼을 빼어담기 마련이다. 아무리 겉으로 치장하고 속으로 감춰둔다 해도 커피에 녹아나는 프림처럼 한 겹씩 배어 나오는 법이다.
솔직히 얘기하자. 가끔 먹을 갈아 글씨도 쓰고 난죽도 벗하지만, 어디까지나 여기의 취미로 할 뿐, 작품을 보는 눈은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고 보니 작품 앞에서 얼마나 깊고 은근한 삶의 성찰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이 작품을 보는 방법일지 모른다.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호가 지암(枳菴)이다. '탱자나무 지'와 '암자 암, 혹은 우거질 암'의 뜻이니 아마도 '탱자나무 우거진 집' 정도의 뜻일 게다. 호에 대해 물었더니 자기를 가르쳐준 이학용(李學庸)스승님의 호인 지수(止修)에서 '止'를 받아 '止菴'이었는데, 아무래도 참 깨달음의 길에 들어 쉰다고 하는 경지는 쉽게 쓸 수가 없어 음은 그대로 둔 채 고른 글자가 음이 같은 '枳'자를 고른 것이다.
아마도 어릴 적 탱자나무 가시 속에서 놀긋하게 익은 탱자나무의 시큼한 향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 아름 주워 구슬치기 대용으로 한 계절이 즐거웠던 시절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알큼하고 당글한 모습이 탱자나무에는 담겨있다. 그리고 집 담장 대용이나 과수원 울타리 대용으로 탱자나무를 둘러치기도 했으니 '벽사'(삿됨을 물리친다는 뜻)의 의미도 담겨있을 것이다.
그냥 겸손히 쓴 말일까, 그는 그림 속에도 그리거나 쓴다는 뜻이 아닌 '칠한다'는 의미의 도(塗)자를 이름 끝에 쓰곤 한다. 그는 아직도 칠이나 하고 있는 걸까. 서예나 문인화는 쓰거나 그리는 것인데 말이다.
그는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오직 사우(四友)와 벗하여 맑은 수행의 경지를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가 삶의 여기 정도로 작품을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 그는 연꽃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연꽃 밭을 찾아 몇 날을 함께 하곤 한다. 그로부터 새롭게 들은 연꽃에 대한 얘기 하나는 이른 새벽에 오므라든 연꽃이 필 때 새로운 우주가 개벽하는 것처럼 터지는 장엄한 울림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오랜 여행을 통해서 연엽이중옥(蓮葉裡中玉)이라는 화두 하나를 얻었다 한다. '연잎 속의 구슬'이란 뜻이니 연잎 안 움푹 패인 부분에 고인 이슬을 뜻하는 것 같은데, 더 긴말은 하지 않는다. 짐작해보건대, 그의 모든 삶을 통하여 세상을 맑히는 염원을 간직하고 살겠다는 뜻이 아닐까.
그가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꼭 수행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듬직한 몸에서 풍기는 멋도 그렇지만, 그가 걸어온 서예와 문인화의 길에서 전남 영광 홍농에 있는 덕림정사(德林精舍)에서 한학을 익히고 사우(四友)와 짝하며 베니아판에 갱지를 대고 사군자를 그리고, 계속해서 정읍, 광주 등지의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지난한 구도자의 길에서 한 올 한 올 길어 올린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온전함과 진실함이 녹진하게 녹아있는 것이 바로 지금 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원광대 서예과를 만학의 나이에 제1회로 입학하여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노사 기정진의 묵적연구]라는 논문도 상재한 이 시대의 선비이다.
