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이 가 꿈▒
오늘 그린 풍경화(0108) - 아침 선물
자작나무숲이이원
2002. 1. 11. 10:00
오늘 그린 풍경화 - 아침 선물
좀 늦게 잠들었습니다. 괜히 새해가 되니 저녁만 되면 이것저것 정리도 하고 읽을 책을 뽑아 내놓기도 하고 늦은 잠결에 차도 많이 마시고, 하여간 잠만 쫓으며 보낸 꼴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몸을 뒤척여보니 온 몸에 개미 기어가듯이 그닐거리는 새 아침의 활기가 늘어진 몸을 오그리게 합니다.
집 밖으로 나서 희번하게 번지는 햇살 곱게 청하는 겨울 밭을 보았습니다. 겨우내 초록빛 밥상을 꾸밀 배추며 시금치, 얼어있는데 무딘 아침 입맛이 용케 기억하고 있는 그 겨울 들녘 햇살 같은 맛은 사이사이 얼음 박힌 배추를 듬세듬세 끊어 온갖 양념 넣고 버무려 먹는 그 맛은 어머님의 손맛이었는지 모릅니다.
저 멀리 논에는 보리 싹이 남빛으로 언 채 얇은 서리 옷을 입고 해맞이를 하고 있습니다. 서당 다니던 길, 도내기를 가로질러 가던 지름길엔 이맘때쯤 보리밭 푸른 잎싹이 돋아 버성버성 발밑에서 얼음발들이 무너지곤 했는데, 그 모습을 마음눈으로 내려보면 길다랗게 도열해 있는 병마용(兵馬俑)들이 날선 칼을 들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새해 아침부터 쌓인 눈이 채 녹지 않은 재봉산 약수터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섶에서 산꿩들 후드득 소리에 흠칫 놀랐는데, 저들도 놀랐는지 숲 속으로 날아갑니다. 어젯밤(1월 5일) 뉴스에 독극물을 넣은 까치밥과 콩 등을 먹고 죽어가는 꿩들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탐욕이 두려워집니다. 우리 조상들은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살생을 하였습니다. 화랑오계의 “살생유택(殺生有擇)”이 그러하고 “까닭 없이 살생을 말라”하신 성자들의 가르침이 그러합니다. 저 꿩들이 천부의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며 내려왔습니다.
아침 산바람에 서릿하게 열리는 폐부에 청명한 삶의 의지 하나 열립니다. 아마 이런게 희망이지 싶습니다. 산 아래 보이는 읍내가 새 아침 붉은 햇빛에 붉어집니다. 새 광명에 새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산꿩을 날려 보내면서 겨울잠 자는 동물들은 잘 있는지 소식이 궁금해집니다. 인간의 주파수를 돌려 그네들 잠결 새근대는 숨소리에 맞추면 감은 눈새에 새봄이 자라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 골목에서 옆집 사는 남매 아이들이 종이비행기 접는 법을 배웠는지 픽 고꾸라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정신이 없습니다. 조간신문 사이에 끼어있는 알록달록한 백화점 전단으로 비행기를 접어 날려주었더니 너무 좋아합니다. 까르까르 웃음꽃을 피우고 콧잔등까지 조롱조롱 미소가 맺힙니다. 아이들 입에선 연신 하얀 입김이 새어나옵니다.
외양간 어미소의 입김이 가득한 날 아침 바지런한 할머니. 해진댁은 가마솥에 물을 데워 할아버님 세숫물 심부름을 시키고, 내게도 한 대야의 물을 떠주시며 손을 불리게 하셨습니다. 가뭄에 논 갈라지듯 손등이 쩍쩍 갈라지며 텄거든요. 고향 오두마을 당산나무 서 있는 양지쪽 흙 담벽에 기대어 언 땅에 꼽던 “못치기”에 손이 곱으면 화톳불을 피워 추위를 쫓고, 재속에 묻어둔 고구마가 익으면 숯검뎅이에 입검어지던 즐거움에 해지는 줄 몰라 손등은 트게 마련입니다. 한참을 불린 뒤 맨도롬한 돌로 문지르면 일어나던 하얀 손때가 지금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 모를 일입니다.
겨울 아침이 햇살에 데워집니다. 플라타너스 가지 위에 자리 잡은 까치집에 잠깐 걸려 자는 바람이 하늘거립니다. 조싹조싹 오는 잠을 쫓으며 옛 사람의 시집을 읽으며 녹차 한잔을 마셨습니다. 초의선사 동다송(東茶頌) 한 구절이 생각남은 오늘따라 유난히 차 맛이 상그러운 까닭입니다. 이 차는 얼마 전 인연 맺은 변동해 선생님이 직접 덖어 만들어 보내오신 차를 아껴두다 오늘 아침 처음 개봉한 겁니다. 차를 마시며 세상살이 기쁨에 혼자 주절주절 읊는 삶의 체험이 꾸득꾸득 말라갑니다.