오늘 바라보는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연(蓮)이 어떤 삶의 과정을 갖는지, 비바람에 어떤 모습으로 아름다운지를 우리에게 모두 보여주며, 바로 우리의 삶 앞에 주어지고 다가오는 모든 경계속에서 당당한 원광인, 개벽의 일꾼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그림 뿐 아니라 그가 즐겨 쓰는 그림제목(畵題)들도 삶처럼 말간 시심에서 우러나온 듯 하다. 참 그는 1994년에 등단한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복숭아를 "밝그레 귓볼 붉힌 천진불(天眞佛)"로 보고, 산사의 새벽에서 그는 "목어(木魚)의 더듬이"를 찾을 줄 아는 눈 맑고 귀 밝은 참 시인이다.
이제 숨을 좀 골라보자. 우리 모두는 '원광'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고운 인연들이다. 아름다운 인연들이 써 가는 새 천년의 희망의 이야기들을 이번 연꽃 그림전에서 듣고, 획 하나 하나에 담겨있는 아름다운 꽃말들은 여러분이 직접 찾기를 소망한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덧붙임 : 위 글은 2001년 원광대학교에서 새학기를 맞아 지암 유승훈 선생, 나와는 같은 동인활동을 하는, 의 연꽃 그림전 화집 머리에 몇자 쓴 글입니다.
2002년 2월 28일자 중앙일보 13면
<500년된 씨앗서 연꽃 틔웠다>
미국 과학자들이 중국의 한 연못바닥에서 나온 5백년된 묵은 연꽃 씨를 배양해 꽃봉오리를 맺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비비시방송이 26일 보도했다. 수백년된 종자에서 싹이 나온 뒤 꽃까지 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볍씨나 콩. 밀 등의 개체보존 능력은 약 10년이다.
연꽃 씨는 중국동북부 시파오지마을의 연못터 바로 아래 땅에서 견됐다. 이곳은 수백년전 연꽃이 뒤덮였던 곳이다. 연구진은 이를 개당 1달러에 구입, 캘리포니아주 실험실로 옮겨 싹을 틔우는데 성공했으며, 방사성탄소로 측정한 결과 일부는 5백년된 종자로 밝혀졌다.
500백살짜리 연꽃은 색깔과 모양이 보통 연꽃과 다른데, 연구진은 땅속의 저준위 자연방사능에 의한 유전전 손상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진은 연 씨앗의 오랜 생명력을 연구해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농작물 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비비시는 전했다.
▣ 연꽃 그림에 취하여
주무숙(周茂叔)의 애련설(愛蓮說)은 연꽃 사랑 얘기다. 그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연꽃은 진흙 뻘 속에서 나오나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는다.
속은 비어있고 밖은 꼿꼿하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나오지도 않는다.
향기는 멀어도 더욱 맑고,
외로 서서 말갛게 뿌리를 땅에 내린다.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 두고 즐길 수는 없다."
주무숙은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하여 연꽃의 맑고 아름다운 덕을 늘 가까이 그리며 살았다.
왜 이처럼 옛 사람의 연꽃 사랑 얘기를 끄집어 낸 것일까? 지혜와 학문의 전당인 원광대학교의 울안에 새로 들어온 새 세기의 희망인 새내기들과 둥근 빛으로 세상을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들어가는 모든 원광가족들의 새날을 위해 여기 신용벌에 지암 유승훈 선생님의 '연꽃 그림전'을 연다.
그 전시회의 앞머리에 몇 글자 덧 두어 여러분의 마음 깊숙히 간직할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은 '연꽃 그림전'을 꼻으려는(평하려는) 것은 아니고, 나도 맘 편히 연꽃 그림에 취하며 세상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 연꽃과 함께 하는 나의 즐거움
연꽃에 얽힌 내 개인적인 얘기 몇 가지 해야겠다. 내 탯자리는 전남 함평이다. 불갑산 연실봉(蓮實峰) 자락 아랫동네 대각리에서 태어났으니 태생부터 연꽃과는 인연을 맺은 셈이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북적대는 시장같은 이름있는 관광지보다는 혼자 찾아가 아슴한 새벽안개를 맘껏 맞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찾는다. 전남 무안에 있는 백련(白蓮)밭을 찾아가는 것이 그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작년 여름에는 중국 산동성에 있는 대명호(大明湖)에 들렀을 때 맡았던 연꽃 향내는 오랜 걸음에 지친 이방인의 마음을 한없는 평안의 희열에 넘치게 하였다.
그리고 전남 영광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은강가에 수련꽃 웃음이 방싯거릴 때, 세작(녹차의 한 종류)을 한 웅큼 연꽃잎 속에 넣고 한밤의 이슬을 모으고 밤 별들의 수런거림을 담아 따뜻한 물에 우려 마시면 그 연꽃 향내가 늘어지려는 온 몸 세포를 하나 하나 깨우는 다선삼매(茶禪三昧)의 진경에 들으며 즐거웠던 적도 있다.
나는 이처럼 연꽃과 잇닿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요즘말로 '매니아'인 것이다.
연꽃에 대한 상식적인 얘기 몇 가지만 더해야겠다. 이렇게 조곤조곤 쏟아내고 싶은 얘기 보따리가 아직도 여럿인데 지면은 제한되어 있는 듯하여 걱정스럽긴 하지만, 여하튼 쏟아내 보자.
연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는 특징이 있다. 여타의 꽃들은 꽃이 피고 난 뒤에 열매가 맺어 영글지만, 연은 꽃이 피면 열매가 그 안에 들어있다. 방화즉과(方花卽果)라고 흔히 쓰는 말이다. 그만큼 알찬 꽃이다. 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연의 열매인 연실인데, 보통의 종자들은 2,3년 지나면 발아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연실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발아율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나온 연실을 요즘에 싹 틔웠으니 그 끈질긴 생명력은 요즘 우리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한다.
▣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맑아지는 세상사
이쯤에서 연꽃 그림 얘기를 해야겠다.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의 혼을 빼어담기 마련이다. 아무리 겉으로 치장하고 속으로 감춰둔다 해도 커피에 녹아나는 프림처럼 한 겹씩 배어 나오는 법이다.
솔직히 얘기하자. 가끔 먹을 갈아 글씨도 쓰고 난죽도 벗하지만, 어디까지나 여기의 취미로 할 뿐, 작품을 보는 눈은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고 보니 작품 앞에서 얼마나 깊고 은근한 삶의 성찰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이 작품을 보는 방법일지 모른다.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호가 지암(枳菴)이다. '탱자나무 지'와 '암자 암, 혹은 우거질 암'의 뜻이니 아마도 '탱자나무 우거진 집' 정도의 뜻일 게다. 호에 대해 물었더니 자기를 가르쳐준 이학용(李學庸)스승님의 호인 지수(止修)에서 '止'를 받아 '止菴'이었는데, 아무래도 참 깨달음의 길에 들어 쉰다고 하는 경지는 쉽게 쓸 수가 없어 음은 그대로 둔 채 고른 글자가 음이 같은 '枳'자를 고른 것이다.
아마도 어릴 적 탱자나무 가시 속에서 놀긋하게 익은 탱자나무의 시큼한 향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 아름 주워 구슬치기 대용으로 한 계절이 즐거웠던 시절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알큼하고 당글한 모습이 탱자나무에는 담겨있다. 그리고 집 담장 대용이나 과수원 울타리 대용으로 탱자나무를 둘러치기도 했으니 '벽사'(삿됨을 물리친다는 뜻)의 의미도 담겨있을 것이다.
그냥 겸손히 쓴 말일까, 그는 그림 속에도 그리거나 쓴다는 뜻이 아닌 '칠한다'는 의미의 도(塗)자를 이름 끝에 쓰곤 한다. 그는 아직도 칠이나 하고 있는 걸까. 서예나 문인화는 쓰거나 그리는 것인데 말이다.