이렇게 또 하루를 은혜와 감사로 시작합니다.
2002년 1월 8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
좀 늦게 잠들었습니다. 괜히 새해가 되니 저녁만 되면 이것저것 정리도 하고 읽을 책을 뽑아 내놓기도 하고 늦은 잠결에 차도 많이 마시고, 하여간 잠만 쫓으며 보낸 꼴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몸을 뒤척여보니 온 몸에 개미 기어가듯이 그닐거리는 새 아침의 활기가 늘어진 몸을 오그리게 합니다.
집 밖으로 나서 희번하게 번지는 햇살 곱게 청하는 겨울 밭을 보았습니다. 겨우내 초록빛 밥상을 꾸밀 배추며 시금치, 얼어있는데 무딘 아침 입맛이 용케 기억하고 있는 그 겨울 들녘 햇살 같은 맛은 사이사이 얼음 박힌 배추를 듬세듬세 끊어 온갖 양념 넣고 버무려 먹는 그 맛은 어머님의 손맛이었는지 모릅니다.
저 멀리 논에는 보리 싹이 남빛으로 언 채 얇은 서리 옷을 입고 해맞이를 하고 있습니다. 서당 다니던 길, 도내기를 가로질러 가던 지름길엔 이맘때쯤 보리밭 푸른 잎싹이 돋아 버성버성 발밑에서 얼음발들이 무너지곤 했는데, 그 모습을 마음눈으로 내려보면 길다랗게 도열해 있는 병마용(兵馬俑)들이 날선 칼을 들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새해 아침부터 쌓인 눈이 채 녹지 않은 재봉산 약수터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섶에서 산꿩들 후드득 소리에 흠칫 놀랐는데, 저들도 놀랐는지 숲 속으로 날아갑니다. 어젯밤(1월 5일) 뉴스에 독극물을 넣은 까치밥과 콩 등을 먹고 죽어가는 꿩들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탐욕이 두려워집니다. 우리 조상들은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살생을 하였습니다. 화랑오계의 “살생유택(殺生有擇)”이 그러하고 “까닭 없이 살생을 말라”하신 성자들의 가르침이 그러합니다. 저 꿩들이 천부의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며 내려왔습니다.
아침 산바람에 서릿하게 열리는 폐부에 청명한 삶의 의지 하나 열립니다. 아마 이런게 희망이지 싶습니다. 산 아래 보이는 읍내가 새 아침 붉은 햇빛에 붉어집니다. 새 광명에 새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산꿩을 날려 보내면서 겨울잠 자는 동물들은 잘 있는지 소식이 궁금해집니다. 인간의 주파수를 돌려 그네들 잠결 새근대는 숨소리에 맞추면 감은 눈새에 새봄이 자라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 골목에서 옆집 사는 남매 아이들이 종이비행기 접는 법을 배웠는지 픽 고꾸라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정신이 없습니다. 조간신문 사이에 끼어있는 알록달록한 백화점 전단으로 비행기를 접어 날려주었더니 너무 좋아합니다. 까르까르 웃음꽃을 피우고 콧잔등까지 조롱조롱 미소가 맺힙니다. 아이들 입에선 연신 하얀 입김이 새어나옵니다.
외양간 어미소의 입김이 가득한 날 아침 바지런한 할머니. 해진댁은 가마솥에 물을 데워 할아버님 세숫물 심부름을 시키고, 내게도 한 대야의 물을 떠주시며 손을 불리게 하셨습니다. 가뭄에 논 갈라지듯 손등이 쩍쩍 갈라지며 텄거든요. 고향 오두마을 당산나무 서 있는 양지쪽 흙 담벽에 기대어 언 땅에 꼽던 “못치기”에 손이 곱으면 화톳불을 피워 추위를 쫓고, 재속에 묻어둔 고구마가 익으면 숯검뎅이에 입검어지던 즐거움에 해지는 줄 몰라 손등은 트게 마련입니다. 한참을 불린 뒤 맨도롬한 돌로 문지르면 일어나던 하얀 손때가 지금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 모를 일입니다.
겨울 아침이 햇살에 데워집니다. 플라타너스 가지 위에 자리 잡은 까치집에 잠깐 걸려 자는 바람이 하늘거립니다. 조싹조싹 오는 잠을 쫓으며 옛 사람의 시집을 읽으며 녹차 한잔을 마셨습니다. 초의선사 동다송(東茶頌) 한 구절이 생각남은 오늘따라 유난히 차 맛이 상그러운 까닭입니다. 이 차는 얼마 전 인연 맺은 변동해 선생님이 직접 덖어 만들어 보내오신 차를 아껴두다 오늘 아침 처음 개봉한 겁니다. 차를 마시며 세상살이 기쁨에 혼자 주절주절 읊는 삶의 체험이 꾸득꾸득 말라갑니다.
이렇게 또 하루를 은혜와 감사로 시작합니다.
2002년 1월 8일
자작나무숲 마음모음