그는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오직 사우(四友)와 벗하여 맑은 수행의 경지를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가 삶의 여기 정도로 작품을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 그는 연꽃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연꽃 밭을 찾아 몇 날을 함께 하곤 한다. 그로부터 새롭게 들은 연꽃에 대한 얘기 하나는 이른 새벽에 오므라든 연꽃이 필 때 새로운 우주가 개벽하는 것처럼 터지는 장엄한 울림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오랜 여행을 통해서 연엽이중옥(蓮葉裡中玉)이라는 화두 하나를 얻었다 한다. '연잎 속의 구슬'이란 뜻이니 연잎 안 움푹 패인 부분에 고인 이슬을 뜻하는 것 같은데, 더 긴말은 하지 않는다. 짐작해보건대, 그의 모든 삶을 통하여 세상을 맑히는 염원을 간직하고 살겠다는 뜻이 아닐까.
그가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꼭 수행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듬직한 몸에서 풍기는 멋도 그렇지만, 그가 걸어온 서예와 문인화의 길에서 전남 영광 홍농에 있는 덕림정사(德林精舍)에서 한학을 익히고 사우(四友)와 짝하며 베니아판에 갱지를 대고 사군자를 그리고, 계속해서 정읍, 광주 등지의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지난한 구도자의 길에서 한 올 한 올 길어 올린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온전함과 진실함이 녹진하게 녹아있는 것이 바로 지금 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원광대 서예과를 만학의 나이에 제1회로 입학하여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노사 기정진의 묵적연구]라는 논문도 상재한 이 시대의 선비이다.
오늘 바라보는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연(蓮)이 어떤 삶의 과정을 갖는지, 비바람에 어떤 모습으로 아름다운지를 우리에게 모두 보여주며, 바로 우리의 삶 앞에 주어지고 다가오는 모든 경계속에서 당당한 원광인, 개벽의 일꾼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그림 뿐 아니라 그가 즐겨 쓰는 그림제목(畵題)들도 삶처럼 말간 시심에서 우러나온 듯 하다. 참 그는 1994년에 등단한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복숭아를 "밝그레 귓볼 붉힌 천진불(天眞佛)"로 보고, 산사의 새벽에서 그는 "목어(木魚)의 더듬이"를 찾을 줄 아는 눈 맑고 귀 밝은 참 시인이다.
이제 숨을 좀 골라보자. 우리 모두는 '원광'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고운 인연들이다. 아름다운 인연들이 써 가는 새 천년의 희망의 이야기들을 이번 연꽃 그림전에서 듣고, 획 하나 하나에 담겨있는 아름다운 꽃말들은 여러분이 직접 찾기를 소망한다.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덧붙임 : 위 글은 2001년 원광대학교에서 새학기를 맞아 지암 유승훈 선생, 나와는 같은 동인활동을 하는, 의 연꽃 그림전 화집 머리에 몇자 쓴 글입니다.
2002년 2월 28일자 중앙일보 13면
<500년된 씨앗서 연꽃 틔웠다>
미국 과학자들이 중국의 한 연못바닥에서 나온 5백년된 묵은 연꽃 씨를 배양해 꽃봉오리를 맺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비비시방송이 26일 보도했다. 수백년된 종자에서 싹이 나온 뒤 꽃까지 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볍씨나 콩. 밀 등의 개체보존 능력은 약 10년이다.
연꽃 씨는 중국동북부 시파오지마을의 연못터 바로 아래 땅에서 견됐다. 이곳은 수백년전 연꽃이 뒤덮였던 곳이다. 연구진은 이를 개당 1달러에 구입, 캘리포니아주 실험실로 옮겨 싹을 틔우는데 성공했으며, 방사성탄소로 측정한 결과 일부는 5백년된 종자로 밝혀졌다.
500백살짜리 연꽃은 색깔과 모양이 보통 연꽃과 다른데, 연구진은 땅속의 저준위 자연방사능에 의한 유전전 손상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진은 연 씨앗의 오랜 생명력을 연구해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농작물 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비비시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